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04일 (수)

“죽음의 땅에서 살아남은 강아지들”… 체르노빌 유기견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주민 대피 후 사살까지 당했던 반려견들…40년 뒤 후손들의 DNA 분석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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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에도 현지에 남아 살아가는 유기견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진은 이들에게서 인근 지역 개들과 구별되는 유전적 특징을 발견했다. 사진=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약 40년 전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는 지금도 수백 마리의 개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위험을 견디며 살아온 걸까? 과학자들이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해 개들의 DNA를 들여다봤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방사성 물질이 퍼지자 주민들은 황급히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당시 주민들은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없었고, 소련 당국은 방사성 오염 확산을 막기 위해 남겨진 동물들을 사살했다.

그러나 일부 개들은 살아남았고, 그 개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체르노빌에 살고 있다.

방사선보다 무서웠던 굶주림…개들을 살린 건 사람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에도 현지에 남아 살아가는 유기견들. 이들은 원전 직원과 경비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번식을 이어왔다. 사진=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체르노빌에서 개들이 마주한 위험은 방사선뿐만이 아니었다. 추운 겨울과 굶주림, 야생동물의 공격도 이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2021년 소개한 현지 조사에 따르면, 체르노빌 개들의 수명은 약 4~5년으로 추정됐다. 동물보호단체 클린퓨처스펀드(Clean Futures Fund)는 혹독한 겨울철 먹이와 물, 몸을 피할 장소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생존 위협이라고 설명했다.

개들은 먹이를 찾아 숲을 떠돌다가 사람들이 일하는 원전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원전 직원들은 자신들의 식사를 나눠주거나 다친 개들을 돌보기도 했다.

2017년부터는 동물보호단체가 본격적인 보호 활동에 나섰다.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먹이와 의료 지원도 제공했다.

이처럼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온 개들. 그런데 이들의 DNA에서는 예상치 못한 차이가 발견됐다.

불과 16km 떨어져 있는데…유전자는 크게 달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진은 체르노빌 원전 주변에 사는 개들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2026년 9월 27일 국제학술지 《유전자(Genes)》에 발표됐으며, 11월 초 해외 과학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연구진은 원전 주변 개들과 약 16km 떨어진 체르노빌 시내 개들의 DNA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가까운 거리에 사는 두 집단 사이에서 뚜렷한 유전적 차이가 나타났다.

특히 원전 주변 개들의 유전체 100곳 이상에서 자연선택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가 발견됐다. 그중에는 손상된 DNA를 복구하거나 세포의 생존과 사멸을 조절하고,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 영역도 포함됐다.

그렇다면 수십 년간 방사선에 노출되면서 개들에게 특별한 돌연변이가 생긴 것일까?

방사선이 유전자를 바꿨을까?…예상 밖의 연구 결과

원전 사고 이후 오염된 땅에서 살아온 개들이라면 방사선 때문에 유전자에 특별한 변화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앞서 연구진이 2024년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원전 주변 개들에게 돌연변이가 더 많이 축적됐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오히려 자연선택이 유전적 차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자연선택은 특정 환경에서 생존하거나 번식하는 데 유리한 유전적 특징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더 흔해지는 현상이다.

연구진은 체르노빌의 오염된 환경이 이러한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원전 주변에는 방사성 물질뿐 아니라 중금속과 여러 화학 오염물질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개들이 사고 당시부터 특정 환경을 견디는 데 유리한 유전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다만 이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이번 연구가 체르노빌 개들이 방사선에 강해졌거나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DNA 복구와 면역 기능에 관련된 유전자 영역에서 차이가 발견됐지만, 실제로 해당 기능이 더 뛰어난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런 유전적 차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는지 확인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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