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114만 명이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어떤 내성균을 가장 먼저 막아야 하는지는 국가마다 사정이 다르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감염내과 김정연·윤영경 교수 연구팀은 한국 항생제 내성 병원체 17종의 위험도를 체계적으로 평가, 국가 차원의 대응 우선순위를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8일 밝혔다.
항생제 내성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발생 규모, 전파 양상, 치료 여건도 제각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해외에서 만든 우선순위만으로는 국내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팀은 국가 항생제 내성 감시자료와 국내 5개 대학병원의 임상자료, 문헌 근거,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17종의 내성 병원체를 골랐다.
평가 항목은 8개다. 발생률, 원내 사망률, 질병부담, 내성 증가 추세, 전파 가능성, 예방 가능성, 치료 가능성, 신규 항생제 개발 전망까지 두루 살폈다.
이렇게 여러 기준을 동시에 고려해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법을 다기준 의사결정분석(MCDA)이라고 한다. 이번 평가에는 감염내과·소아청소년과 임상 전문가부터 약학·보건정책 연구자까지 총 56명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17종을 순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눴다. 가장 위험한 '긴급 대응' 3종, 그다음 '우선 관리' 7종, 나머지 '모니터링' 7종이다.
긴급 대응 3종은 카바페넴 내성 폐렴막대균(Klebsiella pneumoniae),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Enterococcus faecium)이다. 앞의 두 병원체는 WHO가 2024년 내놓은 목록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속해 있어 평가가 일치했다.
다만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은 WHO 목록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 국내 평가에서는 최상위인 '긴급 대응' 대상으로 분류됐다. 국내 발생과 전파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연 교수는 "이번 연구는 국내 항생제 내성 병원체를 단순히 위험도 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망위험과 전파력, 질병부담, 치료 가능성 등 여러 요소를 함께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윤영경 교수는 "항생제 내성 대응은 모든 병원체에 동일한 자원을 투입하기보다 국내 상황에서 위험도가 높은 병원체를 우선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연구가 감염관리와 감시, 항생제 적정사용, 치료제 연구개발 등 국가 항생제 내성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학적 근거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평가체계가 한 번으로 끝나는 순위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내성균이 등장하거나 특정 병원체 발생이 늘고 새 치료제가 나오면, 관련 자료를 반영해 우선순위를 다시 매길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지원을 받은 다학제 공동연구로, 국제학술지 《란셋 리저널 헬스-웨스턴퍼시픽(The Lancet Regional Health – Western Pacific)》 2026년 9월호에 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