- 경추 척수증은 목디스크처럼 한쪽 신경뿌리가 눌리는 질환과 달리, 척수 자체가 압박되며 손 기능 저하와 보행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 단추 끼우기, 병뚜껑 열기, 글씨 쓰기, 걷기 같은 일상 기능의 변화가 치료 시점을 가르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부산에 사는 70대 여성 A씨는 어느 날부터 셔츠 단추를 끼우는 일이 부쩍 더뎌졌다. 단춧구멍을 정확히 찾는 것이 자꾸 어긋났고, 병뚜껑을 돌려 여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손끝이 저린 날도 있었다.
집 근처 의원에선 ‘손목터널증후군’을 의심했고, 다른 곳에선 ‘목디스크’ 같다고 했다. ‘후종인대 골화증’(OPLL) 가능성을 말한 병원도 있었다.
손이 아니라 목, 정확히는 ‘척수 압박’이 문제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손이 아니라 목 안에 있었다. 척추를 전문으로 보는 의사가 MRI와 CT를 찍어보더니 “목뼈 안 척추관이 여러 퇴행성 변화로 좁아져 있다”고 했다. 목뼈 안을 지나는 척수(脊髓)가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
디스크 돌출, 관절과 인대의 변화, 일부 후종인대 골화 소견이 겹치면서 생긴 ‘경추 척수증’이라 했다. 퇴행성 변화에 의해 척수가 눌리는 ‘퇴행성 경추 척수병증’(DCM, Degenerative Cervical Myelopathy) 범주에 속한다. 목디스크라고 들었던 설명도, 후종인대 골화증이라는 설명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부산큰병원 정종철 병원장(신경외과)은 “목디스크가 주로 한쪽 신경근을 눌러 팔 통증이나 저림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 경추 척수증은 뇌와 연결된 중추신경인 척수 자체가 압박되는 상태”라 했다. “단순한 목 통증 질환이 아니라, 손 기능 저하와 보행장애, 심하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거나 사지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병”이었던 것이다.
왜 자꾸 다른 병으로 보일까?
경추 척수증이 까다로운 이유는 증상이 애매하게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목 통증이 심하지 않으면 환자 스스로도, 처음 진료하는 의료진도 다른 질환으로 생각하기 쉽다.
특히 노년층에 흔한 다른 질환과 쉽게 겹친다. 손 저림만 두드러지면 손목터널증후군으로, 팔 통증이 앞서면 목디스크나 어깨 질환으로, 보행이 불안정하면 허리 문제나 단순 노화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게다가 이 병에 대한 인지도까지 낮아 진단이 늦어지는 경향도 있다. 최근의 한 메타분석에서는 첫 증상 발생부터 진단 또는 수술 평가 단계까지 평균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연구마다 차이는 있지만, 증상이 천천히 진행하고 초기 표현이 모호해 발견이 늦는 것이다.
정 병원장은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전선을 계속 구부렸다 펴면 안쪽 구리선이 하나씩 상하듯 척수도 조금씩 손상될 수 있다”고 비유했다. 잘 드러나지 않는, 숨어있는 환자가 의외로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노년층에선 통증이 심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더 늦게 알게 된다.
통증보다 더 중요한 건 ‘기능 변화’
그래서 경추 척수증 진단의 핵심은 “어디가, 얼마나 아픈가”보다 “무엇을 못 하게 됐는가”를 보는 데 있다. 단추를 채우기 어렵다, 병뚜껑을 돌려 열기 힘들다, 글씨가 전보다 삐뚤어진다, 젓가락질이 어색하다, 걸을 때 몸이 휘청거린다, 계단이 무섭고 자꾸 넘어진다….
여기에 반사 항진, 병적 반사, 균형감각 저하 같은 신경학적 검사 소견이 더해지면 진단의 축(軸)이 척추 문제로 옮겨간다. 반사 검사, 근력 검사, 보행·균형 평가도 진단에 유용하다.
하지만, 승부는 몸의 심부를 관찰하는 CT와 MRI 검사에서 난다. CT로는 뼈의 병변이나 후종인대 골화 여부를 확인하고 MRI로는 디스크, 인대 비후, 척수 압박과 척수 내 신호 변화를 주로 본다.
비수술로 지켜볼까? 수술을 해야할까?
관련 국제 가이드라인은 중등도(中等度)나 중증(重症)의 퇴행성 척수증에 대해선 일관되게 수술을 권고한다. 하지만 그보다 증상이 가벼운 경증(輕症)에서는 수술과 비수술적 치료 사이에 선택의 여지가 남는다. 면밀한 추적 관찰이나 체계적 재활도 가능하다.
다만, 신경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 병원장도 “초기 통증이나 감각 이상 단계에서는 약물치료, 보조기, 생활 관리로도 어느 정도 괜찮은 경과를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손의 정교한 동작이 떨어지거나 보행이 불안정해지면 수술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법은 왜 환자마다 다를까?
수술을 한다 해도, 수술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척수가 어디서, 몇 마디에서, 어떤 방향으로 눌리고 있는 지에 따라 앞쪽으로 접근할지, 뒤쪽으로 접근할지 달라진다. 후종인대골화증, 후만 변형, 불안정성, 압박 범위 같은 영상 소견 따라서도 달라진다.
최근 권고는 앞쪽 수술과 뒤쪽 수술이 모두 임상적 이득을 줄 수 있지만, 그 차이에 따라 합병증 양상이 서로 다르다고 본다. 결국 “수술이냐, 아니냐”만큼 중요한 질문은 “내 목 구조에 맞는 감압(減壓) 방식이 무엇이냐”다. 최근에는 척추내시경 수술을 통해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고, 통증을 줄여 빠른 재활 치료로 후유증을 줄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FAQ)>
목이 별로 안 아픈데도 경추 척수증일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경추 척수증은 심한 목 통증보다 손놀림 둔함, 단추 끼우기 어려움, 글씨 변화, 보행 불안정처럼 기능 변화가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손목터널증후군과 경추 척수증, 어떻게 구별하나요?
손목터널증후군은 주로 손 저림과 손 감각 이상이 중심이지만, 경추 척수증은 양손의 서투름, 물건 놓침, 보행장애, 균형감 저하까지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경추 척수증, 수술을 미루면 어떻게 되나요?
척수가 서서히 눌리며 진행하는 병이어서, 오래 둘수록 회복이 더딜 수 있습니다. 손이나 다리 기능 문제가 뚜렷하다면 수술 여부를 늦지 않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움말=정종철 부산큰병원 병원장(신경외과). 세브란스병원 임상연구 조교수와 을지대병원 임상교수, 뉴욕대병원 방문교수를 지냈다. 척추, 그 중에서도 경추 척수증, 경추 추간공 협착증, 경추 디스크 등 목 질환을 많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