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에서 병원을 찾을 때 환자와 보호자의 불안은 늘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치료가 될까? 아니면 서울로 가야 할까?”
포괄2차종합병원은 바로 그 틈을 메우겠다며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7월 전국 175곳(본지정 164곳·예비지정 11곳)을 포괄2차종합병원으로 지정했다. 3년간 2조1000억 원(연 7000억 원)을 투입해, 지역에서 응급과 입원, 수술, 협진을 맡는 병원군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서울로 몰리는 환자들…포괄2차는 왜 나왔나?
이 제도의 핵심은 병원 이름표를 하나 더 붙이는 데 있지 않다. 공식 지침이 앞세우는 것은 적합질환 중심 진료다. 수술·입원 환자는 일반진료질병군(DRG B) 중심으로, 지역 병·의원 의뢰 환자와 상급종합병원 회송 환자, 응급 환자를 더 맡도록 설계돼 있다. 단순 고혈압 등 경증 질환 환자는 동네 병의원(1차 의료기관)으로 넘기고, 입원과 수술이 필요한 중등도(中等度) 질환에 집중하라는 것. 포괄2차는 결국 “지역에서 끝낼 수 있는 진료를 지역에서 끝내게 하자”는 제도다.
포괄2차종합병원이 나온 배경엔 서울 쏠림 심화가 있다. 2020~2023년 서울 빅5 병원을 찾은 비수도권 환자 수는 21.6% 늘었다. 같은 기간 수도권 환자 증가율(11.9%)보다 가파르다. 이런 추세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부가 포괄2차를 통해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를 복원하겠다고 나선 것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환자까지 서울로 빠져나가는 흐름을 더는 방치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정은 끝났다. 이제는 진짜 작동하느냐를 물어야 할 시점. 그런 차원에서 심평원은 올해 2월 1일 시행 개정으로 성과 지원과 진료협력 기반구축 내용을 공식화했다. 대한병원협회는 3월 포괄2차와 지역 병·의원 간 진료협력 시스템 개발 비용 지원 신청을 안내했다. 이어 복지부는 포괄2차 병원을 계속 육성하겠다고 했고, 올해 3분기 포괄2차 추가 지정도 예고했다. 몇 곳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제도는 분명 움직이고 있다.
지정은 끝났지만…현장은 왜 이렇게 조용한가?
그러나 정작 현장은 뜻밖에 조용하다. 올 하반기 제1차년도 성과 평가 국면에 들어섰는데도 긴장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병원 현장에선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고, “지원금 규모가 너무 미미하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한국 의료체계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의료·필수의료·응급의료를 다시 세우겠다는 큰 아젠다인데, 현장 체감은 아직 낮다는 뜻이다. 정책적 기대는 컸지만, 막상 현장에선 이름만 남은 ‘전문병원’ 제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중 돈의 차이는 숫자로도 분명하다. 포괄2차 지원은 175곳에 연간 7000억 원, 3년간 2조1000억 원이 지원된다. 단순 계산으론 병원당 연간 40억 원이다. 반면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47곳에 연간 3조3000억 원, 3년간 약 10조 원 규모다. 병원당 약 702억 원이다.
물론 사업 구조가 같지는 않다. 그래도 정부가 의료 전달 체계의 축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는 이 숫자만 봐도 드러난다. 포괄2차에 기대하는 역할에 비해 실제 동력은 아직 얇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돈만 적은 게 아니다…환자 신뢰와 병원 간 협력 시스템은 더 약하다
하지만 더 구조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병원끼리 서로 믿고 환자를 주고받는 기반이 그동안 너무 약해졌다는 점이다. 포괄2차의 성패는 결국 의뢰와 회송에서 갈린다. 동네 병·의원이 환자를 보내고, 포괄2차가 중등도 적합질환(DRG B) 중심 입원·수술을 맡고, 더 어려운 중증(重症) 환자만 상급종합병원으로 올리고, 핵심 치료 뒤에는 다시 지역으로 돌려보내는 흐름이 살아나야 한다.
이런 구조는 시스템만 깐다고 돌아가지 않는다. 지역 의원이 ‘저 병원은 믿고 보낼 수 있다’고 느껴야 하고, 상급종합병원도 ‘이 환자는 저 병원으로 회송해도 된다’고 판단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의 습관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랫동안 쌓인 ‘서울 선호’, ‘대학병원 선호’에는 정보 격차 문제가 깊게 깔려 있다. 지역 포괄2차가 어떤 질환을 어디까지 맡을 수 있는지, 언제 여기서 치료가 충분하고 언제 더 상급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그런 기준이 공개적으로 충분히 설명돼 있지 않다.
AI가 병원을 먼저 설명하는 시대…지역 포괄2차는 왜 더 불리한가?
지금처럼 환자와 보호자가 생성형(LLM) AI에 묻고, AI가 병원 정보를 먼저 요약해 보여주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잡은 상태에서 공개된 진료 기준과 설명 콘텐츠가 빈약한 지역 병원은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대목은 제도보다 정보 인프라가 훨씬 더디게 따라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울경은 이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부울경에는 포괄2차종합병원 30곳(부산 19곳·울산 4곳·경남 7곳)이 지정돼 있다. 숫자만 보면 적지 않다.
하지만 생활권으로 들어가면 체감은 다르다. 부산은 상대적으로 두텁지만, 울산과 경남은 권역별 밀도 차와 공백감이 여전하다. “전국 175곳”과 “우리 동네에서 안심하고 갈 병원이 있다”는 말은 아직 같지 않다. 이 차이를 메우지 못하면 포괄2차 제도는 큰데 체감은 약한 사업으로 남을 수 있다.
결국 포괄2차의 성패는 간판이 아니라 행동 변화에서 갈린다. 지원금 규모를 늘리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병원 간 신뢰부터 복원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지역 포괄2차를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정보도 더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료를 살리는 길은 “서울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데 있지 않다. 지역에서 끝낼 수 있는 치료를, 정말 지역에서 끝낼 수 있게 만들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게 만드는 것. 포괄2차종합병원이 지금 증명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다.
[미니 FAQ]
포괄2차종합병원의 핵심 역할은 무엇인가?
동네 병의원에서도 치료할 수 있는 단순 질환,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중증(重症), 다중복합, 난치성 질환이 아닌, 중등도(中等度) 질환군(DRG-B군)의 입원·수술·응급·협진을 맡는 지역 거점 역할이다.
현장 기대감이 왜 낮은가?
예산의 두께가 얇은 데다, 의뢰·회송을 움직일 병원 간 신뢰와 환자 선택 기반까지 충분히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시스템을 떠받칠 기반의 한쪽이 허물어지고, 또 많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포괄2차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하나?
중진료권 내에서 1차~포괄2차~3차 병원 간 협력 시스템, 지역 병원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신뢰와 정보 격차 해소, 지역 포괄2차를 설명하는 공개 정보 인프라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돈만으로는 환자 흐름이 잘 바뀌지 않는다.
AI 시대와 포괄2차는 왜 연결되나?
환자와 보호자가 생성형 AI를 통해 병원과 질환 정보를 먼저 접하는 흐름이 커질수록, 공개된 기준·데이터·설명 콘텐츠가 빈약한 지역 병원은 더 불리해질 수 있다. 검색AI 시대가 진행될수록 정보 인프라 격차가 신뢰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