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약품이 성추행 가해 임원에 대한 처벌 조치를 내리는 과정에서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대주주이자 회사의 기타비상무이사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에 이어 회사 임원들도 신 회장의 불합리한 경영 간섭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초 가족간 경영권 다툼이 마무리된 지 1년 만에 신동국 대주주와 한미 임직원 간 갈등 구도가 형성된 모양새다.
23일 한미약품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본부장과 각 본부 임원들은 이날 오전 회사에서 “참담한 성인지 감수성으로 한미약품 명성에 손상을 입힌 신동국 대주주는 성추행 피해자와 한미약품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불법·부당한 경영간섭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앞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3일 사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고위 임원 K씨가 징계를 받지 않은 채 자진 퇴사하고 동종 업계로 자리를 옮겼다.
한미약품 팔탄공장을 총괄하던 K씨는 지난해 12월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언행을 했다는 피해 사실이 외부 공익 채널인 ‘K-휘슬’을 통해 신고됐다.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K씨는 회사에 출근했으며 피해자와의 분리조치마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특히 한미약품은 K씨에게 징계 기록이 남지 않는 ‘자진 퇴사’의 길을 열어줘 사내외 비판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박재현 대표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 주주인 신 회장이 K씨를 비호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더불어 지난 20일 밤 박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정신을 강조한 호소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호소문에서 “기업에서 대주주가 갖는 의미와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지켜야 할 가치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며 “한미가 한미다운 정체성을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가 걸어온 길과 임성기 회장님의 철학,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저를 믿어주셨으면 한다”며 “임직원 여러분이 미래이고 희망“이라고 했다.
이 같은 메시지에 반응한 한미약품 임원과 본부장들이 주말을 지나 월요일(23일) 출근하자마자 성명서를 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호소에 임원들이 힘을 보탠 셈이다.
이날 한미약품 임원들은 ‘신동국 대주주는 한미약품 경영에서 당장 손 떼라’ ‘귀를 의심했다 당신의 성추행 비호 발언'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신 대주주를 강력 비판했다.
이들은 “한미약품 명성에 손상을 입힌 신 대주주는 상처받은 성추행 피해자와 한미약품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식 사과하라”며 “부당한 경영간섭을 즉각 중단하고 한미약품 이사회는 신 대주주의 일탈 행위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즉각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인간존중, 가치창조를 회사 경영이념으로 삼는 한미약품과 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들을 모욕하는 일임을 천명한다”며 “올바르게 해결될 때까지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약품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강조한 한미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박 대표와 임원들의 대응에 대해 직원들도 동조하는 분위기“라며 “직원들도 조만간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신 대주주의 행태에 대해 한미약품 임원들이 경영에서 손을 떼라며 반발함에 따라 2024년에 이어 또 다른 경영권 다툼이 벌어질 공산이 커졌다. 2024년에는 가족 대주주간 분쟁이었다면 이번에는 신 대주주와 한미 임직원의 대립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앞서 한미약품그룹은 2024년 약 1년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그 해 1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송 회장의 두 아들 임종윤·종훈 한미약품 이사가 반대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다. 이후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총에서 형제 측이 승리하고, 5월 임종훈 대표가 단독 체제를 이루면서 송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7월 신동국 회장이 모녀 측을 지지하며 3인 연합이 구성됐고, 이후 12월 사모펀드 라데팡스가 3인 연합에 합류해 4인 연합을 이루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이어 지난해 초 4인 연합이 임종윤 이사의 지분 약 5%를 인수함으로써 약 1년 간 이어온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은 신동국 회장과 모녀 측의 최종 승리로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