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예술의 도시라고 할 수 있지요? 쇤브룬 궁전, 빈 필하모닉, 모차르트 등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벨베데레 궁전의 주인공’을 떠올립니다.
1862년 오늘(7월 14일) 빈 근교 바움가르텐에서 금세공업자의 3남 7녀 중 둘째로 태어난 구스타프 클림트입니다. 벨베데레 궁전에 가면 클림트의 작품들을 보면서 빈이 이 화가를 어떻게 여기는지 실감할 수 있지요.

클림트는 33세 때 현실과 무의식을 함께 표현한 ‘사랑’으로 빈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35세 때 부르크 극장이 문을 닫기 전 모습을 담은 ‘옛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은 오스트리아 황제도 감탄시켰다고 합니다.
클림트는 30대 후반에 빈 대학교의 의뢰를 받아 대강당의 천장 패널화를 그립니다. 클림트는 ‘철학’, ‘법학’, ‘의학’을 맡았고, 그의 동료 프란츠 마치가 ‘신학’을 담당합니다. 클림트의 세 작품은 인간과 학문의 한계를 담아 교수들의 저항을 부릅니다. 처음 선보인 ‘철학’에 대해 교수 87명이 반대 성명을 냈지만, 이듬해 파리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해 교수 사회를 머쓱하게 합니다. 그러나 세 그림 모두 대학의 반대로 대강당에 걸리지 못합니다.

이때 오스트리아 교육부 장관 리터 폴 하르텔은 클림트를 지지했으며, 정부가 그 그림들을 새로 지은 현대미술관에 전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클림트는 거절합니다.
이 그림들은 클림트가 56세 때 스페인 독감으로 숨진 뒤 임멘도르프 성에 소장됐다가 나치 친위대가 퇴각하면서 불태웠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다행히 그림의 사진과 스케치가 남아있어 2021년 구글과 빈 레오폴드 미술관이 AI 기술로 복원했고, 이 그림들이 제자리를 찾아 빈 대학 대강당을 가면 천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클림트는 ‘빈 대학 사건’을 통해 학자들의 위선을 경험하고 ‘금붕어(Goldfish)’로 세상의 도덕주의자들을 조롱합니다. 그리고 ‘황금시대’를 개척해 ‘키스’, ‘다나에’ 등의 명작을 남깁니다.
클림트는 위선의 세상에 맞서 본능과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고뇌한 예술가였습니다. 외설, 변태라는 비난이 뒤따랐습니다. ‘빈 대학 사건’ 때 교수들은 클림트의 학력을 문제 삼으며 그에게 벅찬 주제라 비난했습니다. 나치는 그를 ‘퇴폐 미술가’라고 낙인찍었습니다.
그러나 클림트는 위선의 가면 뒤에 진실이 있고 누군가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진실은 불과 같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불이 붙어 타는 것을 뜻한다(Truth is like fire; to tell the truth means to glow and burn).”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덜 하는 시대, 클림트같이 세상의 틀을 바꾸는 창조적 예술가가 나올 수 있을까요? 말초적이고 일차원적 사고가 지배하는 시대, 당연해 보이는 도덕이나 상식에 문제를 제기하면 누군가의 선동에 따라 우르르 몰려가서 비난하는 ‘금붕어’들의 목소리가 온통 뒤덮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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