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몸무게에 BMI까지 같아도 심장의 나이는 다를 수 있다. 손으로 잡히는 살보다 배 속 장기 주변에 숨어 있는 지방이 심장을 더 빨리 늙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퀸메리런던대 윌리엄하비연구소의 신시아 말도나도-가르시아 박사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 참가자 3만4496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영국심혈관학회 공식 학술지 《하트(Heart)》에 발표됐다.
연구 대상자의 평균 나이는 63.5세였으며, 55%인 1만8978명이 여성이었다. BMI 중앙값은 25.7kg/㎡였고, 전체의 58%가 과체중 또는 비만으로 분류됐다. 연구 시작 당시 심혈관질환이 없고 심장과 복부 자기공명영상(MRI), 건강기록 자료를 모두 갖춘 사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MRI로 △복부 장기 주변에 쌓인 내장지방 △피부 아래에 있는 복부 피하지방 △심장 주변의 심낭지방을 측정했다. 이어 심장의 구조와 기능을 보여주는 56개 MRI 지표와 머신러닝을 이용해 각 참가자의 ‘생물학적 심장 나이’를 추정했다. 이후 평균 5년 가까이 추적해 체지방의 위치가 심장 노화와 심혈관질환 발생에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지 살폈다.
분석 결과, BMI가 같아도 체지방이 쌓인 위치와 심장 노화 정도는 크게 달랐다. 세 부위의 지방이 모두 많은 집단은 심장 노화가 더 빠른 고위험 유형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지방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집단에서는 심장 노화 속도가 느린 경향이 확인됐다. MRI로 파악한 지방 분포 유형은 BMI 기준보다 생물학적 심장 나이와 더 뚜렷한 연관성을 보였다.
세 지방 가운데 심장 노화 및 향후 심혈관질환 발생과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인 것은 내장지방이었다. 내장지방은 간과 췌장, 장 등 복부 장기 주변 깊숙한 곳에 쌓인다. 지방이 많아지면 배가 앞으로 밀려나와 흔히 ‘술배’처럼 단단하고 불룩하게 보일 수 있다.
심장 주변에 쌓이는 심낭지방도 처음에는 심장 노화 및 심혈관 건강 악화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내장지방량을 함께 반영하자 심낭지방의 독립적인 영향은 크게 줄었다. 심혈관질환과 지방의 연관성에서 심장 노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내장지방이 14%로 가장 컸다. 심낭지방은 11%였지만 내장지방을 보정한 뒤에는 1% 미만으로 낮아졌다. 피하지방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내장지방과 심장 노화의 연관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뚜렷했다. 연구진은 BMI가 몸무게와 키의 관계는 보여주지만, 지방이 실제로 어디에 쌓였는지는 구분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몸무게가 비슷한 사람도 내장지방량에 따라 심혈관 건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 책임자인 퀸메리런던대 심혈관 데이터과학 선임임상강사이자 심장전문의 자흐라 라이시-에스타브라 박사는 “모든 체지방이 같은 위험을 지닌 것은 아니다”며 “복부 장기 주변의 지방이 심장의 생물학적 노화와 향후 심혈관질환에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BMI는 여전히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표지만 체지방의 분포까지 알려주지는 못한다”며 “BMI를 넘어 지방의 위치를 함께 살피면 체중이 비슷한 사람들의 심혈관질환 위험이 서로 다른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