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나한테 생겼을까."
루푸스 또는 류마티스 진단을 받은 여성이라면 한번쯤 떠올렸던 의문이다. 그간 의사들은 여성호르몬 영향이 클 것이라는 막연한 설명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이런 질문에 새로운 설명이 나왔다. 건강인 약 1000명의 면역세포 125만 개를 하나씩 분석했더니 여성과 남성의 면역세포에서 서로 달리 움직이는 유전자 조절 부위가 1000개 넘게 확인된 것이다.
호주 가반 의학연구소와 뉴사우스웨일스대 공동 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미국인간유전학회 공식 학술지 《The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에 최근 실렸다.
자가면역질환은 전체 환자의 약 70~80%가 여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푸스의 정식 병명은 전신홍반루푸스(SLE)다. 피부뿐 아니라 신장·심장·폐·뇌 같은 여러 장기를 침범할 수 있어 ‘전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환자의 약 90%가 여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류마티스관절염 역시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2~3배 많다.
전신홍반루푸스는 피부 발진과 관절 통증, 심한 피로감, 미열 같은 증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면역계가 자기 몸 조직을 공격하는 병이어서 겉으로는 단순 피로처럼 보여도 몸 안에서는 주요 장기가 손상될 수 있다.
류마티스관절염 역시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이다. 손가락·손목 같은 작은 관절이 붓고 아침에 뻣뻣한 증상이 특징이며, 진행되면 관절 변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루푸스가 여성에게서 주로 발병하는 이유를 유전자 조절 수준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응성이 높은 면역계, 왜 내 몸을 공격할까
민감한 면역 반응은 양날의 칼이다.
여성 면역계는 평소 활성도가 높은 상태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바이러스 감염이나 백신에 더 민감하게 움직이고, 일부 감염병에서는 항체가 더 많이 형성된다는 연구도 보고된 바 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태아와 감염체를 동시에 조절해야 했던 생물학적 특성과 관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높은 활성도가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항상 경계 태세인 면역계는 실제 위협이 없는데도 자기 조직을 적으로 오인할 위험이 커진다. 이것이 자가면역질환이다.
연구팀은 "여성 면역계가 감염에 더 민감하게 작동하는 건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만큼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유전자 '볼륨 조절기' 1000개 달랐다
유전자는 항상 같은 세기로 켜지지 않는다. 오디오 볼륨처럼 강약이 있고, 이를 조절하는 DNA 장치도 따로 있다.
연구팀이 이런 ‘볼륨 조절기’를 여성·남성 면역세포에서 비교하자 특정 성별에서만 다르게 작동하는 조절 부위가 1000개 넘게 확인됐다. 여성 면역세포에서는 염증과 관련된 유전자 신호가 더 강하게 나타났고, 루푸스와 직접 연관된 유전자 2개도 포함됐다.
이런 차이의 대부분이 X·Y 성염색체가 아닌 일반 염색체에서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X염색체 영향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일반 염색체 역할도 예상보다 크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전 연구들이 혈액을 통째로 섞어 평균값을 보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세포 125만 개를 하나씩 분석해 기존 방법으로는 잡히지 않던 차이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성별 따라 치료도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루푸스·류마티스 치료는 남녀 구분 없이 비슷한 기준 아래 이뤄져 왔다. 대부분 면역 전체를 넓게 억제하는 방식이다. 같은 치료를 받아도 반응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세이한 야자르(연구를 직접 수행한 제1저자) 박사는 "여성과 남성의 자가면역질환은 유전자 조절 방식이 다를 수 있고, 치료 접근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조지프 파월(연구 책임자인 공동 교신저자) 가반 의학연구소 세포과학 디렉터는 "환자 면역계의 유전적 특성을 반영한 정밀 치료 전략 개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는 면역 전체를 넓게 억제하는 방식에서 특정 염증 신호나 면역세포 경로를 겨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앞으로는 성별에 따른 면역계 차이를 반영한 치료 전략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번 연구는 호주인을 대상으로 했으며, 유전자 차이가 실제 질환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 등 아시아인을 포함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왜 여성에게 자가면역질환이 더 흔한지에 대한 생물학적 단서를 단일세포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