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이 반년 간 이어진 관세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국의 미국 수출 의약품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적용하고,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에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복잡한 의약품 시장의 관세 문제를 단 한 줄로 요약하긴 어렵다. 다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엄포를 놓던 ‘의약품 100% 관세’라는 폭탄을 피했다는 점에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우리 의약품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의해 1995년부터 무관세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합의에 따라 제네릭은 무관세가 이어지지만, 바이오시밀러는 최혜국 대우를 받아 15%의 관세율이 적용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의약품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같은 15%라는 점에서 불리한 결과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합의문이 명문화되지 않아 양국의 해석에는 차이가 보인다. 합의 하루만에 미국은 ‘한국이 시장을 100% 완전 개방했다’고 주장하고, 한국은 ‘추가개방은 없다’며 엇갈린 주장도 나왔다. 의약품 분야 역시 최혜국 대우라는 표현에 따라 15%일 것으로 추정할 뿐 실제 세부 협상에서 어떤 수치로 확정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번 한미 간 합의 과정은 여러모로 기존 합의와 달랐다.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놔두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에 제약 생산공장을 건설하지 않은 기업의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언급했다. 기존 외교·무역 관례를 넘어선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약육강식’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촘촘하게 명문화되지 않은 합의 과정을 보면 불안감은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외교 문제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WTO나 FTA 협상은 합의문이 몇 백 페이지씩 되는데, EU나 일본의 협정을 보면 합의한 내용이 몇 단어 밖에 안된다”며 “양국이 세부 합의를 한다고 하지만 백악관 입장을 기초로 쓰여질지 등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에 관세 문제를 넘어 변화하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변화에 발 맞춘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뒤따른다. 특히 미국의 리쇼어링(생산 회귀) 압박은 산업 재편의 변수로 작용한다. 미국은 세계 주요국과 관세협상 국면에서 화이자를 비롯한 글로벌 빅파마를 압박해 미국 내 공장 신설을 유도했다. 이제 글로벌 제약사들은 외국에 위탁개발생산(CDMO)를 맡기는 대신 단계적으로 미국 생산을 늘리게 될 것이고, 이에 우리 CDMO 산업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약가 인하를 추진하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다른 국가의 약가 인상 유인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이미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외국에서 약값을 불공정하게 억제하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중이다. 외국 정부가 불공정하게 약가를 낮춘다고 확인될 경우 약가 인상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신약 개발에 돈을 쏟아 부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미국 내 약가 인하로 인한 수익 감소분을 다른 국가에서 보전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은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한미 간 관세 협상을 불리하지 않게 마무리했다고 자평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우리 제약·바이오 업계도 한 단계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