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할머니의 몸은 모순 그 자체였다.
일주일 전쯤 침대에서 떨어지셨고, 다음 날 새벽 화장실을 다녀오다 한 번 더 넘어지셨다. 이후 제대로 걷지 못한 채 지내다가, 입원 이틀 전부터 의식까지 흐려져 응급실에 실려 오셨다.
검사 결과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심장 한쪽에는 피가 엉겨 붙은 혈전 덩어리가 보였고, 폐동맥과 오른쪽 종아리 정맥에도 작은 혈전이 있었다. 뇌 MRI에는 심장에서 떨어져 날아왔을 혈전들이 뇌혈관을 막아 여기저기 뇌경색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더 이상의 진행을 막으려면 당장 피를 묽게 하는 치료가 필요했다.
그런데 같은 몸에서, 한쪽에서는 피가 새고 있었다. 낙상의 충격으로 오른쪽 허벅지와 왼쪽 허리 깊숙한 근육에는 커다란 혈종이 고여 있었다. 헤모글로빈은 수혈이 필요할 만큼 떨어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피를 묽게 하면 이미 생긴 출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었다.
항응고제를 쓰면 출혈이 계속되어 환자를 잃을 수 있고, 쓰지 않으면 혈전이 악화되어 환자를 잃을 수 있는 상황. ‘양날의 검’과 같은 항응고제를 쓸 것인가를 두고 순환기내과에 묻고, 신경과에 묻고, 정형외과에 물었다. 각 과가 혈전과 출혈의 위험을 저울질하며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 끝에 출혈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항응고치료를 시작하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이미 생긴 혈전이 커지거나 여러 혈관이 막히는 합병증 위험을 더 크게 본 것이다. 혹시 출혈이 심해져 혈압 같은 활력 징후가 흔들리지는 않는지 반복해서 확인하고, 필요하면 수혈로 보충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피검사를 했고 수치를 확인할 때마다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가슴을 졸여야 했다. 중간중간 헤모글로빈이 뚝 떨어져 가슴이 내려앉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대량출혈 징후는 보이지 않았고 몇 번의 수혈로 빈혈은 어느 정도 교정되었다.
할머니의 뇌경색과 낙상이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이 먼저 발생한 것인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어찌 됐건 다행히도 할머니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고는 해도, 회진 때의 대화는 늘 짧았다. 90세가 넘은 연세에 귀도 어두우셔서 목소리를 높여 증상을 물으면 몇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시거나, 방향이 조금 어긋난 대답을 하시곤 했다. 소통이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어느새 할머니를 ‘검사 수치로 이해하는 환자’로 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헤모글로빈과 크레아티닌 수치가 좋아지면 할머니도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할머니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퇴원하시던 날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병실에 들렀는데, 침상 옆에 못 보던 것이 놓여 있었다. 작은 액자. 그 안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강아지네요, 하고 무심코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 순간, 입원 내내 몇 마디 나누기도 어려웠던 할머니가 얼굴이 환해지고 목소리도 갑자기 또렷해졌다.
“태어난 지 두 달쯤 됐을 때 흑석동에서 데려왔어. 지금은 많이 컸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발음이었다. 검사 수치 어디에도 없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 그 직전의 다른 환자와의 면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계통위축증을 앓는 70대 환자와 긴 이야기를 나누며 치료에 대하여 설득하려 했었다. 호흡을 유지하려면 기관절개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왜 이 시술이 필요한지,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되풀이해 설명했다. 환자는 끝내 거부했다. 더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의학적 필요를 설명하는 사람이었고, 환자는 삶의 무게를 힘겨워하는 사람이었다. 그 면담을 마치면서 설득하지 못했다는 좌절과, 더 설득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뒤엉켜 있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의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생명인지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인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만 남았다.
그런 상태로 할머니의 병실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되살아난 할머니의 목소리가 내 마음의 어느 약한 곳을 건드렸다. 조금 전까지 나는 한 사람에게 삶을 더 이어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진이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누구도 삶의 이유를 묻지 않았고, 누구도 그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작은 액자 하나와 “지금은 많이 컸지”라는 한마디가 있을 뿐이었다.
그 무거웠던 ‘산다는 것’이라는 말이, 강아지 액자 앞에서는 문득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예후를 묻지도, 치료 방침을 따져 묻지도 않았다. 다만 집에 많이 커버린 강아지가 있다는 것, 그 강아지가 두 달쯤 되었을 때 흑석동에서 데려왔다는 것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을 뿐이다. 그것이 할머니가 살아야 할 이유였다고 내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순간에는 알 것 같았다. 한 사람을 삶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때로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작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떤 이에게 삶은 더 견뎌야 할 무게가 되고, 또 어떤 순간의 삶은 기다리는 존재 하나만으로 가벼워지기도 한다. 삶을 붙드는 일도 놓아주는 일도, 의학의 말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걸어서 퇴원하지는 못하셨다. 집이 아니라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가시는 길이었다. 혈전과 출혈 사이에서 외줄을 타며 우리가 지켜낸 것은 거기까지였다. 강아지가 기다리는 현관까지는, 아직 한 정거장이 더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송 침대에 누워 병실을 나서던 할머니가, 마지막에 웃으셨다. 입원 내내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 미소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침대 한켠에 실려 할머니와 함께 떠나던 작은 액자를 떠올리며 짐작할 뿐이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할머니가 가시는 요양병원 침상 곁에도 그 액자가 놓일 것이다. 두 달짜리 강아지를 데려오던 흑석동의 어느 날이 액자 속에서 할머니를 기다릴 것이다. 언젠가, 많이 큰 강아지가 현관에서 꼬리를 흔드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