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회사 생활 하면서 힘들어질 일만 남은 것 같아요.”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제약회사 직원이 올해 업계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불쑥 꺼낸 말이다. 올해 미국 관세 협상과 의정 갈등으로 제약사들이 순조롭지 않은 한 해를 보냈지만, 내년에는 더 큰 파도가 다가온다. 약가 인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현행 오리지널 의약품의 53.55%인 복제약(제네릭) 가격을 40%대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약가제도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제약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내년 2월 건정심에서 최종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제약업계는 부랴부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까지 꾸려 기자회견을 열고, 업계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약가가 인하되면 주요 수입원인 제네릭 의약품 매출액이 줄어 연구개발(R&D)이나 설비투자에 힘을 쏟을 여력이 사라지고, 심지어 대규모 실직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업계 주장과 대응을 엄살로 볼 수는 없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곱씹어 볼 대목들이 적지 않다.
업계는 약가 인하를 감당할 체력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위 100대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이 4.8%, 순이익률이 3% 수준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2024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금융업종을 뺀 모든 영리법인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4.6% 수준으로 제약업계의 영업이익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선 이스라엘 제약사 테바를 들며 제네릭 의약품 매출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테바는 적대적 국가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복제약을 기반으로 성장해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며 “복제약 산업을 단순히 구조조정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지키는 안보 자산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테바는 미국과 유럽의 제네릭 시장을 공략하고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했다. 단순히 내수시장에서 제네릭 매출로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테바는 전 세계 80개국 이상에 진출해 있고 1800개 성분과 1만6000개 제품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히 제네릭을 기반으로 성장했다기 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뤘다고 보는 편이 더 맞다.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는 우리 제약사와는 사정이 다른 셈이다. 국내 제약사 중 매출액 1위의 유한양행은 전체 매출에서 내수가 85.2%를 차지한다. 녹십자(77.3%), 종근당(95.3%), 한미약품(94.3%), 대웅제약(84.7%) 등 다른 대형 제약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견·중소제약사는 말할 것도 없다. 테바의 성공 사례를 든다면 오히려 국내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선 동일성분 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쟁자가 줄어드는 것이 더 맞다.
업계는 약가 인하가 되면 연구개발비(R&D) 축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연구개발에 쏟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하면서도 의문이 든다. R&D가 줄면 당장의 비용은 줄겠지만, 신약 개발을 못해 중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찾기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R&D는 비용이지만, 어떻게든 R&D를 해야 다음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제약업계의 어려운 사정은 이해가 된다. 문제는 현재 정부의 정책이 불합리하다는 확실한 근거나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 채 어렵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식의 동정론만으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약가 인하는 불가하다는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약가를 내리되 유예 기간이나 지원책을 받는 전략적 행보가 필요하다. 가령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취지를 살려 R&D 투자 기업에는 한시적으로라도 대규모 인센티브를 받아내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 참에 R&D를 제대로 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달리 대접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R&D 없이 제네릭만으로 먹고 살려는 기업에 계속 영양분을 제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월 건정심 전까지 정부와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