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약을 먹은 지 5년째. 최근 진료실에서 잰 혈압은 135/82였다. 140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의사는 혈압약 용량을 올리는 대신, 약을 하나 더 쓰자고 했다. 140만 안 넘으면 된다더니, 그동안 관리를 잘못한 걸까?
그가 잘못한 건 없다. 그사이 ‘목표 기준’이 바뀌었다.
진단은 그대로인데, 왜 ‘목표’만 내려갔나?
대한고혈압학회가 지난 5월 『2026 고혈압 진료지침』(제6판)을 발간했다. 2022년 부분 개정 이후 4년 만이다.
고혈압 진단 기준은 140/90mmHg 이상으로 그대로다. 합병증이 없고 심뇌혈관 위험이 높지 않은 고혈압 환자의 목표혈압도 140/90 미만으로 같다. 달라진 것은 당뇨병, 만성콩팥병, 뇌졸중 같은 병을 함께 가진 사람들의 목표다.

가장 큰 변화는 당뇨병이다. 2022년 지침은 당뇨병 환자를 다시 둘로 나눴다. 다른 심뇌혈관 위험인자나 합병증이 없으면 140/90 미만, 위험인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130/80 미만을 ‘고려’하는 수준이었다.
2026년 지침은 이 구분을 없앴다. 위험인자가 전혀 없는 당뇨병 환자는 2%도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당뇨병이 있다면, 목표는 모두 130/80 미만.
뇌졸중을 겪은 환자도 수축기혈압 목표가 140 미만에서 130 미만으로 내려갔다. 단, 예외가 있다. 뇌 속 혈관이 좁아진 상태에서 뇌경색을 겪은 환자다. 이들에게는 140/90 미만을 권고했다. 좁아진 혈관 너머까지 피를 보내려면 어느 정도 압력이 필요한데, 혈압을 너무 낮추면 오히려 뇌로 가는 피가 부족해질 수 있어서다.
만성콩팥병은 대상이 넓어졌다. 이전엔 소변에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단백뇨가 있을 때만 130/80 미만을 고려했다. 이번엔 단백뇨 여부와 관계없이, 환자가 견딜 수 있다면 130/80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했다. 단백뇨가 적은 환자도 혈압을 적극적으로 낮추면 콩팥 기능 악화를 늦출 수 있다는 분석이 근거가 됐다.
나이가 많으면 목표는 더 내려갈까?
75세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매일 동네 뒷산을 오른다. 다른 한 사람은 계단 몇 칸에도 숨이 차고, 1년 새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었다.
새 지침은 두 사람의 혈압 목표를 같은 숫자로 보지 않는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잘하는 노인이라면, 목표는 이전처럼 수축기혈압 140 미만이다.
물론 심혈관질환이나 만성콩팥병이 있으면 130 미만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번 새 지침은 노인에겐 이 목표를 젊은 환자보다 강하게 권고하지 않는다. 단, 아래 혈압(이완기)이 60 밑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만큼 신중하라는 뜻.
진짜 변화는 그다음이다. 노쇠한 노인, 85세 이상 고령자, 기대여명이 3년 이내인 환자, 일어설 때 어지럼증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기립성 저혈압 환자들에게는 정해진 목표 숫자를 두지 않았다.
의사가 환자의 전반적인 몸 상태를 보고 목표를 따로 정한다. 혈압을 너무 낮추면 어지럼증이나 낙상, 골절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혈압을 몇까지 낮추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근거도 아직 부족하다. 이번 지침이 나이보다 환자의 '노쇠' 단계를 먼저 보라고 한 배경이다.
기립성 저혈압의 기준도 새로 정했다. 앉아서 잰 혈압과 비교해, 일어선 뒤 1분과 3분에 잰 수축기혈압이 20 이상, 또는 이완기혈압이 10 이상 떨어지는 경우다. 혈압약을 먹는 고령자가 아침에 일어날 때 어지럽거나, 식사 후 힘이 빠지거나, 화장실에 가다 휘청거린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다.
부산 동래봉생병원 이용환 부원장(순환기내과)은 “같은 80세라도 어떤 환자는 130 미만까지 적극적으로 낮추는 게 유익하고, 어떤 환자는 낙상을 피하려고 150 정도로 조절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며 “고령 환자의 혈압을 낮추는 목적은 보기 좋은 숫자가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혼자 힘으로 생활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했다.
약 먹는 방식도 달라지나?
혈압 숫자 10의 차이는 진료실에서 약 하나의 차이가 될 수 있다. 새 지침은 두 가지 약을 함께 써야 할 땐, 두 기능을 한 알에 담은 ‘단일제형복합제’를 우선 고려하도록 했다. 복합제를 용량에 따라 초저용량, 저용량, 표준용량, 고용량으로 나누는 기준도 새로 마련했다.
노인은 접근법이 조금 다르다. 젊은 성인의 절반 용량에서 시작해, 반응을 보며 천천히 늘린다. 80세 이상이거나 노쇠한 노인은 처음부터 두 가지 약을 쓰기보다 한 가지 약으로 시작하는 것을 먼저 고려하도록 했다.
이 부원장은 “저용량 약 두 가지를 한 알로 먹으면, 한 가지 약의 용량을 계속 올리는 것보다 부작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어지럽다고 약을 임의로 줄여선 안 된다”며 “적극적인 혈압 치료가 오히려 기립성 저혈압 위험을 낮춘다는 보고도 있다”고 덧붙였다.
병이 여럿이면, 혈압은 누가 책임지나?
바뀐 지침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사람은 당뇨병, 만성콩팥병, 뇌졸중을 함께 앓는 고혈압 환자다. 그런데 혈당은 내분비내과, 콩팥은 신장내과, 뇌졸중은 신경과에서 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일부 혈압약은 콩팥 수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SGLT2 억제제 같은 당뇨병 약은 혈압도 함께 낮춘다. 진료과마다 처방이 따로 움직이면, 130이라는 목표는 누구의 숫자도 아니게 된다.
동래봉생병원 같은 경우, 순환기내과와 내분비내과, 인공신장실을 갖춘 신장내과, 신경과가 한 병원 안에서 진료한다. 이 부원장에 따르면, 여러 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같은 날 진료를 마치는 ‘원스톱 당일 통합 진료’를 활용한다. 진료과끼리는 전자의무기록(EMR) 협진 의뢰와 핫라인으로 24시간 안에 의견을 주고받는다.
혈압 숫자 하나만 봐서도 안 된다. 고혈압이 오래되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좌심실 비대’가 생길 수 있다. 지침은 이를 ‘무증상 장기 손상’으로 분류하고, 진단에는 심장초음파가 유용하다고 했다.
심장초음파 인증의이기도 한 이 부원장은 “같은 135라도 심장초음파에서 좌심실 비대가 보이면 관리 목표가 달라진다”고 했다. 다른 합병증이 없어도 ‘고위험 고혈압’으로 보고 목표를 130/80 미만으로 잡기 때문.
특히 당뇨병이나 만성콩팥병 환자는 잠자는 동안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야간고혈압이 동반될 수 있다. 심장초음파와 24시간 활동혈압검사로 진료실 혈압이 놓친 손상까지 찾아내야 한다.
20, 30대는 ‘아래 혈압’만 높아도 고혈압?
젊은 층을 겨냥한 변화도 있다. 위 혈압(수축기)은 140 미만인데 아래 혈압(이완기)만 90 이상인 경우. 새 지침은 이를 ‘이완기단독고혈압’으로 새로 분류했다. 수축기혈압이 정상이어도 심혈관질환 위험이 뚜렷하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
‘젊은 연령 고혈압’ 항목도 신설됐다. 2022년 기준 20~39세 고혈압 유병자는 약 89만 명. 하지만 자신의 고혈압을 알고 있는 사람은 36%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자신의 혈압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내고 있다는 얘기다.
젊은 고혈압 환자의 14~33%는 다른 질환이 혈압을 끌어올리는 ‘이차성 고혈압’이라는 보고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차성 알도스테론증’. 콩팥 위에 붙은 부신(副腎)에 혹이 생기거나 부신이 커지면서, 혈압을 올리는 호르몬 알도스테론이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지는 병이다. 새 지침이 젊은 고혈압 환자에게 이차성 고혈압 선별검사를 권고한 이유다.
왜 지금, 혈압을 다시 봐야 하나?
기온이 떨어지면 혈관이 수축하고 혈압이 오르기 쉽다.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부터 한겨울까지, 뇌졸중과 심근경색 같은 고혈압 합병증에 특히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겨울을 앞둔 지금이 새 목표에 맞춰 혈압을 점검할 때다.
새 지침은 진료실 밖 혈압도 강조했다. 집에서 잰 가정혈압은 135/85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본다. 병원 진료실 기준(140/90)보다 낮다. 반지형 같은 커프리스(cuffless) 혈압계도 활용을 고려할 수 있게 됐지만, 측정의 표준은 여전히 위팔에 감는 커프(cuff)형 혈압계다.
관리가 무너진 혈압의 끝에는 심근경색이 있다. 응급상황이다. 이 부원장은 “응급실로 오는 심근경색 환자 가운데 혈압약을 임의로 끊었거나, 혈압이 높은 줄 모르고 지낸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고 했다.

[FAQ] 고혈압 새 진료지침: 내 목표혈압은 몇일까?
혈압이 135/85면 고혈압인가요?
진료실에서 잰 혈압이라면 고혈압 전(前)단계에 해당합니다. 진료실 기준 고혈압 진단 기준(140/90mmHg 이상)은 2026 지침에서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집에서 잰 가정혈압은 135/85mmHg 이상을 고혈압으로 봅니다. 당뇨병, 만성콩팥병, 뇌졸중 병력이 있는 고혈압 환자라면 이미 목표혈압(130/80mmHg 미만)을 넘은 상태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혈압을 130 아래로 낮춰야 하나요?
건강한 65세 이상 노인의 목표는 기존과 같은 수축기혈압 140mmHg 미만입니다. 노쇠(frailty)한 노인이나 85세 이상 고령자는 정해진 숫자 대신 상태에 맞춰 목표를 따로 정합니다. 이때 환자는 약을 스스로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부모님이 ‘노쇠’한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2026 고혈압 진료지침에 실린 K-FRAIL 설문으로 간단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늘 피곤했는지, 혼자 쉬지 않고 계단 10개를 오르기 힘든지, 300m를 걷기 힘든지, 만성질환이 5개 이상인지, 1년 새 체중이 5% 이상 줄었는지를 봅니다. 3개 이상 해당하면 노쇠, 1~2개면 노쇠 전단계로 판단합니다.
병원에 가기 전에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외래 방문 직전 5~7일 동안 가정혈압을 기록해 가면 도움이 됩니다. 아침에는 약을 먹고 식사하기 전에, 저녁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잽니다. 화장실을 다녀와 5분간 안정한 뒤 1~2분 간격으로 반복해 측정합니다.
도움말=동래봉생병원 이용환 부원장(순환기내과). 부산대 의대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장내과 분과전문의, 심장혈관중재술 인증의, 심장초음파 인증의. 고혈압과 심부전, 협심증 등 허혈성심질환을 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