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로 주목받고 있는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 같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치료제는 당뇨병과 비만 치료의 흐름을 바꾼 약으로 꼽힌다. 그런데 같은 약을 써도 누구는 혈당이 잘 떨어지고, 누구는 기대만큼 체중이 줄지 않는 경우가 있다.
최근 국제연구팀은 이런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적 단서를 제시했다. 일부 사람들은 몸속 GLP-1 호르몬이 오히려 더 많은데도, 그 신호에는 둔감한 이른바 ‘GLP-1 저항성’ 상태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특성이 약 10%의 사람들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유전체의학(Genome Medicine)≫ 2026년 3월 29일자에 실렸다. 공동 저자는 미국 스탠퍼드 의대 안나 L. 글로인 교수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의 마르쿠스 슈토펠 교수다. 이 밖에도 여러 나라 연구진이 함께 참여했다.
GLP-1 치료제, 왜 누구에게는 덜 들을까
GLP-1은 식사 후 장에서 분비돼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 분비를 돕고, 위에서 음식이 내려가는 속도를 늦추며, 식후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는다. 세마글루타이드를 성분으로 한 오젬픽(당뇨병 치료제)과 위고비(비만 치료제), 마운자로 같은 GLP-1 수용체 작용제는 바로 이 호르몬의 작용을 흉내 내는 약이다. 몸이 이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약효도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연구의 초점은 PAM(peptidyl-glycine alpha-amidating monooxygenase) 유전자였다. PAM은 GLP-1을 포함한 여러 호르몬이 몸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에서 발견된 두 가지 변이, p.S539W와 p.D563G에 주목했다. 이 변이가 있으면 PAM 효소의 기능이 약해지고, 그 결과 몸이 GLP-1 신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호르몬이 부족한 게 아니라, 호르몬 신호를 읽는 몸의 반응성이 떨어진 상태에 가깝다. 실제로 연구팀은 변이 보유자에서 혈중 GLP-1 수치가 더 높았지만, 그만큼 혈당 조절 효과가 커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기서 말한 ‘GLP-1 저항성’은 바로 이런 상태를 가리킨다.
실제 약효도 더 약했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우연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과 동물에서 모두 실험을 진행했다. 사람에서는 PAM 변이 보유자와 비보유자를 비교했고, 동물에서는 PAM 유전자 결손 마우스를 이용했다. 그 결과 사람과 쥐 모두에서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GLP-1 수치는 높은데도 혈당 조절은 더 좋아지지 않았다.
쥐 실험에서는 GLP-1의 중요한 기능인 위 배출 지연도 잘 일어나지 않았다. 정상이라면 GLP-1 신호가 음식이 위에서 천천히 내려가도록 도와 혈당 상승을 늦춘다. 하지만 PAM 기능이 떨어진 쥐에서는 이런 반응이 약했다. 연구팀은 문제의 핵심이 GLP-1 수용체 숫자 자체보다는, 그 뒤쪽 신호 전달 과정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자료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당뇨병 환자 1119명이 포함된 여러 연구 데이터를 합쳐 살펴봤다. 그 결과 PAM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GLP-1 계열 약을 써도 혈당이 더디게 떨어졌고, 장기 혈당 조절 지표인 당화혈색소(HbA1c) 목표에 도달하는 비율도 더 낮았다.
반면 메트포르민, 설포닐우레아, DPP-4 억제제 같은 다른 당뇨병 약에서는 이런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다. 즉, PAM 변이의 영향은 모든 혈당강하제에 공통으로 나타난다기보다, GLP-1 계열 약에 비교적 특이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안 듣는 이유’를 설명할 첫 단서
다만 이 결과를 곧바로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제의 체중 감량 효과까지 연결해 해석하기는 어렵다. 연구팀은 현재 자료만으로는 체중 감소와 PAM 변이의 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우선 GLP-1 계열 약의 혈당 조절 효과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의미는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GLP-1 계열 약이 “누구에게는 잘 듣고, 누구에게는 덜 듣는 약”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연구는 그 차이의 일부가 유전적 배경, 특히 PAM 유전자 변이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직 퍼즐이 완전히 맞춰진 것은 아니다. 연구진도 정확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더 밝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 결과는 왜 같은 약이 어떤 사람에게는 잘 듣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대만큼 듣지 않는지에 대한 꽤 구체적인 단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GLP-1 주사제의 시대, 약효 차이는 의지나 생활습관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PAM 유전자는 그 차이를 설명할 중요한 후보로 떠올랐다. 앞으로는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서도 “일단 써보고 안 되면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처음부터 더 잘 맞는 약을 고르는 개인 맞춤형 의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번 논문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하나의 단서에 가깝다.
*논문출처: Type 2 diabetes risk alleles in peptidyl-glycine alpha-amidating monooxygenase influence GLP-1 levels and response to GLP-1 receptor agonists. Genome Medicine, 2026; DOI: 10.1186/s13073-026-016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