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화이자가 저소득층 대상 메디케이드 프로그램(공공의료 보장)의 처방약 가격을 50% 이상 인하하고 3년간 관세를 감면받기로 했다. 화이자 외의 다른 글로벌 제약사도 비슷한 협상을 미국 정부와 진행 중인 가운데,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내 이익 감소분을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메우려고 할 지 주목된다.
1일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개최한 브리핑에서 화이자가 앞으로 미국 시장에 출시하는 모든 신약을 최혜국대우(MFN) 가격에 판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MFN은 제약사가 미국 외의 선진국에 적용하는 최저 가격을 말한다. 만약 특정 의약품을 A국가에서 50달러에 판매하고 있다면 미국에서도 50달러에 판매하는 조건이다. 이로써 화이자의 상당수 약이 미국에서 50% 이상 인하한 가격에 제공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화이자는 미국에서 의약품 제조를 위해 700억달러(약 98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건을 통해 화이자는 관세 폭탄을 피해가게 됐다. 불라 CEO는 화이자가 미국에 투자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의약품 관세를 3년 유예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9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생산기지를 두지 않는 제약사의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물린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다른 제약사와도 유사한 합의를 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더 많은 제약사가 화이자처럼 미국 내 가격을 낮출 것”이라며 “세계는 (가격이) 약간 오르겠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내려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쓰고도 외국에서는 싸게 팔아 부당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 전적으로 연구개발비를 부담해 다른 나라의 약값을 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화이자와의 협상이 해외 국가의 약가 규제를 압박하는 용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외국에서 제약사가 받는 약값을 불공정하게 인위적으로 억제해 제약사의 연구개발 비용을 사실상 미국에 전가하는 경우가 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만약 외국 정부가 불공정하게 약가를 낮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무역협상에서 해당 국가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미국은 약가 인상을 요구하고, 각국은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약가 인상 또는 규제 완화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제약사들은 미국에서 가격을 인하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더 높은 가격을 받아 미국에서의 손해를 메울 수 있게 된다.
불라 CEO는 “수년간 다른 부유한 국가들은 의료 혁신에 대한 공정한 몫을 부담하기를 거부했으며, 그 결과로 미국인들은 불균형한 비용 부담을 어깨에 져야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에 동조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약가 규제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은 자국의 의약품(신약)에 대해 혁신성에 방점을 두고 약가를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만큼 이번 협상과 USTR의 조사 결과를 압박용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이미 예견된 주장이고 일부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며 “다만,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관세 협상 등 간접적인 영향이나 압박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국은 오리지널 특허 의약품의 경우 경쟁이 없으면 기업이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는 공적 건강보험을 통해 약가를 관리한다”며 “이에 자국 신약의 혁신성 주장과 의약품 관세 협상 등을 패키지로 묶어 압박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