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3년에 30대 후반 EGFR 양성 폐암을 진단받은 한 환자는 당시 두 살 된 딸을 두고 있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2년 뒤 암이 4기로 재발했다. 기존 치료에 내성이 생겨 타그리소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다가 6개월 후 타그리소가 급여화되면서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생존해 있고 딸은 고등학생이 됐다.
안희경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지속가능한 보건의료를 위한 혁신신약 가치평가의 새로운 방향' 포럼에서 이 사례를 언급하며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것과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와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런 약들이 개인의 인생을 바꿔 준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혁신 신약의 가치는 단순한 생존기간 연장이나 경제성 평가만으로 따질 게 아니라, 환자·가족·사회가 얻는 장기적 가치까지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혁신신약이 환자와 사회에 제공하는 임상적·사회경제적 가치'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신약의 급여평가는 임상적 유용성, 대체 치료제 존재 여부, 비용효과성, 재정영향 등을 종합 검토하는데, 그중 비용효과성을 따지는 지표는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다. 기존 치료와 신약의 비용 차이를, 신약을 통해 추가로 얻는 건강효과인 질보정생존연수(퀄리·QALY) 차이로 나눠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안 교수는 이 방식에 몇 가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암이 재발하지 않은 상태와 재발한 상태는 환자에게는 삶을 좌우할 만큼 큰 차이지만, 경제성평가에 활용되는 효용값에서는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안 교수가 제시한 사례에서는 폐암 수술 후 재발하지 않은 상태의 효용값이 0.84, 뇌전이 없이 재발한 상태는 0.71로 평가됐다. 두 상태의 건강상태 효용값 차이는 0.13에 불과하다.
임상시험에서 확인되는 단기적인 수치만으로 장기적인 치료 가치를 충분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 폐암 치료 사례에서는 중앙 무진행생존기간(PFS) 차이가 2.2개월에 불과했지만, 장기 추적 결과 일부 환자는 5년 동안 질병 진행 없이 사실상 완치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했다. 안 교수는 이처럼 장기 추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치료 효과까지 고려해야 혁신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환자가 생존하면서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환자가 직장을 계속 다니고 가정에서 부모나 배우자로서 역할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입원이나 응급실 방문과 가족의 돌봄 부담이 줄어들면서 사회적 비용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건강금융연구센터장)도 현행 ICER 운영을 비롯한 가치평가 체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혁신신약 가치평가의 중요성과 제도개선 과제'라는 발표를 통해 현행 경제성 평가가 사망률 감소나 생명 연장 등 비교적 단일한 요소에 치우쳐 있다며, 삶의 질과 생산성, 다른 의료비 감소 등의 가치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항암제·희귀질환에 ICER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왜 특정 수준까지 인정하는지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명확하지 않다며 삶의 질과 생산성 변화 등의 근거를 구축해 ICER 평가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홍 교수는 “지금은 너무 단차원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며 “단순하게 사망률 감소라든가 생명 연장뿐만 아니라 생산성의 변화라든가 삶의 질 변화 이런 것까지 보는 좀 더 다차원적인 가치 평가를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좌장이자 법학박사 출신의 권용진 교수는 ICER의 법적·제도적 근거와 투명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행정을 투명하게 하려면 규범이 투명해야 되는데 ICER 값은 시행령, 시행규칙 어디에 나와 있느냐”고 물었고, 보건복지부 측은 경제성평가를 한다는 큰 틀은 규정돼 있고 세부적인 평가 방법론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지침에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권 교수는 “비용 대비 효과 평가를 한다는 건 법에 있어야 하고, 법령 체계상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은 최소한 시행규칙에는 있어야 된다”며 “심평원 심사지침에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는 혁신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혁신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보완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 사후 근거 생산을 전제로 신속 등재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근거 생산이 어려운 희귀질환 치료제에는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심평원에는 선별급여 TF를 구성해 사회적 요구가 큰 고가 의약품에 선별급여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복지부는 재발 방지와 환자·가족의 삶의 질 등 추가적인 가치를 평가에 반영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하는 것은 과제라고 봤다. 김민정 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재발 방지에 대한 가치, 환자나 가족에 대한 삶의 질의 가치도 담아야 한다”면서도 “그걸 어떻게 담을 것인가, 숫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문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