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통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을 실수로 과다 복용한 70대 여성이 병원에 입원하고도 제때 해독제를 투여받지 못해 숨진 사실이 최근 공개된 검시 결과를 통해 알려졌다.
영국 일간 더선 등 보도에 따르면 2025년 6월 11일 당시 75세였던 바버라 코프는 발음이 어눌해지고 의식 수준이 떨어진 상태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시 음식과 물도 평소보다 훨씬 적게 섭취한 상태였다.
다른 진료 부서로 옮겨진 코프는 다음 날인 6월 12일 오후 4시께 혈액검사를 받았다. 약 1시간 뒤 나온 결과에서는 혈중 아세트아미노펜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의료진은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이를 확인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코프의 상태가 밤사이 악화돼 의료진이 두 차례 추가로 진찰했는데도 혈액검사 결과는 검토되지 않았다.
아세트아미노펜 중독 치료에 사용하는 해독제 N-아세틸시스테인(N-acetylcysteine·NAC)은 6월 13일 낮 12시 30분에야 투여됐다. 검사 결과가 나온 지 약 19시간이 흐른 뒤였다. 코프는 이후 급성 간부전과 다발성 장기부전, 비의도적 아세트아미노펜 중독으로 숨졌다.
검시관 루이즈 슬레이터는 코프의 죽음을 사고사로 결론 내렸다. 그는 “아세트아미노펜 과다 복용은 간이 더 손상돼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치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슬레이터 검시관은 혈액 검체를 제때 채취하고 검사했지만 비정상적인 결과를 의료진에게 알리거나 추적 확인한 흔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됐는데도 최근 검사 결과를 살피지 않아 치료가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향후 사망 예방 보고서’를 통해 환자를 담당하는 주체와 후속 검사·치료 책임자를 명확히 정하고, 이를 의료진이 공유해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프가 입원한 병원을 운영하는 로더럼 NHS 재단 트러스트는 이 사고 이후 중대한 이상 병리검사 결과를 관리하는 절차를 검토하고 개정했다고 밝혔다. 응급진료센터에서는 위급한 혈액검사 결과를 의료진에게 알리는 호출기 시스템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국내 15개 응급실 조사에서 전체 중독의 5.2%…10대가 가장 자주 노출된 중독 물질
미 국립의학도서관에 따르면 아세트아미노펜은 통증과 열을 줄이는 약으로, 정해진 용량을 지키면 비교적 안전하다. 복용한 약의 약 90%는 간에서 독성이 없는 물질로 바뀌어 소변으로 배출된다. 일부는 ‘NAPQI’라는 독성 대사산물로 변하지만 정상 상태에서는 글루타티온이 이를 제거한다.
하지만 많은 양을 복용하면 글루타티온이 고갈돼 NAPQI가 쌓이고 간세포가 손상된다. 공복이나 영양 불량 상태, 고령, 만성적인 음주와 함께 권장량을 넘긴 복용이 반복되면 간 손상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국내에서도 아세트아미노펜 중독은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2022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14개 시·도의 15개 응급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 중독환자 5997명 가운데 아세트아미노펜 중독은 5.2%로 네 번째로 많았다. 10대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해열제가 전체 중독 물질의 21.1%로 1위를 차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해 2025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13∼18세의 의도적 아세트아미노펜 중독 사건이 2007∼2011년 10만명당 평균 2.40건에서 2013∼2017년 3.76건으로 늘었다. 16∼18세는 같은 기간 10만명당 10.72건에서 23.82건으로 증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성인의 하루 최대 복용량은 4000mg이다. 500mg 정제로 계산하면 하루 8정이며, 감기약, 두통약, 생리통약 등 모든 아세트아미노펜 함유 제품을 합친 양이다.
한 번에 7.5∼10g 또는 체중 1kg당 150mg 이상 복용하면 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복용 후 첫 24시간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거나 메스꺼움 구토 식은땀 무기력만 나타날 수 있다. 이후 겉으로는 나아진 듯 보여도 간 수치가 오르며, 2∼4일째 오른쪽 윗배 통증과 황달, 의식 저하, 출혈,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할 수 있다.
중독이 의심되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의료진은 한꺼번에 복용한 시점과 양을 확인하고, 복용 4시간 이후 혈중 아세트아미노펜 농도와 간 기능, 혈액응고 수치를 검사한다. 해독제인 N-아세틸시스테인(NAC)은 독성 대사산물을 제거하는 글루타티온을 보충하며, 급성 과다 복용 후 8시간 안에 투여했을 때 간 손상을 막는 효과가 가장 높다.
8시간이 지났어도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여러 날에 걸쳐 권장량을 넘겨 복용했다면 일반적인 혈중 농도 기준만으로 위험을 판단하기 어려워 복용 이력과 간 기능을 함께 살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