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많은 카페나 식당처럼 시끄러운 장소에서 대화가 잘 들리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귀가 나빠서’가 아닐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은 청력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소음 속에서 말을 얼마나 잘 알아듣는지는 지능, 즉 뇌의 정보 처리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PLOS ONE⟫에 게재됐으며, 과학매체 사이언스데일리 등이 보도했다.
연구팀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 12명과 태아 알코올 증후군 환자 10명, 신경학적으로 정상인 27명 등 총 49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청력검사에서 ‘정상 청력’을 보였지만, 지능지수(IQ) 수준에 따라 소음이 많은 환경에서의 말소리 인식 능력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실험은 이른바 ‘멀티토커(multitalker)’ 청취 과제로 구성됐다. 한 명의 남성 화자가 주요 명령어를 말하는 동안 두 명의 다른 화자가 동시에 배경에서 말을 하며 방해음을 냈다. 참가자들은 주 화자가 말한 색상과 숫자를 선택해야 했고, 소음 강도는 점차 높아졌다. 이후 연구진은 각 참가자의 언어적·비언어적 지능 및 지각 추론 능력을 평가해 청취 결과와 비교했다.
그 결과, 지능이 높을수록 소음 속에서 화자의 말을 더 정확하게 구분하고 이해하는 경향을 보였다. 워싱턴대 이비인후과 연구조교수 보니 라우 박사는 “인지 능력과 말소리 인식 능력의 관계는 자폐나 태아 알코올 증후군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집단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라우 박사는 “복잡한 환경에서의 듣기에는 단순한 청각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인지 과정이 관여한다”며 “여러 말소리를 분리하고, 관심 있는 화자의 말에 주의를 집중하며, 동시에 불필요한 잡음을 억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어 이해, 음소·음절 인식, 문맥 파악, 사회적 단서 인식까지 모두 작동해야 하므로 소음 속 대화는 뇌의 인지 부담을 크게 높인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또 “듣기 어려움을 호소하는 모든 사람이 청력 손실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귀 자체가 아닌 ‘뇌의 청각 처리 능력’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라우 박사는 “식당이나 교실처럼 시끄러운 공간에서 말소리를 구별하기 힘든 것은 청력 저하 때문이 아니라 인지적 요인 때문일 수 있다”며 “특히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이나 인지 능력이 낮은 경우, 환경 조정이나 청취 보조 장치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번 연구는 워싱턴대 버지니아 메릴 블로델 청각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워싱턴대 자폐센터, 학습·뇌과학연구소, 생명공학·역학·소아과·영상의학·언어·청각과학과, 그리고 미시간대학교 이비인후과 등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지능이 높은 사람이 소음을 더 잘 견디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청각 정보 속에서 의미 있는 소리를 선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뇌의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이는 단순히 청력검사로는 측정되지 않는 ‘실제 듣기 능력’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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