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크림을 고를 때 자외선차단지수(SPF) 숫자만 보면 충분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SPF는 주로 피부를 붉게 만드는 자외선B(UVB) 차단 정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피부 그을림과 색소 변화, 광노화에는 자외선A(UVA)도 관여하는 만큼 자외선A 차단등급(PA)까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일반의약품 자외선차단제 기준에 새 활성성분을 추가하면서 주목받은 물질이 있다. 이름은 ‘베모트리진올(bemotrizinol)’이다. 다만 한국 소비자에게 완전히 낯선 성분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비스-에칠헥실옥시페놀메톡시페닐트리아진’이라는 긴 이름으로 여러 자외선차단 제품에 사용돼 왔다.
미국 FDA는 올해 6월 베모트리진올을 일반의약품(OTC) 자외선차단제에 사용할 수 있는 활성성분 목록에 추가했다. FDA의 OTC 자외선차단제 모노그래프에 새 활성성분이 들어간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이다. 모노그래프는 자외선차단제 같은 일반의약품이 별도 품목허가 없이 시장에 나오기 위해 따라야 하는 FDA의 기준이다. 사용할 수 있는 성분과 농도, 용도, 제형, 표시사항 등이 여기에 담긴다.
FDA는 베모트리진올이 성인과 생후 6개월 이상 어린이에게 사용하는 자외선차단제 성분으로 ‘일반적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서는 최종 행정명령이 발효되는 8월 9일부터 제조사가 이 성분을 포함한 자외선차단제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이번 FDA 기준의 허용 농도는 최대 6%로, 한국과 유럽에서 적용되는 최대 10% 기준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에선 새 성분, 한국 제품엔 이미 있었다
이번 소식이 미국에서 주목받는 배경에는 제도적 차이가 있다. 미국은 자외선차단제를 일반의약품으로 관리해, 새로운 성분이 폭넓게 쓰이려면 FDA의 OTC 모노그래프에 올라야 한다. 미국에서 새 성분의 제도권 진입이 더디게 진행되는 동안 한국과 유럽 등에서는 베모트리진올을 포함한 다양한 자외선차단 성분이 제품에 활용돼 왔다.
한국에서는 자외선차단제가 기능성화장품으로 관리된다. 자외선차단 기능을 표시한 제품에는 자외선차단지수(SPF)와 자외선A 차단등급(PA)이 함께 적힌다. SPF50+, PA++++처럼 제품 겉면에서 흔히 보는 표시가 그것이다. SPF는 주로 자외선B(UVB) 차단 정도를, PA는 자외선A(UVA) 차단 정도를 나타낸다.
국내에서 팔리는 선크림은 소비자들이 흔히 말하는 방식으로 나누면 무기 자외선차단제, 유기 자외선차단제, 혼합형 제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무기 자외선차단제는 징크옥사이드, 티타늄디옥사이드처럼 무기물 계열 성분을 쓴다. 피부 표면에서 자외선을 산란·반사해 막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민감성 피부용 제품에서 자주 보인다. 다만 제형에 따라 피부가 하얗게 떠 보이는 백탁감이 생길 수 있다.
유기 자외선차단제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성분을 사용한다. 흔히 ‘유기자차’로 불리는 제품군이다. 상대적으로 발림성이 가볍고 백탁이 적은 제품을 만들기 쉽지만, 성분과 피부 상태에 따라 일부 소비자는 눈 시림이나 자극감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무기·유기 자외선차단 성분을 함께 넣은 혼합형 제품도 많다. 톤업 선크림, 선스틱, 선쿠션, 선스프레이처럼 생활 방식에 맞춘 제형도 다양해졌다.
베모트리진올은 이 가운데 유기 자외선차단 성분에 속한다. 국내 전성분표에서는 ‘비스-에칠헥실옥시페놀메톡시페닐트리아진’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된다. 이름은 어렵지만 역할은 분명하다. UVB와 UVA를 모두 흡수하는 광범위 필터로, 긴 파장대의 UVA 영역까지 보완할 수 있어 여러 자외선차단 제품에 활용된다.
왜 UVA까지 막아야 하나
자외선차단제를 이야기할 때 SPF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실제 피부 건강에서는 UVA 차단도 중요하다. UVB는 강한 햇볕을 쬔 뒤 피부가 붉어지고 따가워지는 일광화상과 관련이 크다. 반면 UVA는 상대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이 덜해도 피부 깊은 층까지 들어가 장기간 손상을 쌓을 수 있다. 잡티, 색소침착, 탄력 저하, 광노화와 연결되는 이유다.
베모트리진올이 주목받는 것도 이 지점이다. 이 성분은 UVB와 UVA를 함께 겨냥하는 필터다. 특히 UVA1은 피부 노화와 색소질환, 누적 광손상과 관련해 중요하게 여겨지는 영역이다. 기존 일부 자외선 필터만으로는 이 구간을 충분히 보완하기 어려워 여러 성분을 조합하는 경우가 많았다. 베모트리진올은 이런 조합 안에서 넓은 파장대를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광안정성이다. 자외선차단 성분은 햇빛을 받는 동안 성능이 유지돼야 한다. 일부 성분은 빛에 오래 노출되면 분해돼 차단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베모트리진올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용하는 필터로 평가된다. 함께 들어간 다른 자외선차단 성분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쉽게 말해 햇빛 아래에서 오래 버티는 성분이면서, 제품 전체의 차단력을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되는 원료다.
좋은 선크림은 결국 매일 바를 수 있어야
선크림에서 중요한 것은 성능만이 아니다. 아무리 차단력이 좋아도 끈적이거나 하얗게 뜨거나 눈이 시리면 꾸준히 바르기 어렵다. 피부과 전문가들이 베모트리진올의 미국 허가를 의미 있게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넓은 자외선 차단 범위를 갖추면서도 더 가볍고 사용감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FDA는 베모트리진올이 UVA와 UVB를 모두 막고, 피부를 통해 몸 안으로 흡수되는 정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자외선차단 성분이 피부 표면에서 역할을 하되 체내로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은 안전성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다. 미국피부과학회(AAD)도 이번 결정을 두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자외선차단제 선택지를 넓히는 공중보건 측면의 진전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번 허가가 한국 소비자의 선크림 선택 기준을 크게 바꿔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자외선차단 성분과 제형이 쓰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성분 하나보다 제품에 표시된 SPF와 PA, 그리고 실제 사용 환경이다. 실내 생활이나 짧은 외출이 대부분이라면 비교적 낮은 차단지수의 제품도 선택할 수 있지만, 야외활동이 길어질수록 더 높은 SPF와 PA 등급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등산, 해수욕, 야외 운동처럼 강한 햇볕에 오래 노출되는 상황에서는 SPF50+와 PA+++ 이상 제품이 권장된다.
선크림은 여름 휴가철에만 쓰는 제품이 아니다. 흐린 날에도 자외선 노출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UVA는 일부 창문을 통과해 실내로 들어올 수 있다. 베모트리진올의 미국 허가는 새로운 성분 하나가 추가됐다는 의미를 넘어, 자외선차단제 시장이 차단력뿐 아니라 사용감과 안정성까지 함께 개선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피부에 맞고, 매일 바를 수 있으며, 생활 환경에 맞는 SPF와 PA를 갖춘 제품을 고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