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고비·마운자로 등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GLP-1 RA)’ 계열의 체중 감량 약물에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작용이나 건강개선 효과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동시에 발견되고 있다.
초기부터 심혈관은 물론, 알코올·니코틴·약물 중독 완화 효과 보고
GLP-1 계열 약물이 심장마비와 심혈관 질환, 그리고 이로 인한 사망 위험을 줄여준다는 사실은 이미 보고됐다. 관절염 환자들도 통증과 염증이 줄어들고 걷기도 수월해지는 등 증상이 호전됐다는 보고도 줄을 잇고 있다. 알코올이나 니코틴, 또는 약물 중독자에게는 지난해 희소식이 들려왔다. 알코올 중독자 48명에게 GLP-1 계열 약물인 위고비를 주 1회 투약했더니 주간 음주량이 41%, 폭음 일수는 84%가 각각 줄어들었다는 내용의 논문이 지난해 2월 의학 저널인 ‘미국의사협회지(JAMA) 정신의학’에 실렸다.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 케크 의대의 인구 및 보건학 교수인 스티브 핸더숏 박사의 연구 결과다. USC 중독과학연구소 임상연구 책임자이기도 한 헨더숏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알코올과 담배 사용 장애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GLP-1 계열 약물을 이용한 중독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관절 수술환자 임상결과 개선에도 도움

주목되는 점은 이 계열의 약물이 고관절과 무릎관절을 인공관절로 바꾸는 전치환술 수술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체중 감량과 혈당 조절 촉진을 통해 수술 환자의 임상 결과를 개선하고 의료자원 활용도 줄여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미국 보스턴대 초바니안 및 아베디시안 의대와 보스턴대 의료센터 정형외과, 그리고 로체스터의 메이요 클리닉 정형외과가 공동으로 문헌연구를 수행한 결과 드러났다. 공동 연구팀은 이를 의학학술지 ‘관절성형술 저널’ 지난 6월호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고관절 11만 9092건, 슬관절 22만7381건, 고관절 및 슬관절 426건의 수술 사례가 담긴 13건의 연구 결과를 분석해 이러한 결론을 얻어냈다. GLP-1 계열 약물이 인공관절 치환 수술의 필요성 자체를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처음엔 당뇨 주사제로 개발됐다가 의외의 체중감량 효과 때문에 살 빼는 약으로 허가받은 GLP-1 계열 약물이 앞으로 심혈관·정형은 물론 알코올·니코틴·약물 등 중독성 물질을 끊는 단주·금연·약물재활 분야로도 용도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추가 효과들, 염증 개선과 뇌 욕망 중추 관련 작용 덕분으로 추정
GLP-1 계열 약물이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효과를 보이는지에 대해선 현재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기본적으로 이 계열 약물은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고,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며, 위 배출 속도를 늦추고, 뇌에 식욕 감소 신호를 보내 혈당을 개선하고 체중을 감소시킨다. 그렇다면 혈당 개선과 체중 감소 외에 어떤 작용을 하기에 이토록 다양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15년째 GLP-1을 연구해온 이 분야 초기 개척자인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스티븐 헤임스필드 교수는 최근 루이지애나주의 CBS 계열 지역TV인 ‘WAFB 채널9’에 출연해 추가 효능의 근원을 2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헤임스필드 교수는 “심혈관계·관절계 등의 개선효과는 체중감량 덕분만이 아니며 GLP-1 계열 약물에 염증을 개선하는 특성이 있어 이러한 임상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학 페닝턴 생의학 연구센터 교수로서 ‘대사 체성분 연구소장’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염증 개선 효과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알코올·니코틴·약물에 대한 관심을 줄여주는 효과에 대해서는 “약물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아직은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GLP-1이 중독·탐닉·욕망 등을 관장하는 뇌 영역에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헤임스필드 교수는 “GLP-1 계열 약물이 염증 치료 목적으로 허가받지 않았지만 이미 의료계 일각에선 염증 치료를 위해 허가 외 용도로 처방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효과와 부작용, 용량-반응 관계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 처방 외로 이 계열 약물을 사용하는 건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5세기 대항해시대 비타민C 결핍증인 괴혈병 보고
GLP-1 계열 약물 부작용 사례로 보고된 것 중 독특한 것이 괴혈병이다.
호주 뉴캐슬 보건과학대의 영양학 및 식이요법학 교수인 클레어 콜린스 박사는 최근 호주 파이낸셜 리뷰에 “GLP-1 계역 약물 사용자에서 괴혈병 사례가 보고됐다”고 밝혔다. 괴혈병은 비타민 C가 장기간 결핍됐을 때 나타나는 결핍성 질환이다. 극심한 피로감, 무기력감, 잇몸 출혈, 치아 손실, 관절통, 상처 치유 지연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심하면 황달이나 신경병증, 치명적인 출혈과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괴혈병은 과거 15세기 대항해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장기간 바다를 항해하던 선원과 해군을 괴롭혔던 질병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몇 달 동안 원양 항해를 하면서 신선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비스킷 같은 건조 곡물이나 염장 고기만 섭취하는 바람에 비타민 C 결핍증인 괴혈병이 나타난 것이다. 1747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1716~1794)가 레몬과 오렌지 등 귤속(橘屬·Citrus) 과일을 먹였더니 괴혈병이 예방되거나 치료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괴혈병은 극복되기 시작했다.
냉장고 개발은 괴혈병을 ‘역사 속 질병’으로 만들었다. 1862년 영국의 제임스 해리슨이 기계식 냉장고를 상용화했고, 1913년 미국의 프레드 울프 주니어가 가정용 전기냉장고를 개발했으며, 1920년대 프레온 냉매 도입으로 냉장고가 대량 보급됐다. 이로써 선박과 식당, 가정에서 신선식품 보관이 일반화됐다.
이렇게 과거 대항해 시대의 유물로 여겨졌던 영양 결핍성 질환인 괴혈병이 21세기에 체중 감량을 위한 GLP-1 주사제 사용자 사이에서 다시 보고된 것이다.
식욕억제와 위장관 부작용 막기 위한 편식이 영양결핍 유발…영양관리 필요
물론 GLP-1 계열 약물이 직접적으로 괴혈병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GLP-1 계열 약물 사용에 따른 식욕 억제로 전체 음식물 섭취량이 심각하게 줄거나 편식이 심해지면서 필수 식품군 섭취가 의도치 않게 감소해 비타민C 결핍증인 괴혈병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GLP-1 계열 약물을 복용하면 메스꺼움, 구역, 구토 등 위장관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도 괴혈병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약물 사용자 중에는 위장관계 부작용을 피하거나 완화하려고 비타민 C가 풍부하게 포함된 과일·채소가 포함된 정규 식사를 간단한 가공식품이나 부드러운 식사로 대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비타민C 결핍에 의한 괴혈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괴혈병은 최근 가공식품이나 과자 등 기호식품 위주의 극단적인 편식, 체중 조절을 위한 극심한 식이 제한, 영양 불균형, 빈곤 등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소아 및 성인 환자가 나타나고 있었는데 GLP-1 계열 약물 사용자가 추가된 셈이다.
뉴캐슬 보건과학대의 콜린스 교수는 “GLP-1 계열 약물과 식이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다”며 “체중 감량 치료 과정에서 식단의 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숨겨진 미량 영양소 결핍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전문가의 영양 지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