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단순한 비유만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보고됐다. 딸의 결혼식을 지켜본 뒤 큰 기쁨을 느낀 65세 여성이 며칠 뒤 심장마비와 유사한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행복심장증후군(Happy Heart Syndrome, HHS) 진단을 받았다.
이번 연구는 미국과 카타르, 요르단 의료진으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팀이 수행했으며, 연구 결과는 'An unexpected sequel to happiness: happy heart syndrome'라는 제목으로 국제학술지 《옥스퍼드 의학 증례 보고(Oxford Medical Case Reports)》에 게재됐다.
심장마비 의심했지만 막힌 혈관 없어
환자는 고혈압과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을 앓고 있었다. 수개월 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으로 심장외래 진료도 받아왔다.
당시 심전도와 심장초음파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환자는 이후 추가 검사를 받지 않다가 딸의 결혼식을 치른 뒤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이 사흘간 이어지자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심전도에서 심근경색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ST분절 상승이 확인됐다. 심장 근육이 손상되면 혈액에서 증가하는 트로포닌 수치도 높았다. 의료진은 심장으로 가는 혈류가 갑자기 줄어드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을 의심하고 환자를 상급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은 관상동맥 내에 급성으로 생긴 혈전으로 인해 심장에 혈류 공급이 부족해지는 질환으로, 불안정 협심증과 심근경색 등을 포함한다. 환자는 심근경색에 준하는 응급 치료를 받고 심장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러나 막상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을 촬영해 보니 혈관을 막고 있는 병변은 발견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뒤 가슴 통증과 심전도 이상도 사라진 상태였다.
좌심실 끝부분, 풍선처럼 부풀어
혈관은 막히지 않았지만 심장 기능에는 분명한 이상이 있었다. 좌심실 조영술에서는 심장의 혈액을 온몸으로 내보내는 좌심실 끝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심첨부 풍선화(apical ballooning)가 관찰됐다. 심장초음파 검사에서도 좌심실 끝부분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심장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도 시행했다. MRI에서도 좌심실 끝부분의 움직임이 떨어지고 일부 영상에서 경미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이 확인됐다. 반면 심근경색으로 인한 조직 손상이나 흉터, 심장 근육의 염증을 의심할 만한 소견은 없었다.
검사 결과를 종합한 의료진은 환자를 타코츠보증후군의 한 형태인 행복심장증후군으로 진단했다.
슬픔 아니라 큰 기쁨도 심장에 충격
타코츠보증후군(Takotsubo syndrome, TTS)은 극심한 슬픔이나 놀람, 기쁨 같은 강한 감정을 겪은 뒤 심장의 혈액을 온몸으로 보내는 좌심실이 일시적으로 약해지고 모양이 변하는 질환이다. 관상동맥이 막힌 것은 아니지만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고, 검사 결과도 심근경색과 비슷해 초기에 심장마비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타코츠보증후군의 잘 알려진 유형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이나 이혼, 수술 등 극심한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 뒤에 나타나는 상심증후군(Broken Heart Syndrome, BHS)이다.
반면 행복심장증후군은 결혼이나 출산, 오랜만의 재회처럼 매우 기쁜 사건이 계기가 된다. 이번 환자에게는 딸의 결혼식이 강한 감정적 자극으로 작용한 것으로 의료진은 판단했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강한 감정을 느낄 때 아드레날린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카테콜아민)이 급격히 분비되면서 심장 근육이 일시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결과 심장의 혈액을 온몸으로 내보내는 좌심실의 수축 기능이 떨어지고, 심장 끝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특징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전체 타코츠보증후군의 약 4%...진단 놓치기 쉬워
행복심장증후군은 타코츠보증후군 가운데서도 매우 드문 형태다. 연구진에 따르면 전체 타코츠보증후군 사례 중 약 4.1%가 해당된다.
타코츠보증후군 자체도 흔한 질환은 아니다.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이 의심돼 병원을 찾은 환자 가운데 약 1~2%가 최종적으로 타코츠보증후군 진단을 받는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행복심장증후군은 상심증후군보다 증상이 경미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가 있다. 이 때문에 환자나 의료진이 이상 징후를 놓칠 수 있다. 다만 행복심장증후군 사례가 많지 않아 상심증후군과 증상 및 예후가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치료 후 심장 기능 정상에 가깝게 회복
타코츠보증후군은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적절히 치료하면 심장 기능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환자도 약물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으며, 이후 특별한 불편 없이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추적 심장초음파에서는 35%까지 떨어졌던 좌심실 박출률이 56%로 높아져 정상 범위에 가까운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환자가 앞으로 다른 자녀들의 행복한 순간도 건강하게 지켜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타코츠보증후군이 심근경색과 매우 비슷하게 나타나 오진되거나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의 기존 심혈관 위험 요인 유무와 관계없이, 심근경색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관상동맥이 막혀 있지 않다면 타코츠보증후군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적절한 시기에 질환을 알아보고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면 환자는 대체로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며 이 질환이 “일시적이고 회복 가능한 특성을 지닌다”고 덧붙였다.
[자주 묻는 질문]
Q1. 행복심장증후군은 실제로 심장마비인가요?
A. 아니다. 증상과 심전도, 혈액검사 결과가 심근경색과 매우 비슷하지만, 관상동맥이 막혀 발생하는 일반적인 심장마비와는 다르다. 강한 감정적 자극으로 심장 근육의 수축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타코츠보증후군의 한 형태다.
Q2. 행복한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생할 수 있나요?
A. 행복심장증후군은 매우 드물다. 결혼식이나 출산, 가족과의 재회처럼 강한 기쁨이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단순히 행복하다는 이유만으로 흔히 발생하는 질환은 아니다.
Q3. 행복심장증후군은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나요?
A. 대부분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심장 기능이 회복된다. 다만 초기 증상이 심근경색과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이나 호흡곤란이 나타나면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