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살이 찌는 게 건강에 좋다는 속설이 있지만, ‘어디에’ 살이 찌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체질량지수(BMI)가 높은 노인은 암 발생 위험이 낮은 반면, 허리둘레가 클수록 암 위험은 뚜렷하게 증가한다는 대규모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체중이 정상이라도 복부비만이 있다면 암 예방을 위해 허리둘레 관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수연 고대구로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바탕으로 65~80세 노인 24만7625명의 건강 기록을 11년간 추적 분석했다. 연구팀은 대상자를 BMI와 허리둘레에 따라 각각 4개 그룹으로 나누고 암 발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온콜로지(Frontiers in Oncology)》에 발표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흔히 비만의 척도로 쓰이는 BMI 수치(키와 몸무게를 이용해 비만을 측정하는 측정법)가 가장 높은 그룹은 가장 낮은 그룹에 비해 암 발생 위험이 최대 12% 감소했다. BMI가 1 증가할 때마다 암 위험은 5.4%씩 꾸준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살이 찔수록 암 발생 위험이 높다는 기존 통념과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노년기에는 다소 체중이 나가는 것이 근육량을 유지하고 영양 상태가 양호한 ‘건강한 상태’임을 나타내는 지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노년에 살은 재산’이라는 속설이 연구로 입증된 셈이다.
하지만 허리둘레가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은 정반대였다. 허리둘레가 가장 큰 그룹은 가장 작은 그룹보다 암 발생 위험이 14.6%나 높았다. 허리둘레 수치가 1표준편차(약 8cm) 씩 늘어날 때마다 암 위험 역시 평균 7.2%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허리둘레는 내장지방의 양을 반영하는데, 이 내장지방은 대사 이상과 염증을 유발해 종양 형성을 촉진한다"며 "이 같은 경향은 특히 남성 노인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정상 체중(BMI 18.5~23)을 유지하더라도 허리둘레가 크면 암 위험이 뚜렷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말랐지만 복부에 지방이 집중된 이른바 ‘숨은 비만형 노인’이 암 발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를 이끈 장수연 교수는 “BMI는 근육과 지방을 구분하지 못해 체성분 구성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허리둘레는 대사적으로 위험한 복부비만, 특히 내장지방의 양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이번 연구에서 정상 체중 범위에 속하더라도 허리둘레가 크면 암 발생 위험이 높았다”며 “정상 체중인 사람도 안심하지 말고 복부비만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공복혈당장애가 있거나 음주·흡연 습관이 있는 노인의 경우, 복부지방과 암 발생 위험의 연관성이 더욱 특징적이었다”며 “결론적으로 노인에게는 체중계 숫자보다 줄자로 잰 허리둘레를 건강 지표로 삼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