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회진을 돌 때 환자들에게 가장 먼저 잠은 잘 주무셨는지, 식사는 잘 하셨는지를 묻는다. 그런데 “잘 잤어요. 좋습니다”라는 대답을 듣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오히려 환자들은 나를 보자마자 대개 이렇게 말한다.
“잠이 안 와서 죽겠어요. 저는 좋아지려고 입원한 건데 이렇게 못 자면 병이 낫나요?”
잠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야 할 때는 그렇게 졸립다가도, 막상 자리를 깔고 누우면 희한하게 잠이 오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특히 ‘오늘은 꼭 자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잠은 더 달아난다. 내일 일정이 바쁘니 빨리 자야 한다며 초조해 하고, 잠이 드나 안 드나 스스로 확인하고, 시계를 쳐다볼수록 머리는 오히려 또렷해진다. 잠들기 위해서는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야 하는데, 우리는 잠이 안 올수록 더 열심히 자려고 한다.
입원한 환자들은 어떨까. 예상대로다. 집에서는 수면에 큰 문제가 없던 사람도 병원에 오면 불면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입원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환경이 잠을 방해하는 조건을 거의 빠짐없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입원했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통증이 있으면 당연히 잠들기 어렵다. 통증이 없더라도 앞으로 받을 검사, 아직 나오지 않은 결과, 갑자기 생긴 병에 대한 걱정은 사람을 긴장시키고 각성시킨다. 맞고 있는 수액이나 새로 시작한 약 때문에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도 한다.
입원생활은 자연스럽게 활동량도 줄인다. 집에서는 식사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 출퇴근하고, 산책이라도 했을 사람이 병원에서는 하루 대부분을 침대 주변에서 보낸다. 몸이 아파서이기도 하고, 검사를 기다려야 해서이기도 하고, 수액 줄을 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은 침대 하나뿐이다. 침대에 계속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눕게 되고, 그러다 낮잠을 잔다. 낮잠을 오래 자면 밤잠이 달아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루 종일 실내에 있으면서 햇빛을 볼 기회도 줄어든다. 빛은 우리 몸의 생체시계를 맞추는 중요한 신호다. 낮에는 밝은 빛을 충분히 받아야 몸이 ‘지금은 낮’이라는 것을 알고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밤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수면을 준비할 수 있다. 반대로 낮에도 어두운 병실에만 있고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의 밝은 화면을 보고 있으면 낮과 밤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도 잠자기에는 썩 좋은 곳이 아니다. 1인실을 쓰는 일부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룸메이트를 만난다. 그런데 그 룸메이트 역시 대부분 아픈 사람들이다. 통증 때문에 신음하기도 하고, 밤중에 화장실을 가기도 하고,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여행을 가서 처음 만난 사람과 같은 방을 쓰는 것만 해도 불편한데, 입원 중에는 서로가 가장 편하지 않은 시기에 계속 바뀌는 사람들과 한 방을 써야 하는 셈이다.
병원은 또 24시간 움직이는 공간이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밤에도 간호사들은 병실을 오간다. 겨우 잠이 들면 혈압을 재고, 다시 잠이 들 만하면 주사를 맞고, 새벽이 되면 채혈 시간이 찾아온다. 모두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다만 잠의 입장에서 보면 꽤 가혹한 일정이다.
여기에 병실의 온도와 습도, 침구까지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편안하게 느끼는 환경은 다른데 병원은 개인의 취향을 모두 맞출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병원은 몸을 낫게 하는 곳인데, 잠을 자기에는 그다지 좋은 장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입원하면 잠을 못 자는 운명을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선 평소보다 잠을 조금 못 자는 것이 입원 중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수면에 도움이 된다. ‘내가 왜 이렇게 잠을 못 자지?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닐까?’ 하고 걱정할수록 과각성은 더 심해지고 잠은 더 멀어진다. 이는 일반적인 불면증 치료에서도 중요한 원칙이다. 있는 힘을 다해 자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오늘 조금 못 자더라도 괜찮다는 느긋한 태도가 역설적으로 잠드는 데 도움이 된다.
잠이 안 온다고 하면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수면제 한 알을 처방하는 것이다. 환자도 원하고, 의사에게도 쉽다. 실제로 불면이 심할 때 약물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특히 나이가 많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입원환자에게 수면제는 생각보다 단순한 해결책이 아니다. 약에 따라 다음 날까지 졸림이나 어지럼이 이어질 수 있고, 밤중에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 어떤 환자에서는 혼란이 심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수면제를 원하는 환자를 볼 때 한 번 더 생각한다. ‘이 사람은 왜 잠을 못 자고 있을까?’
불면 앞에서 무기력해질 필요는 없다. 약을 쓰지 않고도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가능한 범위에서 침대 밖으로 나와 걷는 것이 좋다. 산책이 어렵다면 잠시 앉아 있는 것도 괜찮다. 낮에는 가능한 한 밝은 빛을 충분히 받고, 낮잠은 줄인다. 밤에는 반대로 자극을 줄여야 한다. 가능하다면 불필요한 조명과 소음을 줄이고, 가능하다면 귀마개나 안대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잠들기 전에는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꼭 사용해야 한다면 SNS나 영상처럼 각성을 높이는 자극적인 콘텐츠는 피한다.
입원 환자를 보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것이 많다. 환자가 받고 있는 처치가 밤에 꼭 해야 하는 처치인지, 투약 시간을 조정할 수는 없는지, 통증 때문에 잠을 깨는 것은 아닌지, 너무 늦은 시간의 수액이나 이뇨제가 잠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보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잘 잤어요. 이만큼만 자면 살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잠을 거의 못 주무시던 환자에게서 아침 회진 때 이런 말을 들으면 별것 아닌데도 기분이 좋다. 혈액검사 수치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영상검사에서 병변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 환자가 밤새 조금 덜 아팠고, 덜 불안했고, 몇 시간 편안하게 잠들었다는 뜻일 테니까.
병원에서는 많은 것을 처방한다. 약을 처방하고, 검사를 처방하고, 시술을 처방한다. 하지만 때로는 환자의 몸이 스스로 회복력을 갖추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잘 수 있는 몇 시간을 지켜주는 것 역시 치료의 일부일지 모른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