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는 쉽게 아프고, 사랑니는 자랄 자리가 부족하며,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있다. 뇌와 후두를 연결하는 신경은 곧장 가지 않고 가슴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정교해 보이는 인간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허점’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근 학술 전문 온라인 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따르면 그 이유는 진화가 인간의 몸을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신체 구조를 조금씩 바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온 탓에 인간의 몸에는 지금도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흔적과 약점이 함께 남아 있다.
△네 발로 걷던 조상의 척추, 두 발로 서면서 허리 통증 불러
인간의 척추는 네 다리로 나무 위를 이동하던 조상의 기본 구조를 물려받았다. 당시 척추는 나뭇가지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척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인간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척추의 역할도 달라졌다. 몸의 무게를 수직으로 지탱하고 무게중심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여야 했다. 두 발 보행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척추에 곡선이 발달했지만, 기존 기능을 유지하면서 체중까지 지탱해야 해 부담도 커졌다.
척추의 곡선은 체중을 분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반면 허리 통증과 추간판 탈출증, 퇴행성 변화를 일으키기 쉬운 요인이 되기도 한다. 네발 보행에 적합했던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두 발 보행에 적응하면서 생긴 진화적 한계라는 설명이다.
△뇌와 후두 연결하는 신경, 왜 가슴까지 내려갔다 올라올까?
되돌이후두신경(recurrent laryngeal nerve)은 뇌와 후두를 연결해 말하고 음식을 삼키는 기능에 관여한다. 두 부위를 곧바로 연결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가슴 쪽으로 내려간 뒤 큰 동맥을 돌아 다시 후두까지 올라온다.
이는 물고기와 비슷했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흔적이라는 것이 진화론적 설명이다. 당시 신경은 아가미궁 주변을 비교적 곧게 지나갔지만 목이 길어지면서 기존 신경도 함께 늘어났다. 이런 긴 우회 경로는 수술 중 신경이 손상될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잘 보이는 인간의 눈에 ‘안 보이는 곳’이 있다?
우리 눈은 빛을 감지하는 세포가 망막의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 있다. 이 때문에 눈으로 들어온 빛은 여러 신경층을 지나야 빛을 감지하는 세포에 도달한다.
또 시신경이 눈에서 뇌로 빠져나가는 자리에는 빛을 감지하는 세포가 없다. 이곳에 들어온 빛은 볼 수 없는데, 이를 ‘맹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뇌가 주변의 모습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자동으로 채워주기 때문에 평소에는 맹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평생 치아는 단 두 번…작아진 턱에는 사랑니 자리도 부족
인간은 유치와 영구치, 두 종류의 치아만 갖는다. 평생 새로운 치아가 만들어지는 상어와 달리 사람의 영구치는 다시 생기지 않는다. 사랑니도 인간의 몸이 환경 변화에 완벽하게 맞춰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조상들은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씹어야 해 턱이 지금보다 컸다. 음식이 부드러워지면서 턱은 작아졌지만 치아 개수는 그만큼 빠르게 줄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사랑니가 자랄 공간이 부족하다. 사랑니가 잇몸이나 턱뼈 안에 매복되거나 다른 치아를 밀어 수술로 제거하기도 한다.
△잘 걸으려면 좁아야 하고, 아기를 낳으려면 넓어야 하는 골반
인간의 골반은 두 발로 효율적으로 걷는 동시에 머리가 큰 아기도 출산해야 한다. 좁은 골반은 걷는 데 유리하지만 산도의 크기를 제한한다. 반면 인간의 아기는 몸에 비해 머리가 크다.
이런 상반된 여건 때문에 인간의 출산 과정은 어렵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다. 두 발로 걷기 위한 골반의 적응과 점점 커진 뇌로 인해 인간의 출산이 영장류 중 유독 힘든 과정이 됐다는 설명은 '산과적 딜레마' 가설로 불린다.
△염증 생기는 맹장, 쉽게 막히는 부비동…왜 사라지지 않았나?
진화는 생존에 큰 불이익을 주지 않는 신체 부위를 반드시 없애지는 않는다. 맹장은 과거 쓸모없는 기관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일부 면역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염증이 생기면 충수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비동의 기능도 명확하지 않다. 두개골의 무게를 줄이거나 목소리의 공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부비동의 배출 통로는 코와 직접 연결돼 있어 쉽게 막히고 감염될 수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귀 근육도 먼 조상의 흔적
많은 포유류는 귀 주변의 작은 근육을 이용해 귓바퀴를 움직인다. 이를 통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더 정확하게 파악한다.
인간에게도 같은 근육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현재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지만 생존에 큰 불이익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