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년 전부터 IT업계와 게임업계에선 ‘없데이트’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업데이트’와 ‘없다’의 합성어로, “이번 신제품 업데이트 역시 지난 버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실망감이 반영된 단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단 네글자로 줄였다는 점에서 참으로 절묘한 신조어라고 하겠다.
지난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규모 의료기기 박람회 ‘KIMES 2025’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기자가 떠올린 첫 단어는 ‘없데이트’였다. 지난해 행사와 무엇이 다른가 열심히 찾아봤지만 이내 포기했다. 분명 즐겁게 현장 부스들을 관람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산업계에서는 항상 매력적인 접두사가 트렌드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디지털]이 그랬고, [스마트]가 그랬으며, 몇 년 전 [메타버스]에 이어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그래 보인다. 기업들은 이런 접두사를 과감하게 붙이면서 저마다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고 남들과 다름을 강조한다. 생존을 위해서다.
그런데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계의 어필은 그다지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바이오협회가 글로벌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의 조사를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금은 지난 2022년부터 2024년 1분기까지 꾸준히 감소했다.
국내에서 의료 AI 기업 중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은 전무하다. 매분기 ‘역대급 매출’을 내고 있지만, 실제 실적을 보면 영업적자가 덩달아 커지는 모양새다. 디지털치료기기(소프트웨어를 약처럼 처방하는 개념) 역시 최초 허가 이후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는데 애를 먹고 있다.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디지털치료기기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했던 ‘페어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4월 직원의 90%를 해고하고 파산했다.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며 큰 기대를 모았던 디지털헬스 기업 ‘아킬리’ 역시 500억원이 안되는 금액에 매각됐다. 팬데믹을 거치며 의료의 미래를 제시한다고 평가받았던 기업들이 연이어 백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최신 AI 기술로 범벅이 된 신제품을 제시하면서 KIMES를 수놓았지만 정작 실제로 환자나 의료진의 삶을 가장 많이 바꿨다고 평가 받는 것은 1999년 발명된 연속혈당측정기(CGM)다. 어떤 제품은 실제 활용까지 비용이나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어떤 제품은 허가절차나 규제 제도가 아직 아이디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시 ‘없데이트’로 돌아가보자. 사용자들이 이 단어로 실망감을 나타내는 이유는, 다시 말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이유는 뭘까? 잔치가 ‘소문났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잔치는 대단한 반찬이 없다고 해서 큰 불평이나 비판을 듣지 않는다.
지금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내놓는 제품이 ‘없데이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이나 투자자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화려한 수식어로 자사 기술을 포장하며 ‘소문난 잔치’를 만들다가 실망감에 외면하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된다.
모든 제품이 애플의 ‘아이폰’이나 오픈AI의 ‘챗GPT’가 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없데이트’를 반면교사 삼는다면 또 다른 혁신을 주도하는 헬스케어 기업이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