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을 앓던 60세 미국인 남성은 오른쪽 어깨 힘줄이 찢어지는 어깨힘줄찢김(회전근개파열)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이 환자는 진단 끝에 관절경을 이용한 힘줄 봉합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 전 통증을 줄이기 위해 목 부위 신경을 차단하는 초음파 유도 마취(사각근간 신경 차단술)를 받았다. 이어 전신 마취 하에 약 90분간 이어진 수술도 아무런 합병증 없이 잘 끝났다. 환자는 당일 무사히 퇴원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지 약 7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수술을 받은 어깨 쪽인 오른쪽의 눈꺼풀이 아래로 축 처지기 시작했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눈 통증이나 물체가 둘로 보이는 복시, 얼굴 감각 마비나 땀 분비 이상은 없었지만 이튿날에도 축 처진 눈꺼풀은 여전했다.
불안해진 환자는 동네 의원(1차 의료기관)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오른쪽 눈꺼풀 처짐(안검하수)과 동공이 작아지는 현상(동공 수축)을 확인한 뒤 그를 안과로 보냈다. 안과 전문의는 신경 이상으로 동공과 눈꺼풀이 마비되는 ‘호너 증후군’을 강력히 의심하고 이 환자를 즉시 대형병원 응급실로 의뢰했다. 호너 증후군은 뇌간 병변, 뇌졸중, 폐암 외에도 목 부위의 혈관이 찢어지는 경동맥 박리 등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응급실 신체 검사 결과, 환자의 오른쪽 눈꺼풀은 약 2mm가 아래로 처져 있었고, 왼쪽 동공은 직경 3.5mm로 정상인 반면 오른쪽 동공은 직경 2mm로 눈에 띄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의료진은 두경부 컴퓨터단층촬영(CT) 혈관조영술, 뇌 자기공명영상(MRI), 조영 증강 흉부 CT 등 정밀 영상 검사를 긴급 시행했다. 검사 결과 뇌 혈관이나 경동맥 손상, 폐 종괴 등 위험한 병변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수술 전 목 부위에 투여했던 국소 마취제가 근막을 따라 눈과 얼굴로 이어지는 목 교감신경 사슬까지 서서히 스며들어 일시적으로 마비가 일어난 ‘양성 일시적 호너 증후군’으로 최종 진단했다. 이 환자는 별도의 약물 치료나 시술 없이 안정을 취했고, 축 처졌던 눈꺼풀과 쪼그라들었던 동공은 수술 후 3일째에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다.
미국 텍사스대 의대 연구팀의 이 사례 연구 결과(Transient Horner Syndrome Following Interscalene Nerve Block for Rotator Cuff Repair: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호너 증후군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시작해 척수, 목, 눈과 얼굴 땀샘으로 이어지는 교감신경 경로가 눌리거나 손상돼 나타나는 신경계 이상 증상이다. 동공이 작아지는 축동, 윗눈꺼풀이 처지는 안검하수, 얼굴 한쪽에 땀이 나지 않는 무한증이 3대 징후로 꼽힌다.
어깨 수술을 앞두고 통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목의 신경 다발을 차단하는 마취를 진행할 때, 마취약이 주변 교감신경으로 번지면서 일시적으로 호너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통상 마취 직후 수 분 안에 나타났다가 12~24시간 내에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환자는 마취 후 7시간이나 지나 뒤늦게 증상이 나타났고 사흘간 지속되는 이례적인 경과를 보였다. 연구팀은 주입된 마취제가 목 깊은 근막 층에 머물면서 약물의 교감신경 차단 효과가 연장된 것으로 분석했다.
어깨 관절을 감싸고 있는 힘줄이 닳아 찢어지는 어깨힘줄찢김(회전근개파열)은 국내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관절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국내의 회전근개파열 환자는 연간 80만~90만 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힘줄이 완전히 끊어져 봉합술을 받는 환자도 연간 10만 명 안팎에 이른다.
이 환자가 앓던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도 회전근개 파열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혈중 지질 성분이 어깨 힘줄에 침착돼 탄력을 떨어뜨리고 미세혈관 혈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상지질혈증 환자는 일반인보다 힘줄이 파열될 위험이 약 2배 높고 수술 후 재파열도 더 흔하다. 이 환자의 전립선비대증은 회전근개파열과는 관련이 없다.
이번 사례는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어깨 수술이나 목 부위 마취를 받은 뒤 눈꺼풀이 처지거나 시야가 흐려진다면 심각한 뇌혈관병(경동맥 박리) 등 심각한 병의 전조 증상일 수 있으니, 지체 없이 정밀 영상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단순한 마취제 확산으로 인한 일시적 합병증으로 확인된다면, 불필요한 시술이나 과도한 불안 없이 며칠간 경과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연 치유를 기대할 수 있다.
◇오십견(유착성관절낭염)과 어깨힘줄찢김(회전근개 파열)의 구별=어깨 통증이 심할 때 단순 오십견으로 넘기기 쉽지만, 실제로는 힘줄이 손상된 회전근개파열(어깨힘줄찢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오십견은 공식적으로는 ‘유착성관절낭염’이나 ‘동결견’(Frozen Shoulder)이라고 부른다. 두 병은 통증은 비슷해도 원인은 사뭇 다르다. 오십견은 어깨 관절을 감싸는 주머니(관절낭)가 염증으로 굳은 것이고, 회전근개 파열은 어깨를 움직이는 핵심 힘줄이 찢어진 것이다. 옆 사람이 팔을 들어 올려줄 때, 걸려서 팔이 올라가지 않으면 오십견이고 아프지만 팔이 끝까지 올라가면 회전근개 파열이다. 오십견은 대부분 약물·주사·스트레칭 등 비수술 치료로 호전되나, 완전히 끊어진 어깨 힘줄은 자연 치유되지 않아 뼈에 힘줄을 다시 꿰매주는 봉합 수술이 필요하다. 힘줄 파열을 통증 때문에 쓰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2차적으로 오십견도 생길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어깨 수술 전, 목 부위에 마취 주사를 왜 놓나요?
A1. 수술 중과 수술 직후 극심한 어깨 통증을 크게 줄여주어 전신 마취제의 사용량을 줄이고 환자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팔과 어깨로 가는 감각 신경이 모여 있는 목 부위(사각근 사이)에 마취제를 주입합니다.
Q2. 호너 증후군이 생겼을 때 경동맥 박리 같은 위험한 병을 먼저 의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목 부위를 지나는 교감신경은 뇌로 피를 보내는 핵심 혈관인 경동맥의 벽을 감싸며 눈으로 올라갑니다. 따라서 바늘 자극이나 혈종 등으로 경동맥 벽이 찢어지면(경동맥 박리)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때 호너 증후군이 함께 나타납니다. 즉시 뇌 MRI나 혈관조영술로 심각한 혈관 손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Q3. 마취 부작용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호너 증후군도 후유증을 영구적으로 남기나요?
A3. 신경 자체가 바늘에 직접 찔리거나 훼손된 것이 아니라면 영구적인 손상을 남기지 않습니다. 마취약 성분이 서서히 대사돼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신경 차단이 풀리면 대개 며칠 안에 눈꺼풀 처짐과 동공 수축 증상이 완전히 원상 회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