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4일 (월)

느닷없이 말투 어눌해진 25세男⋯몸 속에 구리 쌓이는 ‘이 병’ 때문?

단순 피로나 혀 꼬임인 줄 알았더니… 간과 뇌에 구리가 쌓여 망가지는 ‘윌슨병’의 경고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젊은 남성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갑자기 말투가 어눌해진 20대 남성이 뇌와 간에 구리가 쌓이는 윌슨병을 진단받은 사례가 보고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평범한 삶을 꾸리던 25세 파키스탄 남성은 어느 날부터 대화 도중 혀가 굳은 듯 발음이 뭉개지고 목소리가 단조로워지는 이상 증세를 겪었다. 처음에는 업무 스트레스나 극심한 피로 때문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증상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약 1년이 지난 뒤 이 환자는 혹시 뇌졸중이 온 것은 아닐까 겁을 먹고 서둘러 대학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뇌혈관의 문제가 아니라, 몸속에서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구리가 뇌와 간에 소리 없이 쌓여 발생하는 유전 대사질환인 ‘윌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파키스탄 굴라브 데비 교육병원 연구팀에 의하면 특별히 앓는 병이 없던 이 남성은 최근 1년 동안 점차 악화된 언어 장애와 복부 팽만감으로 병원을 찾았다. 정밀 검사 결과 눈의 각막에 구리가 침착되어 생기는 ‘카이저-플라이셔 고리(Kayser-Fleischer rings)’가 발견됐다. 또한 혈청 세룰로플라스민 수치가 극도로 낮고(5mg/dL) 소변의 24시간 구리 배설량이 정상치의 몇 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도 기저핵과 백질 등에 구리 축적으로 인한 대사성 이상 신호가 뚜렷하게 포착됐다.

연구팀은 환자의 몸속에 지나치게 많이 쌓인 구리를 몸밖으로 빼내기 위해 약물 치료(D-페니실라민 및 아연 치료 등)에 들어갔다. 환자는 안정을 되찾고 장기 손상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 최근 1년 동안의 추적 관찰 결과, 환자는 언어 능력과 전반적인 피로감이 점차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례 연구 결과(When Speech Signals Wilson Disease: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윌슨병(Wilson's disease)은 구리 대사에 이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유전병이다. 세계적으로는 3만~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지만, 국내의 경우 유병률이 약 3만 명당 1명 수준으로 서양에 비해 발병 빈도가 다소 높다. 이 병은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며, 국내 일반 인구 중 약 90~100명 중 1명(약 1%)이 윌슨병 유전자를 가진 보인자로 추정된다. 특히 한국인 환자에게는 R778L 등의 특유한 유전자(ATP7B) 변이가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진단받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지방간, 우울증, 파킨슨병 등 다른 질환으로 오인돼 고생하는 환자가 꽤 많을 것이라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병은 초기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모호한 데다 동네 병원이나 일반 내과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원인 모를 피로감이나 가벼운 간 수치 이상과 발음 이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엉뚱한 치료를 받으면서 진단이 수년씩 지연될 수 있다.

윌슨병 환자의 말투 이상(구음장애)은 단순한 혀 꼬임과 구별된다. 뇌의 운동 조절 부위에 구리가 쌓이면서 혀·입술· 성대를 움직이는 근육이 뜻대로 조율되지 않아 발음이 뭉개지고, 높낮이가 사라져 목소리가 단조롭다. 간 기능 검사 수치가 약간 올랐을 뿐인데도 몸 안에는 심각한 간 손상과 신경계 축적이 이미 진행된 경우가 많다. 원인 모를 만성적인 언어 장애나 지속적인 간 기능 이상이 나타나면 전형적인 운동 장애가 없어도 윌슨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윌슨병은 어떤 사람에게 주로 발생하나요?

A1. 생후 첫 30년 이내의 젊은 연령층에서 주로 나타나지만, 발병 연령과 증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부모 양쪽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발현되는 상염색체 열성 질환이므로 가족력이나 보인자 여부가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Q2. 말투가 어눌해지는 증상 외에 어떤 신호가 나타나요?

A2. 간과 뇌뿐만 아니라 눈(카이저-플라이셔 고리), 콩팥(신장) 등 온몸에 구리가 쌓이기 때문에 황달, 복수, 원인 모를 피로감, 손떨림이나 근육 경직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Q3. 왜 조기 발견이 아주 중요한가요?

A3. 구리가 뇌와 간에 계속 쌓이면 돌이킬 수 없는 간경화나 심각한 신경학적 손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증상 초기 단계에서 구리 배출 치료를 시작하면 병의 진행을 막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될 수 있습니다.

Q4. 윌슨병 유전자를 가진 보인자는 모두 이 병에 걸리나요?

A4. 아닙니다. 윌슨병은 부모 양쪽으로부터 각각 이상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발현되는 상염색체 열성 질환이므로, 정상 유전자와 이상 유전자를 하나씩 가진 보인자는 스스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합니다. 다만 보인자는 유전자를 자녀에게 물려줄 가능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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