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치료가 길어질수록 환자와 가족이 마음 편히 쉴 곳은 마땅치 않다.
폴로 랄프 로렌으로 잘 알려진 미국 패션기업 랄프 로렌이 국립암센터발전기금과 손잡았다. 랄프 로렌은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에 환자·가족을 위한 회복 공간 '랄프 로렌 라운지(The Ralph Lauren Center for Patient and Family Recovery)'를 세운다고 8일 밝혔다.
랄프 로렌의 글로벌 암 지원 네트워크가 아시아로 확장되는 첫 사례다.
양성자치료 환자·가족 위한 전용 공간
라운지는 국립암센터가 새로 짓는 혁신항암연구센터 내 제2양성자치료센터에 들어선다. 개소 목표는 2028년이다.
치료 기간이 길고 몸에 부담이 큰 양성자치료를 받는 환자와 가족, 돌봄 제공자가 치료 과정 중 머물며 쉴 수 있는 전용 공간으로 조성된다.
단순한 휴게 공간에 그치지 않고 국립암센터가 운영하는 심리 상담, 가족 교육, 사회복지 지원, 환자·가족 맞춤 프로그램과 연계해 치료부터 회복까지 이어지는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같은 랄프 로렌의 이름을 걸었어도 나라마다 공간의 성격은 다르다.
뉴욕 할렘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랄프 로렌 센터'는 2003년 문을 연 이래 암 검진과 진단·치료, 환자 안내, 재정 상담, 식료품 지원까지 갖춘 지역사회 밀착형 클리닉으로 운영된다.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 특성에 맞춰 무료 검진과 건강 박람회, 환우 모임도 연다.

영국은 결이 다르다. 런던 로열 마스덴 병원은 '랄프 로렌 유방암 연구센터'를 2016년 연 데 이어, 2023년에는 오크 암센터 안에 '랄프 로렌 연구동'을 열었다. 두 곳 모두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곳이 아니다. 연구 인력이 신약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시설로, 랄프 로렌 연구동에만 150명 넘는 연구자가 소속돼 있다.
국립암센터에 들어설 '랄프 로렌 라운지'는 이 두 모델과 다르다. 진료나 연구를 위한 곳이 아니라, 이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이 긴 치료 기간 동안 심리적으로 쉬어갈 수 있는 회복 공간에 가깝다.
한국 암 생존자 270만 명 시대
한국 암 유병자는 270만 명을 넘어섰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 수치다. 치료 성적이 좋아지면서 암 생존자가 계속 늘어난 만큼, 국립암센터는 치료 이후의 삶과 장기적인 건강까지 살피는 환자 중심 진료를 강화하는 추세다.
양한광 국립암센터 원장 겸 국립암센터발전기금 이사장은 "암 치료의 목표는 치료를 넘어 환자가 일상을 회복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특히 양성자치료와 같이 장기간 치료 여정을 경험하는 환자에게는 치료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덜고 가족과 함께 안정적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핑크 포니', 25년 넘은 암 지원 활동의 확장
이에 앞서 랄프 로렌의 암 지원 활동은 1989년 시작됐다.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이자 워싱턴포스트 패션 에디터 니나 하이드를 기려 조지타운 롬바르디 종합암센터에 연구센터를 세운 것이 계기였다. 2000년에는 폴로 포니를 핑크색으로 물들인 '핑크 포니 캠페인'을 시작했고, 이듬해 랄프 로렌 기업재단이 '핑크 포니 기금'을 설립했다.
2022년에는 미국 전역 암센터 5곳을 확대·신설하는 데 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고, 올해 1월에는 시카고대에도 새 랄프 로렌 센터를 여는 지원금을 발표하는 등 최근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핑크 포니는 17개국 38개 기관을 지원하며, 뉴욕, 워싱턴 D.C.,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런던 등에 랄프 로렌의 이름을 딴 암센터를 두고 있다. 올해 캠페인은 정기 건강검진과 암 검진을 독려하는 '챔피언 유어 헬스(Champion Your Health)'를 주제로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2012년부터 암 관련 지원을 이어왔고, 국립암센터도 이미 38개 수혜기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번 라운지 설립은 두 기관의 협력을 한 단계 넓히는 동시에, 랄프 로렌의 암 지원 네트워크가 아시아로 처음 뻗어나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랄프 로렌 이사회 의장 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랄프 로렌은 "한국에 문을 여는 '랄프 로렌 라운지'는 더 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존엄성을 지키며 편안함과 희망 속에서 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