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보다 출산을 먼저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배우자를 기다리는 대신 정자 기증을 통해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싱글맘 바이 초이스(Single Mom By Choice, 이하 SMBC)’ 문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외모와 학력, 성격, 가족력까지 비교하며 ‘이상형 유전자’를 직접 고르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미국 매체 뉴욕포스트는 최근 정자 기증을 통해 엄마가 되기로 한 싱글 여성들의 사례와 관련 문화를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뉴욕주 북부에 사는 패션 리테일 매니저 레슬리 존스는 수년간 연애와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 끝에 정자 기증으로 임신을 선택했다. 당시 35세였던 그는 “엄마가 되고 싶었고, 남자가 없다는 이유로 그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존스는 2015년 텍사스에서 휴스턴 난임연구소를 통해 SMBC 여정을 시작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크라이오뱅크에서 키 180cm 이상의 외모와 영화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를 닮았다는 설명이 적힌 기증자를 선택했다. 그는 정자 두 병을 1000달러(약 140만 원)에 구매했다.
존스는 “바에서 만났다면 매력적이라고 느꼈을 사람을 원했다”며 “데이트 상대를 고를 때와 마찬가지로 기증자 선택에서도 취향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일부 여성들은 가족·친구들과 함께 정자 기증자를 고르는 파티도 열고 있다. 참석자들은 기증자의 외모, 학력, 건강 상태, 성격, 가족력 등을 비교하며 후보를 고른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애슐리 디앤은 정자 모양 장식이 올라간 컵케이크와 수정란 모양 케이크를 준비해 지인들과 기증자를 선택했고, 리얼리티 스타 라라 켄트도 미국 방송 ‘밴더펌프 룰스(Vanderpump Rules)’에서 관련 파티를 공개했다.
SNS에는 ‘SMBC’ 관련 게시물이 40만 건 이상 올라와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에서 미혼 여성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는 전체 출생아의 약 40%를 차지한다.
최근 30년 동안 30세 이상 싱글 여성의 단독 출산 선택은 140% 증가했다. 세계 최대 정자·난자 은행인 크라이오스 인터내셔널(Cryos International)은 난임 치료를 위해 기증자를 찾는 사람들의 78%가 36~45세 여성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임신 과정은 쉽지 않았다. 존스는 난자 채취 시술 실패와 난자 사용 불가 판정을 겪었고, 기증 난자를 위해 1만5000달러(약 2100만 원)를 추가로 사용해야 했다. 이후 ‘슈퍼맨 정자’로 만든 배아 8개도 모두 사멸했다. 그는 “실패가 계속 이어져 힘들었다”고 말했다.
존스는 2019년 체중 감량 수술 후 익명의 부부 기증자로부터 받은 배아를 이용해 다시 시도했고, 결국 임신에 성공했다. 비용은 5600달러(약 780만 원)였다. 그는 2021년 6월 아들 잭슨을 출산한 후 어머니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존스는 “내 몸이 만든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고 말했다.
44세 사업가이자 SMBC 인플루언서인 제시카 누렘버그 역시 아이를 얻기까지 여러 차례 시술을 반복했다. 그는 “30대 때 난자를 냉동했지만 실패했고, 딸을 얻기까지 10번의 시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라는 건 쉽지 않았지만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누렘버그는 기증자를 고를 때 사진뿐 아니라 병력과 가족력, 성격, 심리 프로필까지 꼼꼼히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 두 살인 딸 카이아가 성인이 되면 원할 경우 정자 기증자와 연락할 수 있다. 같은 기증자를 통해 태어난 이복 형제·자매는 약 50명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이 정자 기증을 관리하고 있지만, 한 기증자를 통해 태어날 수 있는 아이 수 제한은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미국생식의학회(American Society for Reproductive Medicine)는 특정 지역에서 한 남성의 정자가 과도하게 사용되면 혈연관계를 모른 채 관계를 맺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늘어나는 난임 시술…한국 정자은행 현실은
한국에서는 정자 기증과 비배우자 인공수정이 아직 서구권처럼 활성화된 단계는 아니다. 현재 국내에는 국가 차원의 공식 공공 정자은행 체계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이며,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상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적 혼인 관계이거나 사실혼 관계의 부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처럼 비혼 여성이나 동성 커플이 공개적으로 정자 기증을 받아 임신하는 문화는 한국의 제도권 안에서는 사실상 제한돼 있다.
하지만 난임 증가와 함께 정자 기증 및 보조생식술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최근 국내 연구 자료에 따르면 국내 난임 진료와 보조생식술 이용은 계속 증가하는 흐름이다.
2023년 기준 국내 난임 환자는 여성 15만6247명, 남성 8만6965명으로 집계됐다. 남성 난임 환자도 꾸준히 늘어 2018년 이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또 정부의 난임 시술 지원 확대 영향으로 난임 시술 지원 건수는 2020년 약 9만2000건에서 2024년 약 22만3000건으로 143% 증가했다.
2021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는 난임 환자와 비혼 출산 희망자를 위한 공공 정자은행 설립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 62%는 미혼 여성도 인공수정이나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59%는 미혼 여성에게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데 찬성했다. 조사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비혼 출산과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려는 인식 변화가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