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상급종합병원(빅5 등 전국 47곳)의 역할을 ‘응급·중증·희귀질환 중심’으로 재편하는 대규모 구조 전환에 나서면서, 의료계 내부의 긴장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병상을 줄이는 대신 중증 진료에 집중하고,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역 종합병원들은 “사실상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사)대한종합병원협회(회장 정근)는 오는 10일 부산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정책과 의료질평가 지원체계 전반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대정부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들은 “같은 병상인데도 병원 종별에 따라 지원금이 최대 60배까지 벌어지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지역 의료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주장한다
“같은 병상, 다른 대접”…지원금 격차에 쌓인 불만
대한종합병원협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의료질 평가에서 입원 분야 1등급을 받은 상급종합병원은 입원환자 1인당 하루 2만8000원대의 지원금을 받는다. 반면 5등급을 받은 지역 종합병원 경우엔 하루 500원도 못 받는다. 이를 700병상, 하루 평균 입원환자 600명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간 지원금 격차는 50억 원을 훌쩍 넘는다.
협회는 이 같은 격차가 “실제 진료 난이도나 환자 위험도보다는 병원 종별과 ‘대학병원 중심 지표’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적 차별”이라고 본다. 전공의 수, 교수 인력, 연구 실적 등 대학병원에 유리한 기준이 의료질평가 상위 등급을 사실상 독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 종합병원들이 암 수술, 응급수술, 야간·휴일 진료 등 필수의료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음에도 평가와 보상에서는 뒷전으로 밀려 있다는 점을 협회는 강조한다.
정부의 시선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에 있다
정부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부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본격화하며, 2027년까지 약 10조 원을 투입해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모두가 이 사업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일반병상 수를 줄이고 중증 진료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그동안 무분별하게 받아 병원 수익을 올려오던 일반병상 3625개가 없어졌다. 상급종합병원 전체 일반병상의 8.6%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과도한 경증 진료 경쟁에서 벗어나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상급종합병원은 2차 병원과의 협력 진료를 강화하고, 환자는 중증도에 맞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받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그러나 대한종합병원협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의 균열이 발생한다고 본다. 상급종합병원이 병상을 줄이면서 발생하는 진료 공백과 환자 이동은 자연스럽게 지역 종합병원으로 흘러오는데, 정작 이에 대한 보상과 안전장치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협회는 “상급종합병원은 구조전환 지원금과 의료질 지원금을 동시에 받는 반면, 지역 종합병원은 늘어난 진료 부담과 의료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한다. 인력난과 경영 압박 속에서 응급·중증 환자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현 지원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다.
‘포괄2차병원’ 구상,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다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당국은 일정 규모 이상이면서 중증 진료 역량을 갖춘 종합병원을 ‘포괄2차병원’으로 그 기능을 다시 정의하고, 이들에 대한 별도의 지원체계를 검토 중이어서다. 상급종합병원과 중소병원 사이의 ‘허리 역할’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것.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대한종합병원협회의 요구가 다소 단편적, 또는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정책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향후 2차 병원 지원 모델이 어떻게 설계될지까지 함께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종합병원협회는 “구상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고 한다. 의료질평가 지원금 개편, 지역수가 신설, 필수의료 병상과 인력에 대한 최소 수익 보전 장치 등 보다 즉각적인 정책 신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지역에서 판가름 난다”
대한종합병원협회는 이번 성명서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늘에 놓인 지역 의료 현실을 함께 보자”는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의 목표가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라면, 중간 허리를 맡고 있는 종합병원이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정책의 방향과 현장의 체감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지역 종합병원의 역할과 보상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