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근육병 환자, 숨 지켜주는 ‘대부’

[베닥] 재활의학과 분야 강남세브란스병원 강성웅 교수

“교수님, 건강하십시오.”

“고맙네.”

“직접 가지 못해서 돈 보낼 테니 맛있게 식사하세요.”

“마음은 고맙지만, 김영란 법 때문에 안돼요.”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강성웅 교수(62)는 지난 스승의 날에 환자와 메신저로 대화하며 가슴이 뭉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환자는 ‘연세대 호킹’으로 불리는 신형진 씨(38). 생후 7개월 때 척수성근위축증 진단을 받고, 온몸이 마비된 채로 공부해서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고 석사까지 마쳤다. 그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플랫폼 회사 라프텔을 창업, 회사를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회사 RIDI에 인수 합병시켰다. 신 씨는 삼성전자가 개발한 안구 마우스로 메일이나 메신저를 쓰면서 강 교수와 대화해왔다.

강 교수는 2005년 신 씨를 처음 진료했다. 신 씨는 2004년 7월 외할머니의 팔순을 맞아 미국에 갔다가 급성폐렴에 걸렸다. 두 달 동안 현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미군 앰뷸런스 항공기를 타고 귀국했다. 강 교수는 뉴스를 보고 환자 아버지가 근무하던 회사에 “언제든지 내가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메모를 남겼다. 부모는 아들을 다른 병원에 보냈다가 1년이 지나서 찾아왔다. 강 교수는 그 병원에서 신 씨의 기관을 절개해버리는 바람에 5개월 동안 호흡기 근육을 단련시키고 기관절개 부위를 봉합시킨 다음, 코를 통해 인공호흡기로 호흡토록 한 뒤 퇴원시켰다. 신 씨는 6개월마다 외래로 방문하지만, 삶의 순간마다 메시지나 이메일을 보내온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앞에 선 강성웅 교수.

강 교수는 20년 전만 해도 환자가 10대부터 더 이상 숨 쉴 수 없던 신경근육계질환자와 척수손상환자들의 삶을 연장하고 꿈을 실현케 하는 ‘호흡기재활’의 세계적 대가다. 강 교수는 매년 2월 ‘한국의 호킹’ 행사를 통해서 그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졸업하는 환자 20여명을 축하하며 의사로서의 사명과 보람을 느끼며 그 보람을 해외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강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가려는 순탄한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부산 배정고 재학 때에는 공부 대신 인문학 동아리 ‘여명’의 활동에 빠졌다가 교과과정을 못 따라가 자퇴하고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연세대 경영대에 지원했지만 낙방하고, 항공공학이나 농공업이 공부하고 싶어 문과에서 이과로 바꿨다가 우연찮게 의대에 들어갔다. 의대에서는 신생 전공인 재활의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었고, 인턴이 끝나고 전공의 자리가 나지 않자 군의관 근무 뒤 모교 병원의 재활의학과에 들어와 미국 뉴욕대학교병원 출신의 문재호 교수 문하에서 환자를 봤다.

문 교수는 1985년 국내 최초로 근육병클리닉을 개설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환자를 보고 있었지만, 호흡기장애 탓에 응급실에 온 환자를 속절없이 떠나보내는 일이 되풀이됐다.

“당시 교과서에서는 근육병 환자는 호흡기근육이 마비돼 최대 20세까지밖에 못산다고 돼 있었지요. 스승님도 마지막 단계에서 온 환자를 호흡기내과 의사에게 인계할 수밖에 없었는데, 호흡기내과에서는 폐렴 환자 보듯이 진료를 하다가 떠나보내는 겁니다.”

강 교수는 전문의 때 정신은 명료한데 호흡기가 마비돼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태로 병원에 왔다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환자들을 보면서 가슴이 타들어갔다. 교과서 내용이 모두 진리는 아니라는 생각에까지 미처 도서관의 자료들을 파고들어, 외국에서는 호흡기재활이라는 분야 덕분에 30, 40대, 심지어 50대까지 산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강 교수는 미국 뉴저지의대 존 바크 교수가 이 분야의 세계 최고 대가라는 사실을 알고, 스승에게 이 분야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스승은 “이 사람, 내 뉴욕대병원 전공의 동기인데….”하며 반겼다. 스승은 존 바크 교수를 초청해서 국내 재활의학과 의사 대상의 강의를 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8년 미국 뉴와크의 대학병원으로 연수 가서 1년 반 동안 오전에는 스승과 함께 환자를 보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뒤 귀국했지만 국내에서는 배운 것을 써먹기가 힘들었다. 호흡기구가 없는데다가, 병원의 다른 의사들은 “재활의학과 의사가 왜 호흡기를 쓰려고 하느냐”며 황당해 했다.

“정신은 멀쩡한데 호흡기근육이 약해져 병원에 온 근육병 환자가 중환자실에 오래 머물면서 엉뚱한 치료를 받으면 정신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지요. 중환자실에 가서 미국에서 배운 호흡기재활원칙에 맞게 환자의 호흡기를 조절하면 ‘재활의학과 의사가 그걸 왜 만지냐?’고 싫은 소리를 듣기 예사였습니다. 환자를 일반 병실에 올리려고 하면 간호사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병원 규정상 인공호흡기 쓰고 있으면 퇴원이 안됐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강 교수는 1년 동안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가며 호흡기재활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병원에서는 2000만~3000만 원대인 인공호흡기를 구매해주지 않았지만, 문재호 교수가 출범시킨 ‘근육병 환우를 위한 자선의 밤-함께 걸어요’ 행사에서 인공호흡기를 기부 받아 환자에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첫 환자는 말초신경계가 갑자기 손상돼 급격하게 근육의 힘이 빠지는 ‘길랭-바레 증후군’에 걸린 초등학생. 기관을 절개하고 호흡기를 연결해서 말을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어야 했던 환자가 밤에 인공호흡을 하고, 낮에는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누구나 인공호흡기의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 환자의 95% 이상은 오랜 치료에 경제적으로 소진돼 있었고 호흡기재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허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하더니, 하늘이 응답했다. 2001년 보건복지부가 희귀난치질환 지원사업을 시작한 것. 강 교수는 위원회에 가서 “근육병에는 지금 약은 없지만, 인공호흡기가 약”이라고 주장해서 위원들을 설득했다. 환자들은 인공호흡기 대여료를 지급받아 호흡재활을 할 수 있게 됐다. 10년 뒤인 2011년에는 이 사업에 기침유발기가 포함되도록 했다.

“기침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호흡기가 약해진 근육병 환자에게는 축복입니다. 기침을 통해 호흡기의 노폐물을 빼내지 못하면 폐렴을 비롯한 각종 병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위원회에 ‘기침유발기를 안 쓰면 의료비가 훨씬 더 많이 든다’고 설득해서 환자가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강 교수는 2002년 3월부터 매년 ‘호흡재활 워크숍’을 개최해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에게 신경근육계 질환 또는 척수손상 환자들의 호흡기재활을 가르치고 있다. 전국에서 호흡재활을 담당하는 의료인이 늘면서, 2010년까지는 강 교수 팀이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전국의 호흡재활 환자 1800~2000명의 대부분을 보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4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호흡기재활이 없었을 때엔 근육병 환자의 기대수명이 20세였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기관을 절개하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해 누워 있다가 3, 4개월 만에 숨을 멈췄지요. 2000년대부터 달라져서 미국 다녀왔을 때 20대인 환자들이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과서에는 루게릭병은 발병 5년 내 90%가 사망하고 근육병은 20세를 넘기지 못한다고 돼 있어요. 실습 나온 의대생에게 교과서를 잊으라고 먼저 가르칩니다. 그것 외우고 있으면 환자에 대해 부정적, 소극적 치료를 하게 돼 환자에게 피해가 가니….”

그는 전국 병원으로 호흡재활 치료가 보급된 2010년경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일부 선진국 외에는 우리나라의 2000년 무렵과 비슷하게 호흡재활이 보급되지 않아서, 자신이 세팅했던 노하우를 각국에 전수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믿고 있다. 2010년 2명에서 시작해서 2018년부터 매년 6명의 외국인 제자들에게 호흡기재활의 의술뿐 아니라 기부금 확보, 정부 지원 받는 법 등을 알려준다. 강 교수는 또 의료인들끼리 정보를 더 잘 교류토록 국제호흡재활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창립 학술대회가 연기되고 있지만 올 가을 온라인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강 교수는 개발도상국에서 고가의 인공호흡기를 구매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간이 인공호흡기와 기침 유발기를 직접 개발하기까지 했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을 통해 벤처기업에 기술을 전수해줘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3D 프린트와 신소재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강 교수는 2009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 최초로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설립한 호흡기재활센터가 수많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센터는 낮은 보험수가 때문에 매년 2억의 적자를 보는데, 1억 원은 재단 지원금, 1억 원은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기부금의 절반 가까이는 매년 1만~2만원을 보태는 기부자들에게서 나온다. 재작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사회공헌위원회와 ‘아이들과 미래재단’에서 운영하는 ‘기브 앤 레이스 마라톤대회 매칭 펀드’가 3억 원을 쾌척했다. 센터에서는 이 금쪽같은 돈으로 교육 책자와 동영상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강 교수는 이 소중한 센터를 위닝 센터(Weaning Center)로 도약시키는 게 꿈이다. 위닝 센터는 신경근육병 또는 척수질환 중환자에게 호흡재활을 통해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가 호흡할 때까지 돕는 곳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기재활센터를 미국 LA의 바로우 병원 위닝 센터에 버금가는 센터로 성장시키고 싶은 것. 강 교수는 환자의 부모가 “내가 죽으면 아이는 누가 돌볼 수 있나?”고 걱정하지 않게끔 돕고 싶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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