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09일 (수)

혼자 사는 노인 우울증, 배우자와 사는 노인의 2배⋯뇌파로 미리 알아채는 기술 개발 시작

삼성서울병원, 국가 R&D 'AI Caregivers' 과제 선정⋯BCI로 노인 정신건강 실시간 관리 나서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9월 7일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린 'AI Caregivers' 과제 출범식에서 연구진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과제는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의 세부과제로 선정돼, 2030년까지 노인 정신건강 실시간 관리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한다. 사진=삼성서울병원

말수가 줄고 표정이 어두워진 부모님. 그런데 막상 병원에 모시고 가더라도, 짧은 진료 시간과 애매한 대답 사이에서 우울증 초기 신호 포착 기회를 놓치기 쉽다. 이 틈을 뇌와 컴퓨터를 잇는 기술로 메우려는 국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삼성서울병원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이 지원하는 '한국형 ARPA-H(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for Health, 의료고등연구계획국) 프로젝트'의 신규 연구개발 과제 주관연구개발기관으로 최종 선정됐다고 8일 밝혔다. 한국형 ARPA-H는 미국의 혁신도전형 연구개발 방식을 국내에 들여와, 고위험·고성과 국가 보건의료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왜 병원에서도 놓칠까

초고령사회의 대표적 난제 중 하나가 노년기 우울증이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7월 발표한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65세 이상 인구는 1072만3000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7%를 차지해 한국은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그런데도 노인 정신건강 진료는 여전히 대면 상담이나 주관적 설문에 의존해 왔다. 그러다 보니 객관적인 수치화나 조기 개입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우울증상을 겪는 비율은 혼자 사는 노인이 16.1%로, 배우자와 함께 사는 노인(7.8%)의 두 배가 넘는다. 인력 중심의 돌봄 체계도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뇌파가 대신 말해준다

이 문제를 뇌와 인공지능 기술로 풀어보려는 게 이번 과제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 연구팀이 맡는다. 전 교수는 2008년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우울증·치매 진료와 연구를 이어왔고,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우울증임상연구센터에서 연수한 경험도 있다.

연구팀은 병원 내 정밀 뇌 영상(MRI), 임상 뇌파(EEG), 전자의무기록(EMR), 정밀 생체신호 등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한 노인 정신건강 특화 인공지능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목표는 '측정-분석-중재'가 끊김 없이 1초 이내에 자동으로 순환하는 폐쇄형 중재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뇌와 기기를 직접 연결해 뇌 신호를 읽어내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센서로 노인의 정서 기복이나 우울 전조를 실시간으로 추론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바이오피드백 훈련, 스마트기기로 받는 디지털치료(DTx) 콘텐츠, 신경을 자극해 정서를 조절하는 비침습 전자약(미주신경자극·taVNS), 말벗이 되어주는 AI 돌봄로봇 등 상태에 맞는 대응을 즉각 제공한다.

삼성서울병원이 맡은 'AI Caregivers'는 상위 프로젝트인 'BCI-INSIDE-OUT'의 세부과제 중 하나다. BCI-INSIDE-OUT은 BCI로 노인 정신건강과 관련된 뇌 변화 데이터를 정교하게 뽑아내고, 이를 근거로 끊김 없는 맞춤형 중재 방안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이다. 2026년 7월부터 2030년 12월까지 진행되며 총 180억 원의 정부 연구비가 투입된다.

사업은 이승규 PM이 총괄한다. 그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사회혁신정책센터장을 지냈고, 2025년부터 K-헬스미래추진단에서 초고령사회 대응 복지·돌봄서비스 개선 임무를 맡아왔다.

컨소시엄은 삼성서울병원을 주관기관으로 서울대(박성준·이종성·강상경·최승홍 교수), 성균관대(정지훈·이승원·김보아 교수), 경희대병원(백종우·박성준 교수), 딥노이드(고성민 본부장)가 공동연구기관으로 참여하고, 메디트릭스·뉴라이브·원더풀플랫폼·딥메디 등이 위탁 및 핵심 기술 파트너로 함께한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 교수는 'AI Caregivers' 과제를 이끌며, 뇌파와 인공지능으로 노인 우울증을 실시간으로 살피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사진=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는 "이번 과제를 통해 기존 질환 치료 및 사후 관리에 머물렀던 노인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선제적이고 단절 없는 예방 의료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당장 병원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그럼에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병원 문턱을 넘기 전에 미리 알아채는 방법을, 국가 주도로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 이 연구가 목표대로 2030년까지 결실을 맺는다면, 우울증이 깊어지기 전에 가족이 먼저 손을 내밀 시간을 벌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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