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7일 (화)

독일 머크, 신약 후보 대신 ‘개발 인프라’ 샀다…17조5000억 원 베팅

美 바이오테크네 주당 73달러 현금 인수…단백질 분석·공간생물학·세포치료제 공정 보강

이번 인수는 독일 머크가 2015년 연구용 시약·실험장비 기업 시그마알드리치를 170억 달러에 사들인 이후 최대 규모의 거래로 꼽힌다. 머크는 헬스케어와 라이프사이언스, 전자소재 사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사진=머크

독일 머크(Merck KGaA)가 미국 생명과학 기업 바이오테크네(Bio-Techne)를 약 113억 달러, 우리 돈 약 17조5000억 원에 인수한다. 2015년 시그마알드리치(Sigma-Aldrich) 인수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M&A)이다.

머크가 거액을 투입한 대상은 특정 신약 후보물질이 아니라 연구 도구와 분석기술, 세포·유전자치료제 제조 공정에 쓰이는 핵심 인프라다. 신약개발 경쟁의 무게중심이 치료제 자체를 넘어 이를 발굴하고 검증하며 생산하는 기술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독일 머크는 25일(현지시간) 바이오테크네를 주당 73달러 현금으로 인수하는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거래는 바이오테크네 주주 승인과 각국 규제당국 심사를 거쳐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인수는 머크가 2015년 연구용 시약·실험장비 기업 시그마알드리치를 170억 달러에 사들인 이후 최대 규모의 거래로 꼽힌다. 머크 KGaA는 헬스케어와 라이프사이언스, 전자소재 사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신약보다 ‘신약을 만드는 기술’에 베팅

머크가 바이오테크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배경에는 신약개발 환경의 변화가 있다. 바이오테크네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본사를 둔 생명과학 도구 기업이다. 연구자와 제약·바이오 기업에 단백질, 항체, 사이토카인, 성장인자, 면역분석 키트, 자동화 단백질 분석 장비, 연구용 소모품 등을 공급한다.

이들 제품은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초기 연구뿐 아니라 개발, 품질시험, 상업 생산 단계까지 폭넓게 활용된다. 세포의 성장과 면역반응을 확인하는 사이토카인·성장인자, 질병 관련 단백질이나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항체·면역분석 키트가 대표적이다. 기초연구에서 나온 발견을 실제 치료제나 진단기술로 이어가는 중개연구에서도 핵심 도구로 쓰인다.

머크가 확보하게 될 자산은 연구용 시약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오테크네는 세포의 성장과 면역반응을 확인하는 사이토카인·성장인자, 질병 관련 단백질을 찾아내는 항체와 면역분석 키트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자동화 단백질 검출·분석 장비 브랜드인 ‘프로틴심플’까지 더해지면서, 머크는 신약 연구 단계부터 항체의약품과 세포치료제의 품질평가에 이르는 단백질 분석 역량을 한층 넓히게 됐다.

공간생물학과 정밀진단 분야에서도 시너지가 예상된다. 공간생물학은 조직 안에서 세포와 유전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기존 유전체 분석이 어떤 유전자가 발현됐는지를 보는 데 집중했다면, 공간생물학은 그 변화가 조직 내 어느 위치에서 일어났는지까지 확인한다. 암 미세환경, 면역반응, 치료제 반응성을 살피는 데 활용도가 높다.

세포·유전자치료제 분야도 이번 인수의 주요 배경이다. 세포·유전자치료제는 환자의 세포나 유전자를 조작해 질병을 치료하는 차세대 치료제다. 기존 합성의약품이나 항체의약품보다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생산 단계마다 정교한 분석과 품질관리가 필요하다. 바이오테크네는 이 과정에 필요한 소재와 분석기술, 공정기술을 제공해 왔다. 머크는 이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시약과 분석기술, 세포·유전자치료제 제조 공정 전반으로 사업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됐다.

새 CEO의 첫 승부수…라이프사이언스 키우는 머크

이번 거래는 카이 베크만 독일 머크 신임 최고경영자(CEO) 체제에서 나온 첫 대형 M&A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베크만 CEO는 머크의 전자소재 사업을 이끌다 올해 5월 그룹 전체 경영을 맡았다. 그는 취임 직후 인수합병 범위를 넓히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바이오테크네 인수는 그 구상을 구체화한 첫 대형 거래다.

머크는 헬스케어와 전자소재, 라이프사이언스를 함께 운영하는 기업이다. 이 가운데 라이프사이언스 사업은 연구자와 제약·바이오 기업에 실험 도구, 원료, 분석기술, 위탁개발·생산 서비스를 제공한다. 치료제를 직접 개발해 판매하는 헬스케어 사업과 달리, 라이프사이언스는 신약개발과 바이오제조 전 과정에 필요한 기반 기술을 공급한다. 특정 제품의 성공 여부에 좌우되기보다 여러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 흐름을 함께 타는 구조다.

머크가 17조 원이 넘는 자금을 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는 신약 후보물질 자체만큼이나 이를 찾고, 검증하고, 생산하는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세포·유전자치료제, 정밀진단, 멀티오믹스, 공간생물학처럼 고도화된 분야에서는 연구용 시약과 분석기기, 공정기술의 품질이 개발 속도와 성공률을 좌우한다. 머크로서는 치료제 개발 기업 하나를 사들이는 대신, 여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제조 인프라를 확보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바이오테크네는 현재 전 세계 34개 거점과 미국, 캐나다, 영국, 스위스, 중국 등에 15개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 수는 3000명 이상이며, 이 가운데 약 2300명이 미국에서 근무한다. 2025 회계연도 매출은 12억 달러를 넘었다.

코로나19 특수 이후 생명과학 도구 시장은 성장세가 둔화됐지만, 고부가가치 플랫폼 자산을 둘러싼 경쟁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머크가 바이오테크네를 선택한 것도 특정 치료제 하나가 아니라 신약개발과 바이오제조 전반을 떠받치는 연구·분석·공정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바이오 산업에서 연구·분석·생산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생명과학 기업들도 관련 역량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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