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8일 (수)

망막에 초소형 칩 심었더니... 실명 환자, 다시 글을 읽었다

美연구팀, 윤곽 알아보는 ‘형태 시각’ 복원... “해상도 30배 높인 차세대 칩 개발중”

말기 건성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은 환자들의 시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노인성 황반변성 말기 환자들이 다시 글자를 읽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머리카락 두께의 절반에 불과한 초소형 반도체 칩을 망막에 이식해 인공 시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난치성 실명 질환 정복의 서막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팀은 건성 노인성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은 환자들에게 전자 안구 임플란트 ‘프리마(PRIMA)’를 이식한 결과, 임상시험 참가자 32명 중 27명(84%)이 글자와 숫자를 다시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20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국, 프랑스 등 5개국 17개 병원이 참여했으며,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게재되며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은 모두 건성 노인성 황반변성 말기 환자들이다. 이 질환은 나이가 들면서 망막 중심부의 빛 감지 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발생한다. 시야 중심에 검은 점이 생긴 것처럼 보여 책을 읽거나 사람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500만 명 이상이 앓고 있지만, 한번 손상된 시력을 되돌릴 치료법은 없었다.

칩과 짝을 이루는 특수 제작된 증강현실(AR) 안경. 사진=사이언스코퍼레이션(Science Corporation)

연구팀은 환자의 손상된 망막 중심부 아래에 가로와 세로 각각 2mm 크기의 초소형 무선 칩을 이식했다. 이 칩은 특수 제작된 증강현실(AR) 안경과 연동해 작동한다.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가 외부 풍경을 촬영해 적외선 신호로 변환한 뒤 눈 속에 심어진 칩으로 전송하면, 칩은 이 신호를 다시 전기 자극으로 바꾸어 살아남은 시신경 세포를 활성화한다. 이렇게 생성된 시각 정보가 뇌로 전달되어 사물을 인식하게 되는 원리다. 안경을 통해 밝기를 조절하고 이미지를 최대 12배까지 확대할 수 있어 작은 글자도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칩을 통해 환자들이 볼 수 있는 이미지의 모습(오른쪽). 사진=사이언스 코퍼레이션(Science Corporation)

1년간의 추적 관찰 결과, 임상에 참여한 환자 32명 중 27명이 이 장치를 통해 성공적으로 글자와 숫자를 읽어냈다. 환자들의 시력은 평균적으로 시력표 기준 다섯 줄을 더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됐다. 다시 말해 시력이 0.4~0.5 가량 좋아진 것. 연구팀은 이를 두고 빛과 어둠만 겨우 구분하던 수준을 넘어, 사물의 형태와 윤곽을 알아보는 ‘형태 시각(form vision)’을 복원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책과 식품 라벨, 지하철 안내판 등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보고했다.

수술은 2시간 안에 마쳐 비교적 간단했으며, 환자들은 수개월의 훈련을 거쳐 인공 시력에 적응했다. 19명에게서 안압 상승이나 망막 주변부 열상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대부분 2개월 안에 회복되는 경미한 수준이었다.

이번 임상에 참여한 마히 무킷 런던 무어필즈 안과 병원 교수는 “인공 시각의 역사에서 이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면서 “시각 장애인들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의미 있는 중심 시력 회복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 독서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삶의 질을 크게 높이고, 기분을 좋게 하며, 자신감과 독립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스탠퍼드 의대 안과학 교수이자 이 장치를 개발한 다니엘 팔란커 박사는 21년 전 이 기기 개발을 시작했다면서 “현재의 장치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 해상도를 30배 높인 차세대 칩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복원된 시력이 정상적인 시력과 완벽하게 같지는 않다. 흑백으로 보이며 해상도가 낮고 시야가 좁다. 또 대부분의 환자들은 즉시 시력이 좋아지지 않고, 안경과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은 정상적인 시력과 같지 않아 수 개월에 걸친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앞을 볼 수 없었던 환자들에게는 제한된 시력이라도 회복하는 것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치료법은 망막 광수용체가 손실된 사람에게만 적용되므로 다른 형태의 실명에는 효과가 없다. 예를 들어 선천적 시각 장애인은 뇌로 신호를 전달할 기능성 시신경이 없어 이 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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