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말초신경이 끊어진 환자부터 근육이 파열된 운동선수, 게다가 심장에 전자 장치를 이식한 중증 환자들까지….
이들을 치료하는 현장에선 공통으로 부딪히는 벽이 있다. 손상된 조직을 봉합하더라도, 조직 간에 오가던 전기 신호(예: 신경 충동, 근육 수축 명령)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는 사실. 실로 꿰맨다고 해서 끊어진 전선에 다시 전기가 통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포항공대(POSTECH) 차형준 교수(화학공학과)와 국립부경대 송강일 교수(스마트헬스케어학부 휴먼바이오융합전공) 공동연구팀이 이 벽을 허물 접착제를 내놓았다. 손상된 근육·신경 조직을 이어 붙이는 동시에 전기 신호까지 복원하는 ‘전도성 생체접착제’를 개발한 것.

홍합에게 배운 20년의 기술
차형준 교수는 홍합을 연구한 지 20년이 넘는다. 홍합은 거센 파도 속에서도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비결은 홍합에서 분비되는 특수한 족사(足絲, byssus) 단백질이다. 혈액과 체액이 넘치는 인체 내부도 사실상 수중 환경이다. 봉합사로 체내를 꿰매는 것이 왜 어렵고 불완전한지를 생각해 보면, 물속에서도 완벽하게 달라붙는 홍합이 왜 의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는지 알 수 있다.
차 교수팀은 이미 홍합 단백질 대량 배양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광가교(光架橋, photo-crosslinking, 빛을 쬐면 굳는) 방식의 의료용 접착제 ‘픽스라이트(FixLight)’로 발전시켜 임상시험 단계까지 진입시킨 바 있다.
하지만 근육과 신경 손상 문제를 다루는 데는 몇 가지 장벽이 남아 있었다. 가장 큰 게 단백질이라는 원료의 특성. 전기 신호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이에 손상된 조직을 고정까진 할 수 있어도 신호 전달이 차단되면 즉각적인 기능 회복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또 하나는 크기. 기존 방식은 빛을 활용하여 다룰 수 있는 손상 깊이의 한계가 있었다.
‘전기 가교’ 방식이 돌파구
그래서 연구팀은 전기 신호를 이용해 접착제를 굳히는 ‘전기 가교’(electro-crosslinking) 방식을 시도했다. 액상 단백질 접착제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수 분 안에 젤(gel) 상태로 변한다. 체액이 넘치는 체내에서도 조직과 전자 소자를 즉각 고정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접착제에 전도성 소재를 결합해 전기 신호가 조직 사이를 그대로 통과할 수 있게 설계했다. 단순히 붙이는 ‘풀’이 아닌, 신호를 전달하는 ‘전선’의 역할까지 겸하게 된 셈이다.

홍합 접착 단백질과 광가교 분야에 집중해 온 차형준 교수 연구팀이 소재 기반을 다졌고, 신경 신호 인터페이스와 유연 전자소자 전문가인 부경대 송강일 교수팀이 전기 자극 기술을 접목했다.
"봉합 없이 운동 기능이 돌아왔다"
실험 결과는 뚜렷했다. 절단된 근육 조직에 이 접착제를 적용하자, 끊어졌던 신경-근육 간 전기 신호가 복원됐고 봉합사 없이도 운동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는 신경 재생 치료의 ‘골든타임’을 앞당겨준다. 게다가 심박 측정기나 뇌 자극 장치 같은 이식형 의료기기를 몸의 장기에 부착했을 때도 전기 저항이 낮아진다. 장기간 안정적인 생체 신호 모니터링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차형준 교수는 “홍합 접착제 연구가 전기 신호와 결합하면서 임상 적용의 난제를 풀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했고, 송강일 교수는 “잘 붙는 접착제를 넘어, 체내 환경에서도 생체 신호를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인체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식은 안전성 검증이라는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빛을 쬐는 광가교 방식이 빛을 쬐어주는 광조사 장치를 필요로 하듯이, 전기가교 방식도 전기 자극 디바이스가 필요하다. 게다가 환자에게 전류를 흘린다는 것 자체가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 새로운 안전성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관련 분야에선 “홍합 접착제의 잠재력은 크다”며 “원가, 속도, 안전성 등 남은 과제들이 하나씩 해결될수록 수술실에서 실제로 쓰이는 날이 앞당겨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In situ electrocrosslinkable and immiscible bioadhesive for robust underwater electrophysiological signal interfaces)는 국제학술지 《생체재료(Biomaterials)》온라인판에 지난해 12월 먼저 공개됐다. 인쇄본으론 2026년 5월호(Vol. 328)에 공식 게재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