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이 왜 여기 계세요?“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호흡기내과를 지망한 후배 전공의가 건넨 음료수를 연신 들이켰다.
그렇게 나는 2015년 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입원의학’이라는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했다.
나는 모두가 알 만한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병원에서 인턴, 내과 전공의 시절을 거쳐, 호흡기, 중환자의학 세부수련까지 마쳤던 터라 콧대 높은 어느 양반집 규수가 된 듯 ‘그럴 듯한‘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대학병원의 호흡기내과 또는 중환자 담당 교수가 되는 것 이외의 미래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주말 드라마의 착한 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는 것만큼이나 너무도 당연한 결말이었다.
역시나 2014년 가을 수긍할 만한 오퍼가 왔고, 나는 이에 시크하게 ‘예스’로 화답했다. 하얀 거탑을 꿈꾸며 조신하게 지내던 2015년 2월 어느 오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두 통의 전화를 연달아 받게 된다.
먼저 걸려온 전화는, 예정돼 있던 그 자리가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그리고 또 한 통의 전화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입원의학에 종사할 입원전담전문의 교수를 뽑는데 나에게 그 사람이 되어 달라는, 내분비내과 장학철 교수님(후에 초대 입원전담진료센터 센터장을 맡으셨다)의 말씀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가능하면 몇 시간 생각해 보고 바로 답해줬으면 좋겠어요.”
보통 교수직 임용절차는 전년도 가을에 시작되어 1월이면 최종 확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2월 중순에 새로운 자리가 생길 리 만무했다. 이미 첫 번째 전화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입원의학, 입원전담전문의 같은, 이 알 수 없는 말들은 또 뭐고, 나 더러 우리나라 최초의 입원전담전문의 교수가 될지 말지를 몇 시간 고민해 보고 알려 달라니….
참으로 불친절한 이 타임라인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최초의 개척자들에게 엄지 척을 날리며 환호하는, 그런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었다.
오 주여!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을 되뇌며 미지의 행성으로 떠나는 케네디 우주센터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혹했고 외로웠다.
내과 분과학회에 참석할 때면 “쟤가 어쩌다가 저렇게 잘못 풀렸어, 사람이 때를 잘 만나야 해”라며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병동에서 필요한 일은 직접 하다 보니 전공의 취급을 받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나의 자존감을 바닥에 패 대기 치게 하는 수많은 편견과 저항, 그리고 점점 더해가는 육체적 피로 속에서, ‘최초’라는 자부심은 빛을 바래 가고 있었다.
“전공의가 하던 일이면 어떠냐? 환자를 살릴 수 있으면 됐지. 누군가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이잖아!”
시들시들 꺼져가는 듯한 내 모습에, 친동생은 뼈를 때리는 팩트를 날렸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전기충격 요법으로도 내 자존감은 좀처럼 ROSC(심폐소생술 후의 자발순환회복)될 기미가 안보였다.
그 환자를 만난 것은 그 즈음이었다. 벌써 여러 차례 위장관 출혈로 입원을 반복해온 담도암 환자였다. 그 때문에 2년이 넘게 항암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암이 더 진행되고 심부전까지 겹쳐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사전연명의향서도 이미 작성된 상태였다.
이번에도 혈변으로 응급실로 방문했고 입원전담전문의 교수들이 운영하고 있는 급성기내과병상에 입원했다. 혈변 없이 점차 상태가 안정되어가던 어느 날 새벽 6시, 환자는 38도가 훌쩍 넘는 고열과 함께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다. 열나고 혈압이 떨어진 걸로 보아 감염에 의한 패혈증 쇼크의 가능성이 높았지만 위 출혈이 다시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와 항생제, 수액치료를 시작했고 피검사를 반복하며 출혈 때문에 빈혈이 진행되는지도 확인하였다. 다행히 출혈의 징후는 없었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혈압도 차차 회복되었다.
점심식사를 하며 한숨 돌리던 중, 환자의 혈압이 다시 떨어져 승압제 용량을 늘린다는 노티가 왔다. 다시 병실로 달려갔다. 대량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적혈구 3팩 수혈을 오더하였지만 혈액이 도착하기 전까지 환자가 버텨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승압제와 수액을 최대용량으로 올렸는데도 수축기 혈압이 60~70mmHg이상 오르지 않았다. 환자를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영상의학과 교수에게 급히 연락해 응급색전술(출혈 혈관을 찾아 막는 시술)을 부탁했다.
“이 환자 복부혈관CT를 찍고 바로 시술실로 데려가겠습니다, 색전술 안 하면 이 환자 죽습니다.”
문제는 CT를 찍을 때 조영제 주사에 필요한 정맥혈관 라인이었다. 겨울 나무가지처럼 앙상한 환자의 팔과 다리에는 이미 승압제가 들어가는 라인과 수혈할 라인이 꽂혀져 있었다. 라인을 하나 더 잡기 위해 여기저기 바늘을 찔렀지만 무리였다. 환자만큼이나 지쳐 있는 보호자(부인)는 ”각오는 돼 있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주세요“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자, 수혈하면서 CT 촬영실로 갑니다. CT 찍을 때만 수혈을 잠깐 멈추고 그 라인으로 조영제를 주사합시다. 그리고 다시 피를 주면서 시술을 기다리죠. 이동하는 동안 최대한 빠르게 피를 드릴게요.“
나는 힘껏 환자 침대를 밀면서 검사실로 향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 팀에서 함께 일하는 만삭의 전담간호사님이 나섰다. 감사한 마음에 울컥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적혈구 팩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 짜기 시작했다.
우리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CT를 찍는 동안에도, 응급색전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혈압은 더 떨어지지 않았다. 시술실 들어갈 차례가 되자 승압제도 서서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색전술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환자가 살았다는 안도감에 나는 스스르 다리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시술실 앞에는 환자의 부인과 두 아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시술은 잘 끝난 것으로 보이고 혈압도 회복 중입니다. 일단 고비는 넘긴 듯합니다.“
피가 말랐을 보호자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의사로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환자가 살아서 다행입니다“ 라는, 지금 생각해도 멋진 멘트를 날린 후, 데친 청경채가 되어 버린 몸을 이끌고 병실로 올라왔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어 깜깜해진 길을 혼자 걸으니 내과 후배가 내게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지금 왜 여기 계세요?”
그 물음에 나는 “선생님은 환자들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잖아요"라는 우리 병동 수간호사님의 말로 대신하겠다. 나는 환자들의 곁을 지키며 허무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의사의 날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을 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김은선 대한입원의학회 국제협력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부교수)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