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
무너지고 부서질 때 어쩌면 더 큰 박수를 받는 단어다.
1989년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국경의 철조망을 자르면서 시작된 동독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과 독일 통일이 그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장벽이 넬슨 만델라의 석방과 함께 허물어질 때도 세계는 환호했다.
벽의 붕괴는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평화의 막이 올랐음에도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굳건하고, 심리적으로는 ‘불완전한 붕괴’마저 진행 중인 벽을 가진 곳이 있다.
바로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Belfast)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본토가 아니라 아일랜드섬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에는 독립국가인 아일랜드 공화국, 게일어로 ‘에이레(Éire)’가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두 지역이 갈라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의 섬이 두 정치적 영역으로 갈라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깊은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기 시작했다.

총성은 멈췄지만, 상처는 아직 벽으로 남아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섬은 둘로 갈라졌다.
이듬해 아일랜드 자유국이 출범했지만, 개신교도가 다수였던 북부 6개 주는 영국에 남았다.
하나의 섬 안에 두 정치적 영역이 들어서면서 북아일랜드의 갈등도 본격화됐다.
이후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과의 연합 유지를 지지하는 개신교계와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요구하는 가톨릭계의 갈등이 깊어졌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 굿프라이데이 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북아일랜드에서는 폭력과 테러가 30여 년간 이어졌다.
당시 벨파스트 곳곳에는 양 진영의 충돌을 막기 위한 방벽이 세워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벽은 분열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총성이 멈췄다고 상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쌓인 슬픔과 불신은 하루아침에 씻기지 않았고 벨파스트 곳곳의 평화의 벽은 지금도 그 현실을 보여주는 산 증거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세운 벽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분열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풍경이다.

거인이 누운 산과 문학의 골목길…아픔의 벽에 핀 이야기
벨파스트로 향하는 여정은 아일랜드공화국의 수도 더블린에서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비게이션의 속도 표기가 어느 순간 km에서 마일(mile)로 바뀐다. 북아일랜드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내륙을 가로질러 곧장 벨파스트로 향하는 대신, 중세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해안마을 칼링포드(Carlingford)를 먼저 찾았다.
동네 어르신이 방문객센터 앞에서 연주하는 백파이프 소리가 작은 마을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페리를 타고 BBC 범죄 드라마 ‘블러드랜드(Bloodlands)’의 배경이 된 스트랭포드(Strangford) 호수를 건넜다.
호수라고는 해도 면적이 서울의 4분의 1정도로 크다 보니 차량을 실은 페리가 수시로 호수 양안을 오간다.
벨파스트에 들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평화의 벽이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이어진 콘크리트 벽에는 유혈 사태 당시의 투쟁 구호와 정치적 메시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다고 이 도시의 모든 길이 상처와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벽을 벗어나면 문학과 자연이 남긴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도시 북쪽 벨파스트성 윗쪽인 케이브 힐(Cave Hill)은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하지만 문학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거인이 누워 있는 듯한 산의 능선, 즉 ‘나폴레옹스 노즈(Napoleon’s Nose)’를 보고 소설 속 거인국을 떠올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C.S. Lewis) 역시 벨파스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정치적 벽화가 남은 골목에서 문학과 자연의 흔적이 깃든 언덕까지 벨파스트를 걷는 길에는 상처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가는 도시의 모습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녹슨 조선소와 타이타닉의 기억…상처 위에 만드는 문화
벨파스트를 아픈 과거의 유산으로만 기억한다면 도시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셈이다.
20세기 초 벨파스트는 세계적인 조선업 도시였다. 그 상징이 바로 1912년 건조된 타이타닉호(RMS Titanic)다.
하랜드 앤 울프(Harland & Wolff) 조선소가 있던 곳은 이제 ‘타이타닉 쿼터(Titanic Quarter)’라는 수변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여기에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촬영지가 북아일랜드 이곳저곳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분열과 산업의 도시였던 벨파스트를 비롯한 북아일랜드가 이제 문화와 관광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찬 파도와 현무암이 전하는 태고의 서사
도심을 벗어나 북쪽 해안으로 발길을 돌리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자이언츠 코즈웨이(Giant's Causeway)를 만날 수 있다.
수천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육각형의 주상절리가 바다를 향해 계단처럼 이어진다.
거친 파도와 검은 현무암이 어우러진 길을 걷다 보면 자연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조형미 앞에서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인근의 ‘다크 헤지스(The Dark Hedges)’는 ‘왕좌의 게임’ 속 킹스로드의 배경이 되면서 세계에 알려졌고, 발린토이 항구 역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물론 이 장소들은 사진 한 장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직접 그 길을 걸어보면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것이 있다.
바람의 세기, 파도의 소리 그리고 그 풍경 앞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깊이 같은 것 말이다.

거센 바람도, 골프장의 언덕도…걷기가 일상이 된 북아일랜드
이전에 아일랜드공화국을 여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섬의 역사에 뭔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북아일랜드의 골목과 장벽, 해안선을 직접 만나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 뒤에 감춰진 깊은 상처였다.
그래서일까. 북아일랜드에서는 유독 많이 걸었다.
곳곳을 다니다 보면 스틱에 의지해 거센 바람을 맞으며 끝없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골프장에서도 걷기는 일상이다.
2026년 PGA 마스터스 2연패의 주인공 로리 맥길로이(Rory McIlroy)가 어린 시절 학교만큼 자주갔다는 할리우드 골프클럽(Holywood Golf Club)에는 지금도 아이들이 트롤리(Trolley)에 골프채를 싣고 코스를 누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예외가 아니다. 골프채를 트롤리에 싣고 걸어서 힘든 구릉지를 오르내리며 라운딩을 즐긴다.
흔히 카트라고 부르는 버기(buggy)를 타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걷는 것이 특별한 운동이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처럼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걷기는 몸을 움직이는 일이지만, 때로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규칙적인 걷기가 스트레스와 우울·불안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벽 너머의 내일…평화와 화해를 향한 발걸음
하지만 북아일랜드에서의 걷기는 건강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벽 앞에서 멈춰 서고, 벽화에 적힌 이름을 읽고, 오래된 골목을 지나며 걷다 보면 여행자는 어느 순간 그 땅의 역사를 ‘보는 사람’에서 ‘느끼는 사람’으로 바뀐다.
벨파스트의 장벽 아래에서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역사의 무게마저 느껴졌다.
콘크리트 벽에 덧칠된 평화의 메시지와 알록달록한 벽화를 바라보면서는 그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선 도시의 생명력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벽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벽을 따라 걷다 보면, 상처의 기억 너머로 평화와 화해를 향하는 도시의 시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벨파스트는 아일랜드섬의 역사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돼 있었다.
