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구하다 숨진 50세 엄마 간호사, ‘의사자’ 인정은?

의사자 인정된 고 임세원 교수 사례와 비슷

지난 5일 경기 이천시 4층 건물 화재 당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대피를 돕다 숨진 고(故) 현은경(50) 간호사의 발인이 진행된 7일 오후 강원 원주시 하늘나래원 화장장에서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나오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5일 경기도 이천시의 신장 투석 전문 병원에서 환자들을 구하다 숨진 간호사 현은경(50)씨를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사자는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사망한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업무가 아닌데도 구조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국가가 지정한다.

두 자녀의 엄마인 현은경(50)씨는 아래층의 화재로 유독가스가 퍼져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환자 구조에 힘썼다. 충분히 피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끝까지 남아 환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고인 때문에 생명을 건진 환자들이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3층에서 시작된 불은 매캐한 유독가스를 발생시켰고, 연기는 4층 투석 병원으로 올라갔다.

고인은 의족을 낀 환자 1명과 함께 출입문 바로 앞에서 발견됐다. 이 환자는 평소 의족을 뺀 채 투석을 받아왔는데, 현 간호사가 대피를 돕기 위해 의족을 끼워주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거동이 불편했던 환자 4명과 현 간호사가 숨졌다.

고인은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홀로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의 몸에서 투석기를 떼주고 의족까지 챙기느라 마지막까지 남은 것으로 보인다. 소방 당국도 “대피할 시간은 충분했던 것으로 보여 간호사는 끝까지 환자들 옆에 있다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은 20여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며 남매를 키웠다. 딸 장지현(25)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고 아들은 현재 군복무 중이다.

고인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의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사망한 사람이 바로 ‘의사자’다. 직접적인 구조행위를 안 해도 되는 직업인데도 남을 구하다 숨진 사람이다. 의사자로 인정되면 보상금과 함께 의사자 유족에 대한 국가적 예우와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의 심사·의결 등을 거쳐 의사자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의사자로 인정된 고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사진=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그러나 의사자 인정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흉기를 든 조현병 환자로부터 간호사들을 보호하려다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 임세원 교수는 법정 다툼 끝에 의사자 인정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 2018년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중 환자가 갑자기 흉기를 꺼내 간호사, 다른 환자에게 접근하자 ‘피하라’는 손짓을 하며 멈춰서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후 유족은 고인을 의사자로 지정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적극적·직접적 행위’를 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불인정 결정을 내려 소송으로 이어졌다.

서울행정법원(제14합의부)은 고 임세원 교수의 유족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사자 인정거부 처분 취소소송’ 선고공판에서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은 보건복지부의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유족 측은 “고인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다른 통로로 갈 수 있었는데도, 간호사들과 다른 환자들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한 과정에서 범인에게 추격당해 결국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고 임세원 교수가 적극적·직접적 행위로 간호사를 구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 판결 이후 보건복지부는 고 임세원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고 현은경 간호사는 임세원 교수 사례와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대피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혼자서 피하지 않고 환자들의 대피를 돕다 유독가스에 질식돼 사망했다. 3층의 불길이 4층까지 번지지 않아 유독 연기만 피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한간호협회 홈페이지에 마련된 온라인 추모관에는 “고 현은경 간호사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언론사 기사의 댓글에도 “진정한 의인”이라며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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