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생활을 비교적 잘 하던 30대 남성이 갑자기 거친 말을 쏟아내고 공격성을 보인 뒤 직장과 가정을 모두 잃었다.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반복하는 등 조현병 증세를 보여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조현병(정신병)인 줄 알고 복용한 약물도 전혀 듣지 않았다. 이 환자는 정밀검사 결과 뜻밖에도 뇌가 쪼그라드는 일종의 조기 치매인 것으로 드러났다.
방글라데시 국립신경과학연구소 및 병원 연구팀에 의하면 이 35세 환자는 3년 전부터 성격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해 조현병 치료를 받다가 최근 ‘행동 변이형 전두측두엽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환자는 발병 초기부터 감정 표현이 메마르고 공감 능력이 떨어졌으며, 사회적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언어를 쓰고 공격성을 드러냈다.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언어 장애가 나타났다.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몸을 잘 씻지 않는 등 자기 방임 증세까지 보였다. 이로 인해 직장을 잃고 아내와 이혼하는 등 일상생활이 무너졌다
의료진은 조현병을 강력히 의심하고 환자에게 클로자핀, 아리피프라졸 등 항정신병 약과 기분 조절제를 처방해 꾸준히 복용토록 했다. 하지만 환자의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뇌 컴퓨터 단층촬영(CT)에서는 뇌실(뇌 속의 뇌척수액이 차 있는 공간)이 커져 있어 뇌에 물이 차는 뇌수종(수두증)으로 잘못 판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경과에서 정밀 진찰한 결과는 달랐다. 환자는 이마나 입술 주변을 가볍게 두드릴 때 비정상적인 반사 반응이 나타나는 전두엽 해방(탈억제) 징후, 즉 원시 반사를 보였다. 이어 진행한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는 뇌 앞쪽(전두엽)과 옆쪽(측두엽)의 조직이 심하게 말라비틀어지듯 위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실이 커진 것은 물이 차서가 아니라 뇌세포가 소실돼 빈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의료진은 주요 원인 유전자 변이 검사를 했으나 특이한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의료진은 진행성 행동 장애와 뇌 위축 패턴 등을 토대로 ‘추정 행동 변이형 전두측두엽 치매’라는 최종 진단을 내렸다.
이 사례(증례) 연구 결과(Young-onset behavioural variant frontotemporal dementia mimicking schizophrenia: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옥스퍼드 의학 증례 보고(Oxford Medical Case Reports)》에 실렸다.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에 생기는 전두측두엽 치매는 감정, 충동 조절, 성격, 사회적 판단을 담당하는 뇌 앞쪽과 옆쪽의 부위가 먼저 망가지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임상 증상과 뇌 손상 부위에 따라 크게 행동변이형 전두측두엽 치매(전체의 약 70%), 의미 치매(Semantic Dementia, 약 20%), 진행성 비유창(어눌) 실어증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65세 미만에 주로 시작돼 대표적인 조발성(조기 발병) 치매로 꼽힌다. 인지 및 기억력 감퇴가 먼저 찾아오는 전형적인 알츠하이머병과는 다르다.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는 초기 기억력을 비교적 잘 유지한다. 그러나 갑자기 참을성이 사라져 화를 내거나, 도벽·폭식 등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성격 변화를 드러낸다.
특히 이 환자처럼 4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는 전체 전두측두엽 치매의 약 10%에 그친다. 환자의 대다수가 초기에는 감정이 무뎌지고 무기력, 환청, 망상, 혼잣말 등 증상을 보인다. 이 때문에 조현병이나 주요 우울장애, 양극성장애(조울증) 등 1차 정신질환으로 오진되기 쉽다. 실제로 관련 연구 결과를 보면 행동 변이형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의 약 50%가 초기 단계에서 정신질환 진단을 받는다. 특히 정확한 치매 판정을 받기까지 평균 5~6년이나 걸린다.
국내에서도 65세 미만에 발생하는 조기 치매(초로기 치매)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앙치매센터 통계에 따르면 조기 치매 환자 수는 약 7만~8만 명으로 전체 치매 환자의 8~10% 수준이다. 경제 활동과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해야 할 청장년기에 발병하는 조기 치매는 환자 본인의 실직과 소득 단절, 가정 파탄, 간병인의 돌봄 부담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 사례는 젊은 나이에 성격 변화, 충동조절 장애, 비사회적 행동이 서서히 악화되고 정신과 약물 치료에도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정신질환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늦기 전에 정밀 신경학적 진찰과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로 뇌의 기질적 손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치료 방향을 바로잡아야 환자와 가족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알츠하이머병(알츠하이머성 치매)과 전두측두엽 치매는 어떻게 구별하나요?
A1. 알츠하이머병은 최근 기억부터 잊어버리는 장애가 초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반면 전두측두엽 치매는 초기 기억력이 좋은 편이지만 충동조절 실패, 성격 변화, 공감 능력 결여, 거친 언어 사용 등 행동과 성격 이상이 먼저 나타납니다.
Q2. 젊은 층에서 전두측두엽 치매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A2. 뇌 전두엽과 측두엽 부위에 타우 단백질이나 특정 비정상 단백질(TDP-43)이 쌓여 뇌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발생합니다. 일부는 유전적 돌연변이(C9orf72, MAPT 등)로 발병하지만, 이번 사례처럼 유전자 변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어도 걸릴 수 있습니다.
Q3. 조현병 치료를 받던 사람을 치매 환자로 의심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신호는 있나요?
A3.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을 수개월 이상 적절히 복용해도 반응이 없거나 증상이 오히려 더 나빠질 때, 일상적인 대인관계와 사회적 판단력이 점차 무너질 때, 말수가 줄면서 숟가락질이나 씻기 등 기본 생활 기능까지 빠르게 퇴행한다면 특정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신경과에서 뇌 MRI 검사 등으로 원인을 정확히 알아 대처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