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검색대서 삐삑!"…얼굴 성형 '나사' 탓? 알고 보니
[박준규의 성형의 원리]
지난 주말 국내 포털에 믿기 힘든 뉴스가 올라왔습니다. ‘성형수술을 19회나 받은 대만의 한 모델이, 공항 검색대에서 얼굴 나사 때문에 알람이 울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얼굴뼈에 쓰는 고정나사의 주 성분은 '티타늄'입니다. 치아 임플란트와 같은 성분으로 자성을 띄지 않고, 금속 탐지기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얼굴뼈 수술이나 치아 임플란트 등에 티타늄 고정 나사가 흔히 사용되지만, 나사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얼굴 나사가 공항 검색대에 걸렸다는 '오보' 가 대체 어떤 과정으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기사의 출처부터 수상했습니다. 뉴욕 포스트의 'WEIRD BUT TRUE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섹션에 실린 기사였습니다. 뉴욕 포스트는 영미권의 독자라면 누구나 아는 타블로이드 지(황색 언론)입니다. 이 신문의 기사를 신뢰하며 읽는 독자는 많지 않습니다. 재미로 읽는 '찌라시' 취급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기사를 가져온 국내 언론들이 뉴욕 포스트의 이런 위상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정론지의 기사인 듯, 출처 확인 없이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았습니다. 내용들을 읽어보니, 국내 여러 언론의 기사가 마치 한 사람이 쓴 것 마냥 비슷했습니다.
사진도 좀 이상했습니다. 뉴욕 포스트의 기사 제목은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다 X-ray에서 발견된 내용에 충격' 이었지만, 기사의 사진은 공항 검색대의 영상이 아니라, 병원에서 찍은 CT였습니다.
얼굴에 여러 개의 '못'이 있다며 모델이 올린 사진에서 실제 나사는 단 하나였습니다. 나머지는 코 뼈와, 치아가 CT 상 날카롭게 나온 것에 불과했습니다. 일반인인 모델 본인이 올린 내용인 것입니다.
실제 CT 상 보이는 나사도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이 나사가 정말 공항 검색대의 알람을 울렸다면, 치아 임플란트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 검색대를 그냥 지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뉴욕 포스트 기사의 출처는, 모델 본인 SNS 인스타그램에 짧게 올린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번역기로 확인해 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충격적인 사진, 왼쪽으로 넘기지 마세요.
한국에 놀러 갔다가 CT 사진을 찍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마에만 뼈 못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8년 전 턱에 넣은 보형물에도 거의 3cm 길이의 핀 이 있다는 걸
그저께 알았네요……
저는 정말 성형 중독이에요!
얼굴이 퍼즐 조각 같아요.
#그래서 보안검색대에서 삐삐 소리가 났구나
보안검색대에서 소리가 났다는 부분은 해시태그에 쓴 내용입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해 보았다면,
장난스럽게 마무리하며 썼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SNS에 올린 짧은 내용을, 뉴욕 포스트가 'WEIRD BUT TRUE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섹션에, '수십 차례 성형수술을 받은 모델이 공항 검색대에서 놀랐다'라는 식으로 썼다는 것은 사실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원래 독자들이 반 쯤 걸러서 읽는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타블로이드의 기사들을 국내 언론들이 그대로 옮겨오면, 국내에선 마치 정론지의 기사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언론이, 뉴욕 포스트의 원 기사와 달리, 의학적인 내용만은 틀리게 썼다는 것입니다.
뉴욕포스트의 원래 기사에 나온 의학 정보는 그나마 정확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용 나사는 일반적으로 환자에게 해롭지 않으므로 실제로 제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증, 자극 또는 감염을 유발하는 경우 의사가 제거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뉴욕 포스트의 내용을 가져온 국내 언론들이, 이 내용만은 공통적으로 틀리게 바꿨습니다.
'나사는 수술 후 뼈가 다 고정된 후에는 제거해야 한다.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질환이나 외상 등이 발생했을 때 진단을 방해하거나 주변 조직을 더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
팔다리뼈를 고정하는 큰 나사들은 제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얼굴뼈를 고정하는 나사들은 상기한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 모델의 경우, 뼈를 고정하는 것이 아닌, 보형물을 고정하는 나사이므로, 상황 자체도 완전히 다릅니다. 마치 '치아 임플란트가 고정된 후에는 나사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처럼 엉뚱한 내용인 셈입니다.
타블로이드 지의 가십성 기사를, 정론지의 기사인 듯 옮겨오면서, 의학적 내용은 틀리게 바꿨으니, 이보다 위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실, 이런 기사들을 읽으며 성형외과 의사로서 안타까움을 느낀 적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언론들이 성형외과에 대한 내용은 유독 '의학 정보'가 아닌 '가십성 이슈'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습니다.
같은 티타늄 성분의 '치아 임플란트'가 공항 검색대에서 걸렸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역시, 볼일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기사라면, 언론은 그 출처부터 확인할 것입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재밋거리로 다루지도 않을 것입니다. 의학과 인체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형외과학이 다루는 의학과 인체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떠한 의사도 인체와 의학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성형외과 의사 또한 정확히 그렇습니다.
대중은 성형외과 관련 이슈에 호기심을 갖고, 때로는 가볍게 소비할 수도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서, 언론도 성형외과적 내용을 재밋거리로 다루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형외과학 역시 온전히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의학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