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 수비.’
동네 슈퍼에 라면을 사러 가는 것처럼 편하게 수비한다고 해서 생긴 비유다. 라면 수비의 주인공은 이순철 선수였다. 그는 외야로 날아오는 공이 어디로 떨어질지 미리 예상하고 먼저 그 지점에 가서 서 있다가 아주 쉽게 공을 잡았다.
이순철은 어떤 선수였나.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자마자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차고 99경기에서 타율 0.304, 12홈런, 50타점, 31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해태의 붙박이 1번 타자로서 도루왕 세 번과 골든글러브 5번의 영예에 올랐다. 특히 외야와 내야에서 모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순철과 비슷한 수비로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뛴 일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다. 그 역시 공이 어디로 떨어질지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와 관련해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이치로와 함께 뛴 봅 멜빈은 온라인매체 ‘스포츠인포솔루션스’에 이렇게 말했다. “공이 배트에 맞으면 그는 그 공이 어디로 갈지 알았다.”
전문가들이 갈고닦은 고도의 감각은 일반인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디높다. 그런 감각은 야구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보고된 바 있다.
손톱만 보고도 석상이 위조품임을 알아채다
이를 보여준 고미술 전문가가 이탈리아 출신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체리였다. 폴 게티 미술관의 운영위원이었던 체리는 1983년 12월, 미술관의 복원실로 안내되어 조각상을 보았다. 조각상은 ‘쿠로스’라고 불리는 석상이었다. 체리의 눈길은 자신도 모르게 쿠로스의 손톱에 머물렀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손톱이 이상해 보였다. 말콤 글래드웰은 《블링크》에서 이 일화를 들려준 뒤 결국 그 석상은 위조품임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은 베테랑 소방관의 판단을 공유했다. 이 소방 지휘관은 부하들을 이끌고 진화를 위해 불이 난 주택에 들어섰다.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로 주방의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전원 철수!”를 외쳤다. 그와 소방관들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이 일화는 《생각에 관한 생각》에 소개됐다.
감각을 고도로 발달시킨 병아리 감별사, 그 능력은 ‘무의식’의 작용이 아닌데
감각을 고도로 발달시킨 전문직 가운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직군이 병아리 감별사다. 부화 직후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는 단서는 항문 돌기인데, 그 돌기가 좁쌀의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그렇게 미세한 단서로부터 암수를 순식간에 판단하려면 집중적인 훈련을 상당 기간에 걸쳐 받아야 한다. 선천적인 조건을 갖춘 훈련생이 더 유리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돌기 식별을 잘하는 데에는 “시력이 좋고 색맹이 아니며 손이 가는 편이 좋다”고 전한다.
안타깝게도 고도의 감각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나 분석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방관 일화를 전한 글래드웰은 이 감각을 ‘직관’이나 ‘무의식’으로 분류한 뒤, 더 들어가 논의하지 않은 채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엉뚱하게도 병아리 감별사의 감각을 ‘무의식’으로 분류했다. 이글먼은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에서 병아리 감별사가 다음과 같은 무의식 훈련을 통해 배운다고 설명했다. 편의상 그 설명을 큰따옴표로 전한다.
“훈련생은 사전에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전문 감별사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병아리의 암수를 판단한다. 전문 감별사는 그 판단이 정확한지 알려준다. 이 과정을 몇 주 반복하면 훈련생의 정확도도 전문 감별사 수준으로 향상된다.”
이글먼은 게다가 “전문 감별사조차 자신이 어떤 단서로 암수를 구별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병아리 감별에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앞서 필자가 인용한 서술에 비추어보면 이글먼의 설명과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눈썰미, 귀썰미 등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이순철의 훈련법
전문가가 기른 고도의 감각은 ‘눈썰미’인 경우도 있고 ‘귀썰미’인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는 고도의 감각을 ‘썰미’라고 부르기로 한다. 일반인도 관심과 훈련을 통해 썰미를 갖출 수 있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경험은 그 훈련에 참고가 된다. 앞서 소개한 일화에 작게나마 실마리가 있다.
체리의 경우 오랜 기간 많은 진품과 위조품을 구분하면서 작은 차이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이 일화에서는 위조품의 손톱이 그가 보아온 진품과 미세하게 차이가 났다. 화재 당시를 복기한 소방 지휘관은 오랜 경험에 비추어 불길이 평소보다 조용했고 귀가 유난히 뜨거웠다는 사실에 자신이 주목했음을 깨달았다. 화재 조사 결과 주방의 불보다 더 큰 불길이 소방관들이 서 있던 바닥 바로 밑 지하실에서 번지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체계적인 썰미 훈련법과 관련해 이순철 선수의 회고가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다. 그의 수비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었다. 바뀐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한 결과였다. 3루수였던 이순철은 1986년 한대화의 입단으로 외야수로 옮기게 된다. 외야수를 맡은 첫 시즌에 실책 10개를 범하며 시즌 외야수 최다 실책의 불명예에 빠지게 된다.
시즌이 끝난 뒤 그는 “타자들이 훈련하는 것을 직접 보고 타구 방향을 머릿속에 입력시켜야 했다”며 “혼자서 그런 과정을 통해 수비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훈련했다”고 말했다(스포츠서울, [리와人드] 이순철 “현역시절의 나는 100점 만점에 60점”, 2018.05.24.). 심지어 “뒤로 돌아서서 타구음만 듣고 공이 어느 쪽으로 떨어질지를 가늠하는 훈련도 많이 했다”면서 “그 덕분에 어려운 타구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들려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