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5일 (목)

“은행 건너뛰고 모바일로 갔듯”⋯강대희 회장이 꿈꾸는 아시아 의료 ‘퀀텀 점프’

[인터뷰] 강대희 아시아원격의료학회장, 아시아 누비며 의료계 설득⋯16일 베트남서 제2회 학술대회, 2030년 세계학회 구상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강대희 아시아원격의료학회장은 15일 코메디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각국의 의료 환경에는 원격의료라는 '퀀텀 점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장자원 기자

“아시아 각국의 경제는 급성장하고 있지만 의료 인프라 구축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원격의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최고의 무기입니다.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최고의 의료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 의료계가 이 움직임을 이끌 수 있다고 봅니다.”

강대희 아시아원격의료학회(ATS) 회장은 16일 베트남 페어몬트 하노이 호텔에서 열리는 ‘제2회 ATS 학술대회(ATS 2026)’를 하루 앞두고 코메디닷컴에 이같이 말했다.

빠른 국가 성장을 의료가 못 따라간다⋯아시아 의료에 필요한 퀀텀 점프

아시아 각국의 경제 규모는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명목 GDP(국가 전체 경제 규모)는 1조5000억 달러(약 2000조원)를 넘어서 세계 16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의 GDP는 5140억 달러(약 700조원)로 세계 33위 수준이며, 카자흐스탄도 지난해 처음으로 3000억 달러(약 400조원)를 돌파했다.

문제는 이들 국가의 의료 수준이 경제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내 영상의학과 전문의 수는 약 1500명으로, 인구가 5분의 1도 안 되는 한국의 전문의 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베트남은 2027년에야 처음으로 국가 의사면허 시험 제도를 도입한다. 의료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표준 시스템이 아직 미비한 상황이다.

강 회장은 “의사의 양성도 힘든 환경에서 단계별로 차근차근 의료를 발전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아시아 각국은 의료 분야에서 ‘퀀텀 점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마치 금융 체계의 변화 흐름과도 유사하다. 선진국은 현금 화폐를 시작으로 은행과 ATM(현금지급기), 신용카드를 거쳐 모바일 뱅킹으로 넘어갔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현금에서 곧바로 모바일로 전환했다. 중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급격한 금융 혁신이 가능해진 것처럼, 의료 분야에서 핵심 변화를 이끄는 것은 원격의료가 될 겁니다.”

ATS는 바로 이 지점을 짚는다. 16일 개최되는 ATS 2026에선 아시아 각국이 원격의료를 활용해 의료의 질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소개된다.

전상훈 전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좌장을 맡는 ‘국경 간 원격의료의 글로벌 트렌드’ 세션에선 각국 환자들이 국경을 넘어 치료받았을 때의 기대효과와 시스템 구축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을 논의한다. ‘소아 전문 원격의료’ 세션에서는 일본의 쿠로키 하루오 소아과 전문의가 좌장과 연자로 나서 원격의료를 적극 도입한 일본 의료현장의 사례를 전할 예정이다.

팬데믹을 ‘기회’로, 한국 원격의료 논의의 출발

아시아 각국이 원격의료를 논의하는 무대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2020년 8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서울대병원은 외래 진료를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 강 회장은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의료계 동료 30여 명을 모아 매주 원격의료에 관한 학습을 이어갔다.

강대희 아시아원격의료학회장과 권준수 한양대 석좌교수 등이 코로나 19 팬데믹 당시 발간한 원격의료 번역서. 사진=강대희 회장 제공

곧 스터디 자료를 번역한 공저 ‘원격의료의 기초’가 발간됐고, 이어서 만들어진 원격의료연구회가 이듬해 4월 한국원격의료학회로 발전했다. 박현애 서울대 간호대 교수가 초대 학회장을, 권준수 한양대 석좌교수(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가 학술위원장을 맡았고 강 회장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뇌졸중 환자 대상 원격재활 솔루션을 활발히 시행하던 백남종 서울대병원장(당시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은 부회장직을 거쳐 초대 이사장에 올랐다. 씨어스·카카오헬스케어·이지케어텍·닥터나우·제이앤피메디·웰트 등 산업계 관계자들도 임원진이나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며 힘을 보탰다.

학계와 산업계가 뭉친 한국원격의료학회는 비대면 진료가 법제화되는 과정에 공헌했다. 공청회를 열어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실질적으로 의료 현장에 필요한 것을 정부에 전달하는 한편 환자 보호와 산업계 활성화의 균형을 이루는 중책을 맡은 것이다.

“자비로 각국 다니며 밤새 설득” 노력으로 맺은 결실

강 회장이 더 큰 무대에서 사명감을 발견한 건 2022년 말 즈음이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정작 의료 인프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가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원격의료 산업계에 더 큰 시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일을 시작하려면 무엇(What)을 할 것인가, 왜(Why) 할 것인가, 누구(Who)와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무엇’과 ‘왜’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 중요한 건 이걸 같이 감당할 사람을 찾는 것이었죠.”

강대희 회장은 수소문 끝에 테라완 아구스 푸트란토 전 인도네시아 보건부 장관, 응우옌 란 히에우 베트남 하노이의대병원장 등과 접촉했다. 푸트란토 전 장관은 현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보건 부문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는 유명 의사이자 정치인이다. 히에우 원장 역시 현직 베트남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의료를 단계별로 발전시키기는 어렵다고 봤다. 폭증하는 인구 대비 의사 수가 너무 부족하고, 의사를 길러내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도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원격의료가 그 허들을 한 번에 넘을 수 있다”는 강 회장의 확신이 그들을 움직였다.

강 회장은 탄탄한 인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베트남 하노이, 일본 도쿄를 수시로 방문하며 국가관과 정치력·실행력을 모두 갖춘 의사를 발굴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은 자비로 부담했다. 도착한 지 하루도 안 되어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싣는 날도 많았고, 의사들을 만나 설득하다 밤을 샌 날도 허다했다.

지난한 노력 끝에 일본에서는 도쿄대 의대의 난가쿠 마사오미 학장이 강 회장의 계획에 동조했다. 난가쿠 학장은 재택투석장치를 개발하고 당뇨 환자의 원격 치료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이미 현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원격의료 시스템을 활용하는 의사다.

드디어 2025년, 이들을 주축으로 하는 아시아원격의료학회(ATS)가 탄생했다. 강대희 초대 회장을 필두로 인도네시아의 푸트란토 전 장관, 베트남의 히에우 원장, 일본의 난가쿠 학장이 부회장을 맡았다. 한림대성심병원장 재임 시절 국내 원격의료 시스템의 도입에 앞장섰던 유경호 한림대 의대 학장도 합류해 부회장직을 수행했다.

의료·산업계 전문가들이 한 곳에

올해 학술대회 행사엔 국내의 다양한 원격의료 분야 전문가들이 나선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의 정진웅 대표는 오후 AI 세션에서 기술 발전과 규제 정책의 균형을 짚으며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 기업 웰트의 강성지 대표 역시 자사 최신 플랫폼의 강점을 소개할 예정이다.

1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ATS 2026. 사진=아시아원격의료학회

고령자나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이혜진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원격의료의 실제 적용’ 세션의 좌장을 맡아 병원과 집을 잇는 실질적 방안을 소개한다.

국제학회인 만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특화된 논의의 장도 마련됐다. 히에우 원장이 진행하는 ‘베트남 원격의료’ 세션에서는 AI를 활용한 디지털 정신건강 시스템, 원격의료 인프라의 법적 쟁점, 환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보완책 등을 다룬다. 인도네시아 세션에선 푸트란토 전 장관이 현지 원격영상판독의 현 위치와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강 회장은 “베트남 현지 의료인만 600명 이상이 이번 학술대회에 참석한다”며 “히에우 원장을 중심으로 한 현지 세션에서 논의가 확장돼 베트남원격의료학회의 태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학회는 온라인으로도 중계하며, 참관을 원하는 사람은 학술대회 홈페이지에 등록 후 무료 스트리밍 시청이 가능하다.

(신청 링크: https://ats2026.abacusai.app)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아시아 원격의료계에 이처럼 활발한 논의의 장을 이끌어낸 것은 한국 의료진들이다. 아시아 의료의 거점이자 허브로 한국이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강 회장은 “한국 의료환경만이 가진 특징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은 정말 독특한 의료 발전 과정을 거친 나라지요. 광복 이후부터 미국과 유럽 각국이 우리 보건의료의 선각자들을 교육시켰고, 선배 의사들은 그 고마움을 새기며 유학 간 땅에서 어깨 너머로 많은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어요. 말하자면 적절한 도움과 선배들의 체력, 재능 등이 모여 빛을 발한 겁니다. 그러던 한국이 지금은 전 세계에서 의료 시스템과 수술을 배우러 오는 나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 부분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큰 희망을 준다고 생각해요.”

이미 강대희 회장은 다음 목표를 꿈꾸기 시작했다. 한국원격의료연구회를 창설한 이후 꼬박 5년 만에 ATS를 만든 그다. ATS 출범 5년 뒤인 2030년에는 세계원격의료학회(WTS)를 만드는 것이 강 회장의 구상이다.

“마침 BTS와 철자 하나만 다르네요(웃음). WTS가 정말 등장하고 한국이 그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또 하나의 거대한 한류가 시작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강대희 아시아원격의료학회장은 "2030년 세계원격의료학회 출범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장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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