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환자 맞춤형 치료, 한국 과학자들이 이끕니다”

[수요 라운지] 산자부 ‘혈액암 초정밀 진단 플랫폼’ 과제 총괄 김동욱 을지대 교수

김동욱 을지대 의대 교수가 ‘멀티오믹스 디지털 통합 분석 기반 정밀진단 플랫폼 개발 및 제품화 사업’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번 사업에는 국내 병원 및 기관 20여 곳이 함께 참여한다.

“백혈병이 난치병에서 ‘관리 가능한 병’으로 바뀌었지만, 환자마다 약 효과와 부작용, 내성이 달라서 치료 성과를 장담할 수 없어요.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선 환자들의 생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아 인공지능(AI)으로 분석, 맞춤형 치료와 건강관리를 해야 합니다.”

만성골수성백혈병(CML)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김동욱 을지대 의대 교수는 최근 국내 11개 병원을 비롯, 20여 기관의 ‘혈액암 연구그룹’이 참여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200억원 규모 연구과제 ‘멀티오믹스 디지털 통합 분석 기반 정밀진단 플랫폼 개발 및 제품화 사업’의 출범 의의를 설명하며 ‘환자 생명과 건강’을 제일 윗자리에 뒀다.

“환자 모임에 수시로 참가하며 궁금증을 해결하고 환자에게 앱을 깔게 해 늘 소통하고 부작용이 생기면 즉시 해결책을 알려줘 왔습니다. 의사도, 환자도 일순간의 변화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위험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난해 환자 두 명이 숨져 낙담했던 때가 있었어요. 실의에 빠져 있다 겨우 발걸음을 옮겨 환자 모임에 갔더니 환자들이 오히려 제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더군요. 의사에게 스승이자 동반자인 우리 환자를 한 명이라도 잃지 않으려면 맞춤형 치료가 절대적입니다.”

김 교수는 1995년부터 골수이식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활약하며 온갖 기록을 세우다, 2001년 CML 표적 치료제가 국내 들어온 이후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면서 세계적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2019년 말 세계 11개국 의학자들을 이끌고 CML 환자 141명에게 제4세대 표적항암제의 임상시험 결과를 세계 최고 임상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발표했다.

김 교수는 연구성과 못지 않게 환자 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교수의 환자들은 등산을 하며 건강을 지키고 정보도 교류하는 ‘루산우회’를 결성했고, 김 교수는 이들과 산행을 하고 각종 모임을 가지며 가까워졌다. 김 교수는 환자의 경제 사정에 대해 고민하고 가난한 환자들에게 치료를 지원할 기부자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루산우회 회원들은 이에 호응해 가난한 환자를 찾아 돕고 있으며 필리핀 꽃동네를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김 교수는 병원 직원이 환자의 사정을 나몰라라 하면 직원을 불러서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정부도, 병원도 아니라 환자”라고 혼내기도 한다.

-이번 산자부 과제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지 않나? 우리는 결과가 나오면 환자들에게 최대한 잘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되지 않나?

“서구가 혈액암 빅테이터 연구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맞다. 2017년 출범한 유럽의 비영리재단 하모니 얼라이언스(Harmony Alliance)는 2021년 EU가 100억원을 지원하며 의료기관과 제약회사들의 합류를 이끌어 현재 28개국 128기관이 참여, 혈액암 환자 17만9000명의 생체 데이터를 모았다. 미국은 개별 회사가 자본시장의 투자를 받아 이 작업을 하고 있는데, 템푸스(Tempus)사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 빅데이터 분석, 진단, 예측, 신약 개발에서 무려 250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하지만 EU의 데이터에 아시아인은 800건에 불과할 정도로 서구 중심 연구다. 핵심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혈액암이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평균 10~15세 빨리 혈액암이 생긴다. 또 만성백혈병 가운데 서양인은 림프구성이 30%를 차지하는데 동양인은 1% 미만이다.”

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찾아보기 힘든, ‘끈끈한 동지애’로 뭉친 혈액암 연구그룹이 우리만의 특화전략에 따라 데이터를 구축하고 연구하면 우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것이고 나아가 아시아 환자 전체와 의료계, 관련 산업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혈액암 연구그룹은 이번 과제의 총괄책임자인 김 교수와 운영위원장인 김홍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산학병연(산업체, 대학, 병원, 연구소) 모임이다. 수시로 만나서 토론하고, 저녁자리까지 이어져 술잔을 앞에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자정을 넘겨 헤어지기 일쑤다. 형, 아우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에서 온갖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 그룹은 김동욱 교수가 혈액암 연구 파트너를 모으기 시작한 2005년부터 자연스럽게 싹이 트기 시작했고, 2014년 1월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식당에서 가톨릭대 신경외과 전신수 교수의 전화 벨이 울리면서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했다.

그날 밤 스마트폰 너머로 전 교수의 의대 동기인 김동욱 교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CML 치료제에 내성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을 찾아서 이를 제대로 연구해야 하는데 유전자 분야의 최고 선수 아는 사람 없냐?”

고기를 굽다가 전화를 받은 전 교수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응, 내 바로 앞에 있어.”

김홍태 교수는 전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예일대에서 유전자의 세계를 파고들다 귀국해 당시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미국 백혈병 연구의 산실 프레드허친스 암센터에서 분자혈액학으로 내공을 쌓은 김동욱 교수와 생명공학의 메카 예일대 출신의 연구자가 스마트폰을 매개로 만난 순간이었다. 김홍태 교수는 백혈병 대가가 제시한 여러 유전자 중 “다른 유전자보다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면서 ‘코블1 유전자’를 집중적으로 파고 싶다고 했고, 김동욱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제대로 찾은 듯한데…! 그러나 둘의 관계가 강물처럼 술술 흐르지는 않았다.

김홍태 교수 연구실에서 CML 환자들의 샘플을 분석, 초기 백혈병 환자보다 말기 환자의 코블1 유전자가 50배 많다는 분석 결과를 새벽 1시 김동욱 교수에게 보냈더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반복 실험에서 검증해야 겠다고. 그리고 또 다른 환자들의 샘플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초기 환자가 말기에 비해 코블1 유전자가 50배 많았다.

연구원들이 “우리 실험이 잘못됐나? 그럴 리가 없는데…”하며 당혹해하자, 김홍태 교수는 “어쩔 수 없다. 그대로 결과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김동욱 교수는 저녁에 오라고 하더니 “미안하다”면서 “연구실이 결과보다 진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아보려고 초기 환자와 말기 환자의 시료를 바꿔 보냈다”고 실토했다. 김동욱 교수는 두 번 더 김홍태 교수를 시험했고 김홍태 교수는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같이 연구 못하겠다”고 결별을 선언했다. 이때 김동욱 교수는 “결과에 욕심을 내서 진실에 눈감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생기면 환자의 생명과 관련된 연구를 그르치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심정으로 김 교수를 시험했다. 환자들을 살리는 연구라는 걸 생각하고 정말 미안하지만 이해해달라”고 사과했다.

그리고 둘은 형제처럼 의지하는 연구 파트너가 됐다. 2017년 코블1의 신비를 풀어 백혈병 분야 최고 권위지 《루케미아》에 발표했고, 2019년에는 글리벡 내성에 관여하는 GCA 유전자를 발견해 《오토파지》에 게재했다. 2022년엔 코블1을 중심으로 한 유전자 네트워크가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어떻게 악화하고 약에 내성을 갖게 하는 지를 밝혀내 《캔서 메디신》에 발표했다.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 과제로 선정돼 약을 끊었을 때 면역계 반응에 대해 공동 연구했고 이번에 산자부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 현재 이 혈액암 그룹은 주력 연구자만 70여 명인, 산학병연의 모델 격으로 성장했다.

-산자부 과제 ‘멀티오믹스 디지털 통합 분석 기반 정밀진단 플랫폼 개발 및 제품화 사업’는 이름부터 어렵다. 과제에 대해 설명해달라.

“멀티오믹스에서 오믹스는 ‘전체’를 뜻한다. 말뜻대로라면 여러 전체를 연구한다는 뜻이다. 멀티오믹스는 사람의 유전체(Genome), 전사체(Transcriptome), 단백체(Proteome), 대사체(Metabolome), 후성유전체(Epigenome), 지질체(Lipidome) 등 다양한 분자 수준에서 만들어진 여러 데이터를 총체적이고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과제에선 6가지 혈액암 환자와 일반인에게서 추출한 멀티오믹스 데이터와 임상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빅데이터 수집 분석 연구를 통해 발병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조기 진단·치료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기술이 부가로 개발되며 상용화될 것이다.”

-대규모 연구이다 보니 참여 기관도 많을 것 같다. 해외 대가도 참여한다던데….

“동아대병원의 김성현 교수가 임상시험 위원장을 맡고 계명대 동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이대목동병원, 은평성모병원, 을지대병원, 한림대평촌병원, 화순전남대병원 등 11개 병원 교수 13명이 임상개발에 참여한다. 테라젠바이오, 녹십자의료재단, 바이오티엔에스, 티케이메디컬솔루션, 오믹신 등의 기업도 각각의 기술력으로 과제에 힘을 보탠다. 해외 대가들도 손을 맞잡았는데 남호주대 병리학서비스 암분자진단센터의 수잔 브랜포드 박사는 혈액암 표적항암제 효과, 투약중단 연구들에 활용되는 정량 PCR과 차세대시퀀싱진단기술 등의 세계적 대가로 세계 톱 수준 학술지에 2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메이오클리닉의 황태현 박사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유전자 분석의 세계적 권위자다. 미국 앨라바마 대학교의 라비 바티아 교수는 혈액암 줄기세포 연구의 석학으로 유전자 후보 선정과 기능, 표적화 등의 연구에서 자문을 할 대가다. 이들 해외 연구자들은 우리 연구결과가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연구 프로젝트에선 무엇을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나?

“혈액암의 멀티오믹스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병원마다 데이터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 기록은 내용이 부정확하기도 하고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울산시와 UNIST가 닻을 올린 ‘1만명 프로젝트’에서 지금까지 모은 일반인 4500명과 의료기관에서 확보한 혈액암 환자 1500명 등 약 6000명의 멀티오믹스 데이터로 시작해서 11개 병원의 활용 가능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비교 분석하고 한국인의 혈액암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을 찾아내 분석한다. 이번 과제에선 여러 혈액암 중 비호지킨림프종,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 다발성골수종, 만성골수성백혈병, 만성골수증식종양, 소아백별병 등 총 6가지 대표적인 혈액암의 전암(前癌) 단계부터 발병, 진행 과정까지 초기 유전자 변이가 어떻게 멀티오믹스를 변화시키고 염색체의 변이를 일으켜 혈액암의 발병과 진행에 관여하는지 작용원리(메커니즘)를 찾아낸다. 주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찾고 이와 연관한 진단기술과 치료제를 개발한다.”

-멀티오믹스 연구가 제대로 되면 표적 치료제 뿐 아니라 진단, 치료 등 여러 분야의 기술 발전도 이룰 것 같은데….

“그렇다. 현재 연구와 진단 등을 위한 장비와 소재 등은 고가 외국산이 대부분이다.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실시간 PCR(qPCR), 전장유전체 진단패널, 타겟 시퀀싱 진단패널 등의 개량과 발맞춰 진단 키트와 국산 초정밀 진단장비를 개발한다. 특히 김봉석 대표가 이끄는 바이오티엔에스가 개발할 초정밀 진단장비와 진단키트는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 진단 제품과 맞춤형 치료제의 검증, 임상 서비스 개발도 이번 과제에 모두 포함된다.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디지털 PCR 기반 진단장비 및 혈액암 진단키트를 5종 이상 상용화하고, 글로벌 혈액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결국 환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의료진은 환자 생체 특성에 맞게 혈액암을 예측하거나 조기 진단해 치료할 수 있다. 환자는 병의 진행을 막거나 부작용을 최소화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단기술과 치료기술이 모두 통합형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환자는 인공지능을 통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져 앱으로 개별 건강관리를 하면서 병을 이겨내게 된다. 보다 짧은 시간에 정확한 양질의 치료를 받게 돼 생존율, 치료율이 획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기대한다. 국산 표적 치료제와 진단키트, 장비 등이 개발되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환자와 보험체계, 바이오, 제약산업계에 도움이 될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고 일부는 실제 상용화할 것이지만, 이번 연구에 참가하지 않는 연구자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당장은 6000건의 데이터로 시작하지만 아시아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혈액암 빅데이터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할 것이다. 또한 혈액암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난치성 전문질환의 영역으로도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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