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충류의 뇌가 공포에 민감하고 원하는 보상에 대한 욕망을 갖는 원초적 뇌를 형성하고요. 그것을 둘러싼 포유류의 뇌, 그걸 넘어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전전두엽의 뇌를 보여주고 있는 거죠. 《에덴의 용》은 그렇게 진화론적 연구 결과를 보여주면서 인류 지성의 출현과 진화를 굉장히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출처: 정재승,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 2018)
《에덴의 용》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써서 1977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에는 나중에 《코스모스》에 여러 번 등장하는 우주 달력이 처음 소개된다. 우주 달력에서 인간은 1년의 마지막 날 밤 10시 24분에 등장한다. 이처럼 엄청나게 오래된 우주에 비해 인간이 지닌 매우 어린 뇌에 대한 이야기가 《에덴의 용》에 펼쳐진다.
이 책을 《열두 발자국》에서 위와 같이 추천한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학과장은 다른 글에서는 이렇게 평가한다. “인간의 뇌와 마음은 빅뱅 이래 시작된 장대한 물질 진화의 산물이며 뇌와 마음이 단일한 원리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인 유래를 가진 다양한 충동과 논리들이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낸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출처: 경향신문, 늙은 우주에 사는 어린 인류의 뇌, 2006.09.28.).
폴 맥린- 칼 세이건- 정재승 거쳐 국내에 확산
‘파충류 뇌’의 원조는 신경학자 폴 맥린이다. 그는 1964년 논문 ‘인간과 그의 동물 두뇌(Man and his animal brains)’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러한 뇌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파충류의 것과 같고, 둘째 뇌는 하등 포유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셋째는 진화 후기에 발달한 것으로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주장은 그때에도 신경과학계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중과학 저서를 통해 널리 퍼졌다. 1960년대에는 이 연구를 요약한 뒤 자극적인 요소를 마구 집어넣은 아서 쾨슬러의 《기계 속의 유령》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70년대에 바통을 넘겨받은 이가 세이건이었고, 그는 《에덴의 용》으로 197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세이건은 파충류의 뇌를 구약성경 중 에덴동산 이야기와 연결한다. 그는 “뱀이라는 비유는 신피질이 더욱 진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뇌의 공격적이고 관습적인 파충류적 부분이 사용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는다.
그의 상상은 용에 대한 공포로 이어진다. 세이건은 “인간과 용 간의 화해할 수 없는 강한 적대감은 서양 문화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났다”면서도 “그와 같은 적대감은 서양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상대방을 조용히 하게 하거나 주의를 이끌고자 할 때 보편적으로 내는 ‘쉿’ 소리가 파충류의 쉭쉭대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일 뿐일까?”라는 의문문으로 추측을 뒷받침한다.

세계가 공히 용을 두려워했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용은 봉황, 기린과 함께 상서로운 존재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용이 어떻게 임금이 입은 정복인 곤룡포에 수놓아질 수 있었겠나.
용에 대한 공포를 전제로 한 과도한 상상
상상의 존재 용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상정한 뒤, 그는 이런 상상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궁리한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의 화석이 약 6000만 년 전의 것이다. 인간이 속한 과(그러나 호모 속은 아닌)는 대략 수천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비슷한 생물이 티라노사우루스를 직접 마주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인간의 의식에 인간이 된 이후 존재한 기간보다 몇십 배 전인, 6000만 년 전의 일이 깔려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이다. 이는 검증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적인 가설이 되지 못한다.
맥린이 주창한(?) ‘파충류의 뇌’는 뇌과학계에서 일찌감치 폐기됐다. 옥스퍼드대 해부학자 레이 길러리는 맥린의 주장이 ‘신경과학적 미신’이라고 논평했다. 과학자들은 인간 뇌에는 파충류 때 그대로 이어져온 독립된 층이 없다고 설명한다. 또 사람의 뇌는 순차적으로 덧붙여진 구조가 아니라 함께 진화한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요컨대, 충동과 이성은 각각 다른 뇌에서 담당하는 게 아니라 여러 회로가 동시에 관여하면서 작동한다.
맥린을 독창적으로(?) 계승ㆍ발전시킨 《에덴의 용》은 맨체스터대 생명과학부 교수 매튜 코브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코브는 《뇌과학의 모든 역사》에서 “세이건도 쾨슬러처럼 과학적인 사실의 일부 조각들에 엄청난 분량의 엉터리 정신분석 및 어설프게 이해된 인류학을 뒤섞은 뒤, 그 범벅을 과다한 추측으로 풀어냈다”고 혹평했다.
‘파충류 뇌’가 전승ㆍ확산돼 온 과정에서 정재승 교수가 한 역할은 자가당착적이다. 정 교수는 앞서 소개한 대로 활자 매체 기고와 강연에서 《에덴의 용》을 강력하게 권했다. 그런데 이 책을 맹비난한 《뇌과학의 모든 역사》에 추천사를 썼다. “어마무시하게 재미있는 뇌 과학의 역사책!”이라고.
한편 정재승 교수는 ‘파충류의 뇌’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이론"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비유적인 개념은 동어반복적, 행태를 분석하는 접근이 유용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 탐구를 주제로 대중과 적극 소통했다. 그가 남긴 영상을 유튜브에서 여럿 볼 수 있다. 그중 그가 ‘관성’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어렸을 때 그는 구슬이 가로로 놓인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놀았다. 기차를 급하게 밀면 구슬이 뒤로 밀려났다. 이 현상을 가리켜 그가 아버지에게 “관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하자 아버지가 답한다. “어떤 현상에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그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란다.”
인간의 생각 가운데 충동적인 부분을 ‘파충류의 뇌’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는 어린 파인만의 접근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파충류의 뇌는 뇌과학 연구를 통해 허구임이 밝혀졌다.
인간의 생각에 대한 이해에는 뇌에 대한 비유적인 개념보다 행태경제학이 더 도움이 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대한 생각》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