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식재료였던 ‘장(醬)’이 이제 세계 미식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셰프들이 한국을 찾아 장을 직접 맛보고, 자신의 요리에 접목할 방법을 고민할 정도다.
그 중심에는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은 샘표가 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설립된 샘표는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창업주의 신념 아래 장을 만들어왔다. 80년 동안 한국인의 식탁을 지켜온 장맛이 K-푸드의 확산과 함께 이제 세계 요리를 위한 새로운 맛의 소재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한국의 ‘장’을 찾아온 이유
최근 미국 주요 도시에서 활동하는 유명 셰프들이 장과 발효를 경험하기 위해 충북 오송의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찾았다. 방문단의 면면도 화려하다.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샌프란시스코 파인다이닝 ‘세종(Saison)’의 총괄 셰프 리처드 리를 비롯해 뉴욕 ‘하브 앤 마르(Hav & Mar)’를 이끄는 파리얄 압둘라히, 필리핀 음식점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시카고 ‘카사마(Kasama)’의 공동 오너 셰프인 지니 권 등이 함께했다. 또 외식 브랜드 ‘모모후쿠’ 총괄 디렉터를 거쳐 현재 뉴욕에서 ‘클로드(Claud)’와 ‘페니(Penny)’를 운영하는 조슈아 핀스키도 연구소를 찾았다.
이번 방문은 지난해 샘표 연구소를 찾았던 셰프들이 동료들에게 방문을 추천하면서 성사됐다.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완성된 한식 메뉴를 넘어 그 맛을 만들어내는 장과 발효로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셰프들은 맑은조선간장과 양조간장801, 된장과 고추장, 쌀 발효물 등을 차례로 맛보며 재료와 발효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경험했다. 어떤 재료와 장을 조합할 수 있을지, 자신의 요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두고 다양한 아이디어도 나눴다.
한식 조미료에서 세계 요리의 ‘발효 소재’로
세계 미식계가 한국의 장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발효를 통한 독특하고 복합적인 맛에 있다. 콩을 발효하고 숙성하는 과정에서는 아미노산을 비롯한 다양한 맛과 향의 성분이 형성된다. 이 때문에 장은 짠맛을 더하는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음식에 감칠맛과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장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간장·된장·고추장이 주로 한식을 만드는 전통 조미료로 인식됐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발효 소재’로 가능성이 확장되고 있다.
샘표 역시 전통 장을 기반으로 발효 연구의 범위를 넓혀왔다. 콩 발효의 감칠맛을 활용한 요리에센스 연두를 비롯해 짠맛과 매운맛을 조절하면서 발효의 깊은 맛을 살린 유기농 고추장, 대두 대신 완두를 발효해 간장의 풍미를 구현한 완두간장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장맛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식물성 원료와 발효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맛을 만드는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한 것이다.
1946년 시작한 장맛, 80년 지나 세계의 식탁으로

1946년 시작된 샘표의 역사는 올해로 80년을 맞았다. 첫 시작도 간장이었다. 사명을 내걸고 ‘샘표 간장’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제품에서 ‘가족이 먹지 못할 음식은 만들지 않는다’는 샘표의 철학과 간장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제 한국인의 식생활은 크게 변했다. 집집마다 장을 담그던 문화에서 제품화된 장을 이용하는 가정이 늘었고, 이제 간장과 된장, 고추장은 한국을 넘어 해외 소비자에게도 점차 익숙한 식재료가 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장의 세계화가 단순히 ‘한식을 해외에서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의 음식 문화와 조리법을 가진 해외 셰프들이 장과 발효를 하나의 새로운 맛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요리에 적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효 장의 가치는 맛뿐만 아니라 건강 측면에서도 인정 받고 있다. 된장과 간장의 주된 재료인 콩에 함유된 이소플라본은 발효 과정에서 체내 이용이 용이한 형태의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된장과 같은 발효 콩 식품의 섭취와 대사 건강의 연관성을 살펴본 연구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세계 미식계가 주목하는 장의 깊은 맛에 더해, 발효가 만들어내는 영양학적 가치 역시 우리 장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유다.
샘표 관계자는 “세계적인 셰프들이 바쁜 방한 일정에도 샘표 연구소를 찾아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우리 장과 발효에 대한 세계 미식계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음을 실감한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협력하며 우리 장과 발효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