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영광은 ‘광유전학’의 토대를 마련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페터 헤게만 독일 훔볼트대 교수, 게오르크 나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를 선정했다. 수상 이유는 '빛 개폐 이온통로와 광유전학에 관한 발견'이다.
광유전학(Optogenetics).
이름은 어렵지만, 이미 학계에서는 이 개념의 등장으로 뇌·신경과학의 새 지평이 열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혁신적인 기술이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뇌세포의 실시간 관찰과 제어가 가능해진 덕분이다.
현재는 광유전학을 활용해 시력을 완전히 잃은 사람이 앞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신경 손상 치료를 더 정밀하게 만들며, 비만약의 작용 원리를 이해하는 등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광유전 망막색소변성증 치료제 허가 절차 돌입
광유전학의 핵심 원리는 뇌세포가 특정한 파장의 빛에 반응하도록 만든 뒤 해당 파장의 빛을 비춰 세포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응용하면 뇌세포를 실시간으로 멈추거나 움직이게 만들 수 있고, 신경 회로에서 특정 작용이 일어났을 때 동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실제 치료에 적용한 첫 번째 장기는 ‘눈’이다.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부위 중 빛이 도달하기 가장 쉽다는 특성 덕분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9월 9일 바이오기업 나노스코프 테라퓨틱스의 망막색소변성증 치료제 ‘모젠리(MOGENRY)’의 생물의약품허가 신청 심사에 들어갔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빛을 감지하는 망막의 시각세포가 서서히 손상되는 유전병이다. 처음에는 주변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으로 시작해 점점 시력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결국 실명에 이른다.
기존에 이 병 치료제로 유일하게 허가를 받은 노바티스의 ‘럭스터나’는 시각세포 손상을 유발하는 돌연변이가 일어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한다. 원인 유전자를 제거하고 정상 유전자를 보충하는 약이지만, 최소한의 망막 세포가 남아있어야 투여가 가능하고 그마저도 일부 변이(RPE65)가 확인된 환자만 적용 대상이다.
모젠리는 이와 다르게 망막에 남아있는 양극세포가 빛에 반응하도록 기능을 바꾼다. 원래 양극세포는 시각세포가 받은 신호를 망막신경으로 넘기는 역할을 하는데, 광유전학을 활용해 양극세포가 직접 빛 신호를 처리할 수 있도록 빛 감지 단백질을 주입하는 것이다.
모젠리가 허가를 받으면 시력을 잃은 중증 망막색소변성 환자에게 유전자 변이와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첫 치료 선택지가 생기게 된다.
비만치료제 작용 원리도 광유전학으로 밝혀내
서울대 의대·뇌인지과학과 최형진 교수 연구팀은 광유전학을 활용해 비만치료제의 식욕 억제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위고비나 마운자로가 작용하는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가 어떻게 식욕을 억제하는지를 빛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최 교수 연구팀은 GLP-1 수용체가 사람의 뇌 중에서도 ‘배측내측 시상하부핵(DMH)’에 많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진 쥐 실험에서 연구팀이 빛으로 생쥐의 DMH에 있는 GLP-1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자, 쥐는 즉각 배부름을 느끼고 식사를 중단했다. 반대로 DMH의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억제했을 때는 쥐가 식사를 계속했다.
GLP-1 계열 치료제는 강력한 식욕 억제와 체중 감소 효과가 있지만, 정확히 뇌의 어느 부위에 작용하는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최 교수 연구팀은 신경과학(광유전학)과 내분비학(대사질환)이라는 두 이질적인 분야를 융합해 비만치료제의 본질적인 이해를 제공했다.
최 교수는 5일 노벨상 수상자 발표 직후 과학 유튜버 ‘안될과학’과의 통화에서 “(광유전학은) 뇌과학은 물론 의학적으로도 가능성이 큰 뛰어난 기술”이라며 “한 명의 과학자로서 광유전학의 노벨상 수상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다발성경화증이나 신경 손상도 치료 가능성
광유전학을 통해 제어할 세포의 범위를 넓히려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은 이론상 신경세포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세포에 적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학계는 광유전학이 뇌나 심장, 청각 등 환자의 특정 장기에 직접 적용하는 방향보다는 당분간 약물이나 신경조절 치료 설계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 ‘신경교세포’다. 뇌와 척수 등의 신경계에서 신경세포(뉴런)의 기능을 보조하는 필수 세포 중 하나다. 직접적인 전기 신호 전달을 하지는 않지만 뉴런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수진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광유전학의 조절 대상을 신경교세포까지 확장하면, 그동안 보조 역할로만 여겨온 이들 세포가 실제로 무엇을 결정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형 교수는 이미 2023년 다양한 신경교세포의 역할을 광유전학으로 규명한 여러 논문을 메타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최신 세포 신경과학(Frontiers in Cellular Neuroscience)》에 발표했다.
당시 연구에서 그는 “신경교세포가 빛 자극에 따라 다양한 신경 기능에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오랜 시간 신경세포의 보조 세포로 취급되던 교세포가, 사실 신경 기능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주체였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광유전학의 개념을 적용해 빛 자극으로 신경교세포를 켜고 꺼보는 방식을 사용한 결과다.
형 교수는 또 “다발성경화증이나 신경 손상은 신경교세포와 신경 섬유를 감싸는 막(수초)의 상호작용이 치료의 핵심 개념인 질환”이라며 “광유전학을 통해 어느 회로가 원인인지 확인하면 기존 치료를 더 정밀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