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층의 가장 큰 두려움인 치매를 예방하는 뜻밖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위스 제네바대 연구팀은 유럽 28개국과 이스라엘의 50세 이상 성인 약 3만 명을 18년간 추적 관찰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최근 발표했다. 연구진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인지 기능 변화를 장기간 비교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고령층은 반려동물이 없는 동년배에 비해 전반적인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다. 흥미로운 점은 반려동물의 종류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경우 단기 및 장기 기억력 감퇴 속도가 완화됐다. 그래프 분석 결과,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의 단기 기억력 점수 감소율은 약 33% 완화됐으며, 장기 기억력 점수 감소율은 약 55% 이상 완화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반려견과의 생활이 고령층의 기억력을 유지하는 데 강력한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반려묘를 키우는 경우에는 언어 유창성이 더 오래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다. 반려묘를 키우는 경우 언어 유창성 저하 속도가 비반려인 대비 약 56% 완화되는 효과를 보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인지 점수를 고양이와의 상호작용이 상당 부분 방어해준 셈이다.
이런 긍정적 효과는 50대부터 8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났으며, 성별이나 교육 수준, 경제 상태 등 다른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의 주저자인 아드리아나 로스테코바 제네바대 박사는 "반려동물 소유가 노년기 인지 기능 저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반려동물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반려동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과 규칙적인 신체·사회 활동이 뇌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반려견과의 규칙적인 산책은 운동 효과는 물론, 이웃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회적 자극을 늘린다. 고양이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에 대응하고 교감하는 과정은 뇌의 여러 영역, 특히 언어 및 실행 기능을 활성화하는 독특한 인지적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물고기나 새를 키우는 경우에는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로스테코바 박사는 “물고기의 짧은 수명 때문에 애완 물고기와 맺을 수 있는 정서적 유대감의 수준이 제한될 수 있다”면서 “새를 키우는 것은 소음 증가로 인해 주인의 수면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로스테코바 박사는 또 “개나 고양이와의 상호 작용은 독특한 인지 자극을 제공하는데, 이는 다른 애완동물과의 관계에서는 덜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반려동물이 고령층의 인지 기능 유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대규모 장기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학적 의미가 크다. 국내 건강관리는 보통 병원 진료와 약물 치료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일상 속 인간관계나 생활 환경, 반려동물 양육 같은 요소들이 치매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거나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