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와 경찰이 앞으로 응급실 등 필수의료 현장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압수수색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의료계 반응은 부정적이다. 소아응급의료계는 보다 명확한 기준과 의료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과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관장 회의를 열고 응급실 수사 방침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7월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받던 영아가 사망한 뒤 경찰이 사고 당일과 9월 30일 두 차례 현장을 수사한 뒤 논란이 커지자 후속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특히 의료계는 두 번째 수사에서 소아응급실 대상으로는 처음으로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24시간 중증 환자 처치와 진료가 이뤄지는 응급실을 강제 수사한 것은 치료 연속성과 환자·의료진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응급실 압수수색, 필요할 때만 제한적으로 집행
정 장관은 지난달 국감에서 “경찰과 협의해 필수의료 특수성을 반영한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3일 기관장 회의에서도 복지부와 경찰은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수사 지침을 마련할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응급실이나 필수의료 현장에서 사망사고 관련 112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 출입 전 관리자와 사전 협의를 거치고 가급적 응급 진료가 일어나지 않는 공간에서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다. 또 의료사고와 관련해 수사할 때는 의료 장비·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환자 안전과 진료 연속성 보호에 필요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고려하면서 증거를 확보하겠다고 전했다.
특히 압수수색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는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집행하기로 했다. 압수수색이 불가피할 때는 비진료공간에서 우선적으로 영장을 집행하고 의료 기록과 관련해선 행정 및 전산 담당자와 먼저 협의하는 등 수사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정 장관은 “수사 가이드라인 마련으로 현장 의료진이 불안감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며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의료계 및 경찰청과 논의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직무대행도 “경찰은 그간 의료 현장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존중하며 신중하게 수사해 왔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은 그 원칙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가이드라인 초안에 환자와 의료진 반응 엇갈려
두 기관의 발표를 두고 환자와 의료진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환자 단체는 이번 조치가 자칫 의료사고 수사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의료계는 이번 지침이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미완성 가이드라인이라는 입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증거 확보는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진실 규명의 핵심 수단”이라며 “응급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가이드라인 제정이 응급환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넘어 의료사고 수사 전반을 제한하거나 위축시키는 방침으로 확대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최근 10년간 응급실 현장 압수수색 영장의 신청·청구·발부·집행 현황을 전수조사해 실제 압수수색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라는 주장도 내놨다.
환자단체연합회는 “가이드라인은 환자 안전과 증거 보존·확보를 함께 보장해야 한다”며 “향후 제정 과정에 환자 단체를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가이드라인을 두고 '충분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소아응급의학회는 “필수의료 현장의 압수수색과 112 신고 대응 지침을 정리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현재 공개된 안은 의료 현장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복지부와 경찰이 제시한 ‘형사소송법에 따라 의심 정황이 있는 경우에 한정적으로 압수수색을 집행한다’는 내용은 일반적인 수사원칙을 다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소아응급의학회는 "살인 등 중대 강력범죄나 명백한 증거인멸 우려가 확인되는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강제수사를 제한하는 수준의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이런 기준 없이는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 광범위한 강제수사가 이뤄질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안에는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수사 과정에서 전문가 사전 의견 반영 절차’와 ‘무분별한 영장 집행을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통제 장치’가 빠져 있다”며 “조속한 추진에만 치중하지 말고 가이드라인을 의료계와 투명하게 공유해 균형 잡힌 최종안을 마련해달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