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4일 (금)

직장암 수술법 수십년 논쟁⋯결국 한국 의료진이 풀었다

하장간막동맥 '고위 결찰' vs '저위 결찰'⋯5년 임상시험 내놓은 답 "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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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결찰 vs. 저위결찰. 직장암이 생겨 직장을 잘라낸 뒤 동맥 핏줄을 어디서 묶을 것이냐를 두고 직장암 수술계에선 오래 논쟁을 벌여왔다. 이 논란을 잠재울 대규모 관찰 결과를 만들어낸 주역 중 하나, 부산백병원 배기범 교수(가운데 안경 쓴 이)가 직장암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부산백병원

수술실 밖에서 보호자가 초조하게 기다린다. 직장암 수술은 끝났지만, 진짜 걱정은 지금부터다. 암 조직을 잘라낸 자리, 남은 장을 다시 이어 붙인 그 연결 부위가 잘 아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른바 '문합부 누출'이다. 새는 부위가 생기면 회복이 늦어지고, 심하면 재수술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외과의는 수술 전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장으로 가는 혈액을 책임지는 하장간막동맥(IMA)을 어디서 묶을 것인가. 혈관 뿌리 쪽에서 묶는 '고위결찰'과, 좀 더 아래쪽 가지에서 묶는 '저위결찰'. 이 두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외과계에서 수십 년째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왜 이 질문이 그렇게 오래 남았나?

고위결찰은 림프절을 더 폭넓게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저위결찰은 남은 장에 혈액이 더 넉넉하게 공급돼 문합부가 덜 샐 수 있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두 주장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었지만, 정작 어느 쪽이 환자에게 더 안전한지를 가려줄 대규모 무작위 임상 근거는 없었다. 결국 각 병원, 각 의료진의 경험과 습관에 따라 선택이 갈렸다.

의료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냈나?

인제대 부산백병원 배기범 교수, 칠곡경북대병원 박준석 교수, 화순전남대병원 김창현 교수가 참여한 'K-CROSS' 연구팀이 이 논쟁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배기범·박준석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를, 김창현 교수가 제1저자를 맡았다. 호남·충청·영남 지역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들이 힘을 합쳤고, 국내 7개 대학병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판을 키웠다.

14일 부산백병원에 따르면 이들은 2019년 7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수술을 받았던 임상 1~3기 직장암 환자 314명을 모았다. 이 가운데 293명을 최종 분석했다. 저위결찰군과 고위결찰군으로 나눠 문합부 누출률, 수술 후 합병증, 그리고 1년 뒤 배뇨·성기능과 삶의 질까지 비교했다. 5년에 걸친 전향적 무작위 임상시험. 이들의 연구 내용은 외과 분야 최고 권위지인 'JAMA Surgery' 최근호에 실릴 만한 결과였다.

결론은 무엇이었나?

여기서 반전이 있다. 두 결찰 방식 사이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없었다. 누출률도, 합병증도, 배뇨·성기능과 삶의 질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논쟁 끝에 나온 답이 "둘 다 안전하다"는, 다소 허탈하게 들릴 수 있는 결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허탈한 결론'이야말로 임상적으로는 오히려 힘이 세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은, 집도의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해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배기범 교수는 "환자 개개인의 혈관 구조와 종양의 위치, 장의 긴장도와 혈액 공급 상태, 집도의의 숙련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정밀 수술'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답을 하나로 못박기보다, 환자마다 다른 조건에 맞춰 수술법을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결과가 지역 의료에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 연구가 눈에 띄는 또 다른 이유는 참여 구조다. 서울 소재 대형병원 단독 연구가 아니라, 인제대 부산백병원을 중심으로 칠곡경북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등 지역 대학병원들이 함께 만든 결과라는 점이다.

지역 의료진이 개별 경험을 따로 쌓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질문 아래 데이터를 모아 세계적 학술지에 근거를 제시했다는 것은 지역 대장항문외과 역량이 국내외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배기범 교수는 8월 기준 690건 이상의 대장암 로봇수술을 시행했고, 개인 누적 건수로는 부울경 지역에서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 의료진을 대상으로 실시간 수술 시연과 술기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결국, 수십 년 논쟁의 답이 '무승부'였다는 사실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두 방식 모두 최소침습 직장암 수술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최고의 효과다. 더 나아가 그 무승부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건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라는 신호라는 것은 또 다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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