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을 받아들이는 망막의 시세포가 망가지면 되살리기 어렵다. 그렇다면 손상된 시세포 대신 다른 망막세포가 빛을 감지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원리로 시력 회복을 노리는 유전자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심사에 들어갔다. 특정 유전자 변이를 고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어떤 유전자 이상 때문에 병이 생겼는지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미국 바이오기업 나노스코프 테라퓨틱스(Nanoscope Therapeutics)는 FDA가 중증 시력 손실을 동반한 망막색소변성증 치료제 ‘모젠리(MOGENRY·성분명 sonpiretigene isteparvovec·개발명 MCO-010)’의 생물의약품허가신청(BLA)을 접수하고 심사에 들어갔다고 9일 밝혔다.
BLA는 생물의약품을 미국에서 판매하기 위해 FDA에 내는 허가신청이다. 일반 합성의약품은 주로 신약허가신청(NDA) 절차를 거치지만 유전자치료제 같은 생물의약품에는 BLA가 적용된다.
회사에 따르면 최종 허가될 경우 중증 시력 손실이 있는 환자에게 원인 유전자와 관계없이 쓸 수 있는 첫 망막색소변성증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빛 못 받는 망막⋯양극세포에 새 역할
망막색소변성증은 빛을 감지하는 망막 시세포가 서서히 손상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처음에는 어두운 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야맹증이나 주변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병이 진행되면 시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모젠리는 이미 망가진 시세포를 되살리는 대신 다른 망막세포에 빛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새로 부여한다.
정상적인 눈에서는 막대세포와 원뿔세포 같은 시세포가 빛을 받아 전기신호로 바꾸고 이를 망막 안쪽 신경세포로 넘긴다. 망막색소변성증이 진행되면 시세포가 줄어들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모젠리는 아데노연관바이러스 2형(AAV2)을 운반체로 이용해 빛에 반응하는 ‘다중특성 옵신(MCO)’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는 유전정보를 망막의 양극세포에 전달한다. 양극세포는 원래 시세포에서 받은 신호를 망막신경절세포로 넘기는 역할을 한다.
MCO 유전정보가 양극세포에서 발현되면 빛에 반응하는 옵신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에 따라 양극세포가 빛에 직접 반응하고, 망가진 시세포를 거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망막 신경회로를 통해 시각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을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고 한다.
약은 눈 속에서 젤 형태의 유리체가 차 있는 공간인 ‘유리체강’에 한 번 주사하도록 개발됐다. 망막 아래 공간에 약물을 직접 넣는 망막하 주입 방식과는 다르다. RESTORE 임상에서도 한 차례 유리체강내 주사로 효과와 안전성을 살폈다.
특정 돌연변이 찾아 고치는 방식과 달라
망막색소변성증은 환자마다 원인 유전자가 다를 수 있는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한 질환이다.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유전자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같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도 환자마다 원인이 되는 변이가 다를 수 있다.
미국에서 허가된 대표적인 망막 유전자치료제 ‘럭스터나(Luxturna)’는 적용 대상이 정해져 있다. RPE65 유전자의 양쪽 사본에 병적 변이가 확인된 유전성 망막질환 환자가 대상이며, 치료할 수 있는 망막세포가 남아 있어야 한다. 럭스터나는 정상 기능을 하는 RPE65 유전자 사본을 망막세포에 전달해 부족한 기능을 보충한다.
모젠리는 이런 특정 원인 유전자의 기능을 보충하는 방식이 아니다. 시세포가 크게 손상된 뒤에도 남아 있는 양극세포가 빛에 직접 반응하도록 기능을 바꾼다. 어떤 유전자 변이가 망막색소변성증을 일으켰는지를 기준으로 환자를 선별하지 않는 ‘유전자 비의존적(gene-agnostic)’ 치료법으로 개발되고 있다. 회사는 유전자검사로 특정 변이를 확인하지 않아도 치료 대상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27명 분석⋯52주 뒤 시력 약 3~4줄 규모 개선
FDA에 낸 허가자료에는 무작위·눈가림·가짜시술 대조 RESTORE 임상과 장기 추적 연구 REMAIN 결과가 담겼다.
RESTORE에서는 중증 시력 손실이 있는 환자 28명을 무작위로 나눴다. 이 가운데 1명은 기저치 측정과 투여 전에 참여 동의를 철회했다. 실제 효과 분석에는 고용량군 9명, 저용량군 9명, 가짜시술군 9명 등 27명이 포함됐다.
52주 뒤 최대교정시력은 고용량군에서 처음보다 평균 0.337 logMAR, 저용량군에서 0.382 logMAR 좋아졌다. 가짜시술군의 개선폭은 0.050 logMAR였다. 두 용량군 모두 가짜시술군과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logMAR는 시력을 수치로 비교할 때 쓰는 지표다. 값이 낮아질수록 시력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0.3 logMAR 변화는 일반적인 시력표로 환산하면 약 3줄 정도다. 두 용량군의 평균 개선폭은 대략 3~4줄 수준이었다.
다만 실제 효과를 분석한 환자가 27명에 그친 소규모 임상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회사는 RESTORE에서 모젠리를 투여받은 환자를 장기간 추적한 REMAIN 연구 자료도 FDA에 제출했다.
중대한 이상반응 없어⋯눈 염증·안압 상승은 관찰
회사에 따르면 약과 관련된 중대한 이상반응이나 중증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상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흔하게 나타난 것은 눈 앞쪽에서 염증세포가 관찰되는 현상과 안압 상승이었고 대부분 경증이나 중등도였다. 회사는 중점적으로 살핀 안내염, 망막염, 망막혈관염 같은 안구 염증 이상반응은 투여군에서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모젠리는 패스트트랙과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 FDA의 본격적인 허가 심사 단계로 넘어갔다.
최종 승인을 받으면 특정 돌연변이를 찾아 고치는 기존 방식과 다른 접근법이 실제 진료에 들어오게 된다. 병이 진행된 뒤에도 망막에 남은 세포의 역할을 바꿔 시각 신호가 다시 전달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FDA는 임상 결과와 안전성, 제조·품질 자료 등을 종합해 최종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