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부부는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라 의리로 사는 거야”이다. 부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래된 연인들도 시간이 갈수록 사랑이 식기는 마찬가지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뇌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처음에는 연인을 친한 친구와 다르게 처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차이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인지 및 정서 신경과학(journal Social Cognitive and Affective Neuro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뇌는 관계 초기에는 파트너에 대한 고유한 신경 신호를 생성하지만, 관계가 성숙해짐에 따라 이러한 구별은 점차 사라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여자 연인과 연애 중인 20~29세의 미혼 남성 47명에게 연인 외에 친한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를 각각 한 명씩 선택하게 했다. 참가자들의 평균 연애 기간은 약 18개월이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사회적 보상 지연 과제라는 특정 활동에 참여하는 동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사용해 뇌 활동을 모니터링했다. 이 과제는 사회적 보상에 대한 기대감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됐다. 참가자들은 화면에 나타나는 신호를 통해 어떤 사람이 나타날지 확인했다.
잠시 후 화면에 목표물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나면 참가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버튼을 눌러야 했다. 성공하면 파트너, 여성 친구 또는 남성 친구가 미소를 지으며 긍정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반대로 참가자들이 너무 느리게 반응하면 무표정한 얼굴이 표시됐다.
연구 결과 참가자들은 연인에 의해 높은 동기 부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친구의 영상보다 파트너의 영상을 예상할 때 더 빠르게 반응했으며, 파트너의 영상을 친구의 영상보다 더 호감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뇌 영상 분석 결과, 측핵이 연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특정한 방식으로 부호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인과 관련된 뇌 활동 패턴과 여성 친구와 관련된 패턴에는 차이가 있었다.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측핵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크게 의존하며, 보상과 동기 부여를 처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측핵에서 여성 친구에 대한 패턴은 여성 연인보다는 남성 친구와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는 뇌가 연인을 일반적인 우정 범주와는 구별되는 고유한 사회적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연애 관계의 지속 기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파트너의 신경 신호의 특이성이 연애 기간과 관련이 있는지 분석한 결과 연인 관계 지속 기간이 길수록 신경 신호 특이성은 친구와 차이가 적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연인 관계 지속 기간이 긴 참가자들은 연인과 여성 친구 사이의 신경학적 차이가 덜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측좌핵에서 파트너와 친구를 구분하는 고유한 패턴은 관계 지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약해지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연인 관계 초기에는 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인 측핵이 연인과 이성 친구 사이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활동 패턴을 보였다.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이러한 신경학적 차이는 덜 두드러졌다”며 “이러한 변화는 관계 초기의 열정적인 사랑에서 친밀한 우정과 유사한 안정적이고 동반자적인 형태의 사랑으로의 전환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